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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8 2016-05-02 15:27:51 2
일본 빵의 달인 [새창]
2016/05/02 07:33:01
위의 답글에서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뒤늦게 나마 덧붙이자면 이 버터와 올리브 오일의 관계는 이런 비유는 뭐하지만 취두부, 홍어와 비슷하다고 보시면됩니다, 그 지역, 문화권에서는 굉장히 대중화 되어 있고 널리 퍼져있는 음식입니다만 스칸나디비아, 게르만 등의 북유럽 시간을 좀 흘러보내고 더 나아가자면 노르망디 일대와 잉글랜드 권역 정도 외에서는 로마 제국 시절 야만인들이나 먹을 음식으로 폄하될 정도로 논외였던 버터와 루터가 신발에도 못바를 기름을 처먹일려고 버터에 세금을 매긴다는 논조로 격분했던 사순절 면죄부 그러니까 버터에 세금을 붙이던 사태에서 볼수 있듯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권 외에서는 논외였던 올리브 오일 사이에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 라고 잣대를 들이대는건 좀 무리한 일이라고 봅니다.
6597 2016-05-02 13:19:44 6
일본 빵의 달인 [새창]
2016/05/02 07:33:01
반대로 설탕의 경우는 초기에는 유럽내의 재배지가 한정되어 있었고 그 작물 재배에 가성비가 좋지 못하였으며 인도와 중앙 아시아 등지에서 수입되는 가격이 매우 비쌌기에 약재나 사치재로 쓰이다,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대규모 경작지를 확보하는 한편 사탕무 등 대체제의 가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이후부터 언급하신 바 대로 규모의 경제가 성립되어 서민들이 이제 식사의 가성비를 살리기 위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6595 2016-05-02 13:15:19 12
일본 빵의 달인 [새창]
2016/05/02 07:33:01
버터는 그 가격대 보다는 아무래도 문화적 차이가 좀 컸습니다, 무슨 말 인가 하면 14~16세기 무렵의 북유럽과 남유럽의 구분점을 찾자면 대표적인 것이 버터와 올리브 기름의 차이였지요, 로마 제국의 플리비우스가 야만인들의 음식 이라며 폄하한 것에서 볼수 있듯이 초기에는 호불호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이 것이 점차 해소되며 전 유럽, 전 세계의 기호식품화 되었습니다.
6594 2016-05-02 13:13:29 8
일본 빵의 달인 [새창]
2016/05/02 07:33:01
덧붙이자면 가톨릭 신앙 논쟁 중 최대의 화두로 손꼽히는 것중 버터 논쟁이 있습니다, 육류와 그 부산물을 멀리해야 하는 사순절에 있어 올리브 기름과 버터는 부먹과 찍먹의 관계처럼 오랜 화두였는데 교황청에서는 버터를 인정하는 댓가로 면죄부를 팔아치웠고 루터를 비릇한 이들이 가장 분노한 사례중 하나였지요, 자 그렇다면 이 당시에 사람들이 먹은 버터와 올리브 기름중 어느게 좋은걸까요?
6593 2016-05-02 13:07:33 54
일본 빵의 달인 [새창]
2016/05/02 07:33:01
본문에서 버터나 설탕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그러한 어감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 답글을 달아보자면 당장 인류가 빵이나 기타 음식에 버터를 넣어 먹기 시작한건 머나먼 고대의 기원전 그리스, 바빌로니아 시절 부터입니다, 다만 그 것이 향신료나 고기 등과 같이 시간이 흐르며 그 것이 보다 문화적으로 거부감이 사라지고 저렴해지는 등 대중화에 성공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되었을 뿐이지 이 것이 뭔가 좋은 빵, 나쁜 빵의 기준이 될수는 없지요.
6592 2016-05-02 00:50:46 12
안타까운 부자관계, 영조와 사도세자 [새창]
2016/04/30 09:23:44
개인적으로는 아동 학대에 따른 연쇄적인 계승?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많은 사례들에서 부모에게서 그 자식들로 문제의 사례들이 연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분명 원인이 없다 라고 단언하기는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6591 2016-05-02 00:47:09 6
안타까운 부자관계, 영조와 사도세자 [새창]
2016/04/30 09:23:44
뜻은 요즘과 비슷합니다, 네이버 백과 사전의 말을 빌어 좋게 적자면 남의 일을 방해하거나 남을 해롭게 하다. 라는 뜻이지요.
6590 2016-05-02 00:45:25 7
안타까운 부자관계, 영조와 사도세자 [새창]
2016/04/30 09:23:44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갈개다 라는 단어의 어원 중 하나인 갈외다(앞 글자가 옮겨 적는게 안되는 기에 사진으로 첨부하자면) 는 이미 조선시대 초기 용비어천가부터 각종 문헌에 나옵니다.; 나름 유서 깊은 순 우리말인 셈이지요.
6589 2016-05-02 00:39:19 14
안타까운 부자관계, 영조와 사도세자 [새창]
2016/04/30 09:23:44

