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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3 2016-05-10 22:02:25 12
한국에서 살고싶은 이란녀 [새창]
2016/05/10 20:02:45
그러나 그 결과는 이제 기존의 왕조를 유지하되 국왕을 바꾸고 새로운 나라의 기조를 원했던 이 들에 반하여 자신의 동지들과 후계자를 제거하고 다시금 혁명을 일으키며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데 종교 지도자가 보다 정권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지는 학파와 그 선례에 따라 호메이니가 집권하게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금의 이란은 당시보다는 훨씬 개혁, 개방적인 풍조를 가졌습니다, 훨씬 낮아진 참정권으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정부를 비판하는가 하면 당시와 아무리 종교 정치에 의한 국민 탄압을 말하나 정작 국민들은 자신들의 페이스북을 별도로 운영하는가 하면 히잡은 스카프나 다를바 없는 패션 아이템으로 쓰고 심지어 집에서 술먹고 파티하고 터키 가서 놀거 다 노는 별 다를게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 도시나 시골에 가면 보수적인 풍조야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지역적 특색이 전대 왕조의 부정 부패와 악몽과 같은 폐쇄성을 옹호하지는 못합니다,;
6642 2016-05-10 21:58:29 14
한국에서 살고싶은 이란녀 [새창]
2016/05/10 20:02:45
그 당시의 이란은 정말 최악의 독재 국가중 하나였습니다, 서구화에 의한 개혁 개방으로 가려진 바 없지 않으나 오히려 지금의 이란이 좀 더 개혁적이니 뭐 할말 다했지요; 구태여 비유를 하자면 선대 황제와 작금의 여황, 전대의 4대강 돌파하신 대통령, 마법의 통장을 가지신 그 분등을 모두 한데 모아서 만든 완전체 급입니다, 지금이야 10인 이상 모이면 무슨일인가 경찰이 와서 상황 파악이나 하지 당시는 그냥 실종되는 판국이었고, 전 국민이 여야, 종교, 경제인사 할것 없이 모두 공포에 떠는 한편으로 새로운 나라를 원했습니다.;
6641 2016-05-10 13:18:57 0
환빠의 습격!! [새창]
2016/05/10 09:50:12
그나마 남아있던 언급 금지 공지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말 그대로 소말리아 무주공산 같은 게시판이 되었지요.
6640 2016-05-09 07:03:49 0
독립운동하신 저의 작은 외할아버지를 찾습니다. [새창]
2016/05/09 04:16:31
혹시 성함을 알수있을까요?
6639 2016-05-08 23:51:36 0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고 수탈한 게 당연한데 왜 그걸 굳이 부정하려들까요? [새창]
2016/05/08 09:14:07
이런 떡밥에 답글 달기가 이제는 하도 시달리다 보니 좀 꺼려집니다만 앞서 다른 분이 말씀하신바 처럼 수탈을 대놓고 부정했거나 혹은 지금 말씀하시는 대로 은근히 부정하는 입장의 자료를 올려주시면 더 좋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언급한 낙성대 학파의 김낙년 교수와 허수열 교수의 논쟁만 단적으로 놓고 보더라도 수탈에 대하여 그 누구도 이견은 없습니다,

다만 낙성대 학파는 자본주의 중심론으로 흐르다보니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있었느냐 라는 부분에 있어 이견이 심화되고 있는바 심지어 이영훈 교수라고하기는 좀 뭐하지만 그 분도 광범위한 차별과 억압, 탄압 등으로 인해 일제 식민지 지배는 물질적 의미의 양적 근대화만 이룬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까놓고 말해서 효율적인 수탈 메커니즘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편이셨지요. 그러던 양반이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기 시작하더니...참 그렇습니다.;
6638 2016-05-08 21:31:38 4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뒤늦게 읽어보니 말미가 좀 이상하게 적혔는데 예컨데 그렇습니다, 치수 사업을 통하여 뭔가 정비를 하려고 해도 나라에 돈이 없어 제대로 하질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이게 음...그렇지요, 먹고 마시는 생활용수에 그대로 오폐수를 흘러보내는건 둘째치고 매년 툭하면 홍수가 터지니 이건 뭐 서양의 초기 산업화시대 오염된 강들을 뭐라 할만한건 아니지요;
6637 2016-05-08 16:31:26 0
같은 소재로 한 비슷한 시기의 할리우드 영화와 소련 영화의 비교. [새창]
2016/05/08 16:15:57
소련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국책사업이라는 것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무보수 무임금 무보험의 군인들 동원부터 시작해서 말 그대로 국고를 가져다 들이붓는 가장 저렴하게 뽑을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면서 퀼리티는 적절하게 만드니 말입니다.
6636 2016-05-08 16:25:43 6
베스트간 소련전성기 영화글을 보고 저도 소개해보는 영화 워터루(스압) [새창]
2016/05/08 15:53:19
아래 영화와 마찬가지로 국책 사업으로 시작한 영화이고 당시에는 컴퓨터 그래픽이고 나발이고 없었으며 심지어 엑스트라 배우를 대규모로 동원할수 있는 현대적 매니지먼트도 없었기에 엑스트라 1만 5천여명 모두 군인들을 썼다지요; 이런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군인이 제일 저렴하기는 한 것 같습니다.
6635 2016-05-08 14:45:28 52
소련 전성기시절 영화 퀄리티.jpg [새창]
2016/05/08 11:38:27