현대 군대 용어 아닙니다, 어디서 그런 어원을 찾으셨는지 모르겠는데 난잡하게 행동하거나 남을 해롭게 하며 소란스레 난동을 피운다는 뜻으로 북한에도 갈개다 라는 단어로 남아 있는 중세 국어로 부터 내려오는 고어입니다.
6588 2016-05-01 23:46:30 0
충격) 6.25때 중국의 인해전술로 당한거 사실 아니였어여? [새창]
2016/04/28 14:51:01
군단장으로서 군단 붕괴에 대한 책임은 부정할수 없지만 본문에서 인용된 글과 같은 현리 전투에 대한 전작권 회수의 정당성을 논하는 글에서 처럼 단지 유재흥 개인에게만 그 모든 이유를 붙이고 원인을 찾을 필요도 없고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한국군은 윗 답글에서 백선엽 장군의 말을 인용하였듯이 신생 군대의 약점을 여실히 보여주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화력에 낮은 숙련도를 보였던 현실이나 국방부에서 논하였듯이 지휘관의 지휘 능력의 결여 문제나 당시 전황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전술 수행에 옮긴 중공군의 문제, 실질적인 현장의 상황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치중한 탓에 약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맥아더 장군과 그 라인의 현실 등 다종 다양한 문제가 이리저러 복잡하게 얽혀있는바 이를 어떻게 유재흥 개인의 문제로만 비출수 있겠습니까;
6587 2016-04-30 22:41:56 0
태평양전쟁 말기 한국인 출신 카미카제 특공대원.jpg (스압) [새창]
2016/04/27 18:40:59
그게 박병식 할아버지의 증언을 보자면 호세이 대학을 다닐때 인문학도에 대한 징병 유예 제도가 폐지되어 입대가 결정되었는데 기왕 입대하는 거 평소 동경하던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하여 지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본인이 특공 대원이 될거라고 생각치는 않았으나 자신은 당시 일본 국민이었고 그렇게 생각했기에 결정되었다면 기꺼이 따랐을거라고 하시더군요,
6586 2016-04-29 23:26:50 0
인천상륙작전은 대단히 운이 좋았던 거 아녀요? [새창]
2016/04/29 16:56:17
그리고 북한군의 사정을 보자면 좀 심각한게 본문에 언급된 그대로 숙련도가 낮은 병력과는 별개로 늘어난 병참선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미 공군의 CAS와 지속적인 폭격으로 인하여 주요한 철도와 도로를 상실하게 되었고 원시적인 수송 방법으로 야간에 이동하는 방법을 불가피하게 채택하게 된 상황이었지요.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만일 북한군이 그 들이 교육받고 영향 받은 그대로 기갑 전력을 온전히 활용하여 특정 전선에 집중할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으리라는 겁니다, 그 들은 각 보병 사단에 1개 연대씩 배비 시키고 보병의 지원을 하게 하였는데 이는 기갑 전력의 최대 장점중 하나인 기동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들었고 분산 배치 시켜 국군이 비교적 안전하게 지연전을 펼치며 전선을 수습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론 초탄을 반드시 고폭탄으로 장전시켜 놓는다거나 포술이 저열하였고 적 전차에 대한 어떠한 배비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군의 전차와의 교전을 통하여 큰 충격을 받았으며 무엇보다 미군의 보급이 치트키였습니다, 뭐 정치적 이유로 서울에서 3일 한강 도하이후 수원 평택까지 10일 등 이런 저런 이유로 진격이 상당히 늦어진 점도 있습니다만 7월에서 8월까지 5백여대의 전차를 일본과 미 본토 등에서 끌어모아 부산에 밀집시키는 한편 전차병들의 숙련도를 상당히 높이는데 성공했지요;
6585 2016-04-29 23:17:52 0
인천상륙작전은 대단히 운이 좋았던 거 아녀요? [새창]
2016/04/29 16:56:17
사실 인천 상륙 작전의 준비 과정과 전후 상황이 더욱 큰 문제이지요, 인천 상륙 작전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휘부에 대하여 맥아더 장군은 정치력을 동원 역시 정치 군인으로서 자신의 가신이나 다를바 없는 에드워드 알몬드에게 권력을 쥐어주어 참모장이자 제 10군단장으로서 강대한 권력을 가지게 만들어주었고 인천 상륙 작전에 이은 멋들어진 경력을 만들기 위하여 추수감사절 공세와 크리스마스 공세를 이어나간바 그 전황은 참담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6584 2016-04-29 23:14:15 1
충격) 6.25때 중국의 인해전술로 당한거 사실 아니였어여? [새창]
2016/04/28 14:51:01
1. 무의미한건 애시당초 정치 방향성과 수정의 제약 등의 이유로 타인의 자료를 무시하고 오로지 위키 피디아를 믿으라고 강변하는 님의 태도에서 무의미하게 시작되었습니다,

2. 님께서 제시하신 위키피디아의 논거는 이미 답글에서 논파된바 무슨 이야기가 필요할까요? 이유요? 지금 위에서 뭐라고 말하는지도 않읽어보셨지요? 뭘 썼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읽어는 보셨습니까?

3. 열리지도 않는 링크의 자료를 가져다 빼애액 거리실게 아니라 뭔가 좀 논박을 해보세요, 지금 무의미하게 만드는건 레퍼런스로서의 가치가 전무한 위키를 들고와서 심지어 그 위키에서 말하는 레퍼런스 자신들이 스스로 부정하는 판국에 그 모든걸 무시하고 오로지 위키를 믿으라고 부들거리는 님의 태도에요, 다른 사람을 탓하고 뭐하고 자시고 할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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