덧붙이자면 상기 영화의 스탈린은 Mikheil Gelovani 입니다, 많은 영화와 선전물에서 스탈린을 연기한바 있는 배우분이시지요.
6634 2016-05-08 14:42:34 21
소련 전성기시절 영화 퀄리티.jpg [새창]
2016/05/08 11:38:27
혹시나 몰라 링크를 덧붙이자면 현재 상기 영화 베를린 함락Падение Берлин은 두 편 모두 유튜브에 올라와 있습니다, 러시아 어가 되신다면 한번쯤 보시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hZam8dXHU 1편

https://www.youtube.com/watch?v=1AHUQ1QRVn4 2편
6633 2016-05-08 14:40:54 49
소련 전성기시절 영화 퀄리티.jpg [새창]
2016/05/08 11:38:27
아 음..그냥 웃자고 하신 소리라고 보고 진지하게 답글을 달아보자면 상기 영화는 49년에 촬영된 베를린 함락Падение Берлина으로 레닌 훈장까지 받을정도로 유능했던 철공소 공돌이 알렉세이가 사악한 나치에게 납치당한 약혼녀를 구하기 위하여 군대에 입대하여 나치 독일을 조지고 조지고 또 조지며 베를린까지 가 약혼녀를 되찾고 다시 한번 스탈린을 알현한다는 내용의 두 편으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스탈린 하악거림이 절정에 달해있고, 또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어 군수 물자가 그대로 투입되어 촬영된바 있으나 출연한 인물들은 모두 배우들입니다.
6632 2016-05-08 13:44:59 0
1945년 소련 전승기념식에서 나치깃발 내던지기.gif [새창]
2016/05/06 10:28:46
덧붙이자면 대숙청의 여파는 38년 기준으로 고작해야 11%입니다, 이 수치를 더 자세하게 보자면 혁명 군사 위원회 85명중 71명 군 최고위 장성과 정치 위원부 위원들의 45% 대령 - 원수 837명 가운데 720명이 숙청되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아래로 3만 4천여명이 축출되었으나 독소전쟁 이전에 그 가운데 1만여명이 복권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 인가하면 최소한 현장의 실무진은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는 말로 기존의 소련군 장교부의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겠지요, 물론 독소 전쟁에서 소련군이 입은 피해를 단지 이 것 하나에 국한지을수는 없는 부분입니다만 최소한 소련군 자체의 문제점을 간과할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6631 2016-05-08 13:39:28 0
1945년 소련 전승기념식에서 나치깃발 내던지기.gif [새창]
2016/05/06 10:28:46
특유의 인해전술이라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위에서 다른 분들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만 가장 큰 문제는 저열한 장교진이었습니다, 30년대 중반 소련군이 양적으로 급 팽창 하면서 장교진이 충원되었는데 질적으로 낮은 인적 자원들이 충원되며 문제가 커지게 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썩 좋다 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더욱 열악해졌는데 대강 40년 기준으로 12만명이 모자란 수준이었으니 뭐 말 다한셈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임관한 장교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은건 아니었습니다, 대개 임관한 장교들은 자신들의 병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더욱이 현장에서 이러한 부족한 장교진을 메우기 위하여 사병들에게서 충원을 하였으나 그 들은 아예 제대로 된 사회 교육을 받지도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가령 39년 한 포대의 장교의 교육 수준을 놓고 볼때 10명중 단 한명만이 중등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 뭐 말 다한셈이지요;

더욱이 독소 전쟁이 개막하면서 그나마 있던 장교들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거나 행방 불명되는 등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 갔으며 43년에 군단 편제를 재 도입하면서 참모진을 충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 되버리기까지 했고 전선에서는 야전군 사령부나 전선군에서 사단을 직접 통제하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소련군 장교단이 현대전의 기술적 수준에 미달하는 기술 문맹이기에 소련군의 사상자가 클수 밖에 없다는 주코프가 한 말 그대로 사실상 가장 큰 인적 손실의 원인을 꼽자면 장교들을 빼놓을수가 없지요.;
6630 2016-05-08 13:11:33 29
소련 전성기시절 영화 퀄리티.jpg [새창]
2016/05/08 11:38:27
여러모로 쩔었던 시기이지요,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볼수 없는 퀼리티가 돋보입니다.
6629 2016-05-08 09:43:48 6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무슨 답글인지는 알아듣게 써주셔야지 매번 해석을 하게 끔 휘갈기시는 것과 그 내용을 미루어볼때 정신승리를 하시는 바가 넌센스 같은데요?

남대문에서 용산으로 선로 연장을 하던게 1900년으로 이미 1899년 부터 종로 일대에서 전철 운행이 이루어진바 지금 저와 다른 세계를 보고 계신것 같습니다, 무슨 조선시대라고 하니 전서구 날리고 봉화를 쓰고 여전히 우마만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망상하시는 것 같은데 이런 말씀은 그렇습니다만 늘 펼치시고 아님말고 식으로 나오시는 그 뇌피셜일랑 접어두시고 하다못해 교과서라도 펼치시는게 어떠신지요.

사실 종로 위치도 가늠 못하시는 점에서 넌센스라고 단언하시는 그 출처가 참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뭐 그 걸 떠나서 반론을 하시려면 최소한의 논증은 되야하지 않겠습니까?

네 그래서 넌센스라 단언하시는 건 뭘 가지고 넌센스라는겁니까? 당시에 선글라스는 유행도 아니고 조선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이다? 위에 잡화점에서만 보더라도 그렇게 가져다 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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