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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8 2016-05-08 09:30:28 1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한강은 말 그대로 지금의 갠지스 강처럼 먹고 마시는 것 외에 종종 죽은 사람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오폐수를 그대로 배출하는등 관리 자체가 되지 않았지요, 물론 치수역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여 툭하면 홍수에 범람에 난리도 아니기도 했습니다, 물론 초기에 제대로 된 환경법이 없을 당시의 서구와 비교를 할때 그래오 낫지 않겠느냐 하실지 모르나 딱히 이 당시 한강의 언급하신 지류들을 비릇하여 대개의 거주 지역들과 인접한 곳들은 그러한 공장 시설들만 없었을뿐 생각만큼 위생이나 환경오염과 거리가 멀지 못했지요;
6627 2016-05-08 01:01:26 6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http://m.jungle.co.kr/magazine/articleView?searchBbsId=BBSMSTR_000000000001&searchNttId=22950

끝으로 저 사진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기록 사진이에요, 다른 결혼, 장례, 무덤 관리 등 일상 생활의 모습을 비릇하여 당시 일본군의 행진이라던가 엘리스 루즈벨트의 방한 등 당시 사회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구한말 미국공사관 부영사 윌러드 스트레이트가 촬영하고 수집한 사진들 중 하나로 따로 모델을 섭외하고 컨셉을 잡은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저 분들은 그냥 사진을 찍을때 지나가시던 분들이에요;
6626 2016-05-08 00:56:14 3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하나 더하자면 이렇습니다, 종로가 어디를 말하는지 정도는 아시고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하기는 좀 그런가요?

출처는 이 곳이고 http://m.blog.naver.com/gnass/40122242204 아무튼 그렇습니다, 사진에 아주 어렴풋이 걸쳐 보이는 산 능성으로 위치를 판별하는건 찍은 사람이 위치를 말하지 않는 이상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요.
6625 2016-05-08 00:53:54 6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잘 보이지도 않는 산 능성으로 위치 추정은 매우 어렵울뿐더러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 상기 답글에서 하신 추정은 100% 틀립니다, 1904년이면 서대문을 시작으로 종로, 동대문을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노면 전차가 개통되었을 시기인데 어디를 보고 종로라고 봐야 하겠습니까?

아 혹시나 몰라서 덧붙이자면 창덕궁 근처면 어도인 돈화문로이지 종로가 아닙니다, 종로에서는 창덕궁보다 종묘가 더 가까워요.
6624 2016-05-07 23:46:34 0
소녀상 친구, 베트남 피에타 [새창]
2016/05/03 15:43:24
http://www.todayhumor.co.kr/board/list.php?kind=member&mn=367538

http://www.todayhumor.co.kr/board/list.php?kind=member&mn=671621

글쓴이는 과거 CCKK로 트롤링, 어그로를 반복하는 등의 행위를 지속하다 차단당한뒤 잠룡815로 들어와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여 재 차단되었고 이제는 ot2라는 닉네임으로 재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역사게시판의 선별님과 같은 분이시지요, 아 물론 이런 예토전생을 반복하고 계시는 분이 비단 이 분 뿐만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6623 2016-05-07 23:44:33 9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그렇다고 선진화된것만은 아니고 여전히 한강은 조선의 갠지스강 그 자체이지요,
6622 2016-05-07 23:42:58 5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뭐 안경이라는 것이 보급 될만큼 되었으니 특이할것은 없겠습니다만 아무튼 찾아보니 꽤나 지금의 시각으로는 독특한 시절인것 같기는 합니다.
6621 2016-05-07 23:40:58 13
1904년 강남스타일.twt [새창]
2016/05/07 20:35:55

사실 선글라스 라는게 당시에 잡화점에서도 쉽게 찾아볼수 있을 만큼 낯설지만 그렇다고 신기할정도는 아니었습니다.
6620 2016-05-06 11:02:05 0
파리코뮌 무너질 때 사상자 비율이 말입니다. [새창]
2016/05/05 20:41:02
명확하게 정리정돈된 혹은 정의된 지휘 체계가 아쉽지요, 물론 파리코뮌 운동 자체의 의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많고 많은 사공들을 정리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은 참 문제이기는 하지요.
6619 2016-05-06 11:00:22 0
1945년 소련 전승기념식에서 나치깃발 내던지기.gif [새창]
2016/05/06 10:28:46
정작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조상의 뼈 위에서 춤추고 있지요.
6618 2016-05-06 00:26:41 0
파리코뮌 무너질 때 사상자 비율이 말입니다. [새창]
2016/05/05 20:41:02
휴대폰으로 작성하느라 두서도 없고 또 음 글솜씨도 그래서 전달이 잘 안될것 같아 요약을 해보자면

1. 파리 코뮌은 극히 한 지역에 국한된 운동이고 당시 거의 모든 이념, 사상에 걸친 사회 운동이 그러하듯 파리가 중심이 되어 지역과 구분되고 단적으로 말해 지방이 밀려나는 경향이 큽니다, 따라서 호응은 커녕 연계도 거의 안된다는게 맞습니다,

2. 군사적 능력에 있어 지휘권을 두고 다툼을 벌인 것과 별개로 제대로 된 군 체계가 없이 주먹 구구식으로 운영되어 가뜩이나 부족한 물자, 병력의 낭비가 심했고 그로인하여 대등했던 상황에서 밀려나버립니다.
6617 2016-05-06 00:15:03 0
파리코뮌 무너질 때 사상자 비율이 말입니다. [새창]
2016/05/05 20:41:02
덧붙이자면 이 당시 코뮌의 상황은 그리 낭만적인건 아닙니다, 단순한 숫자 놀음상 치안, 방위 등을 담당할 목적으로 편성한 국민군 8만 명, 그리고 예비역 11만4천 명, 여기에 각종 이주 노동자 수천명 등 총 20여만명이 모여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징병이 폐지되고 지원제로 편성한 탓에 병력 소집이 극히 어려웠으며 주먹 구구식의 편제로 인하여 5~6만여명 정도가 모이게 됩니다,

앞서 내분을 요인에서 제외했습니다만 사실 군 지휘권을 두고 잡음도 많았고 미흡했던 점도 많은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떠나 보더라도 참 그렇지요, 가령 두서 없이 쓰느라 제외된 부분이 4월 초의 일인데 이 당시는 아직 진압군이 지방군 6만 여명으로 구성된 시기인데 파리 코뮌은 포위망 분쇄를 위하여 또한 왕당파 정부에 대한 반격을 위하여 언급하신 바 대로 베르사유로 진격하나 무참히 괴멸당합니다, 거의 병력차가 없던 상황에서 절대적 승기를 놓친 셈이지요.;
6614 2016-05-06 00:00:04 0
파리코뮌 무너질 때 사상자 비율이 말입니다. [새창]
2016/05/05 20:41:02
단적으로 말해서 가르발디군을 비릇하여 다수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 혁명가들이 집약되었다 하나 당시 사회 주의 운동이 전국적으로 발발되었다기 보다는 파리를 비릇한 몇몇 지역에 국한되었고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운동을 펼친곳은 파리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범위가 좁았던게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당시 티에르를 필두로 한 왕당파 임시 정부는 정치성을 고려하여 파리를 제외한 지방 출신자들로 베르사이유에서 진압군을 조성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파리 코뮌군이 출격하여 포위망을 분쇄하려 한다 할지라도 제대로 된 지휘 체계는 둘째치고 보급 체계도 없고 병력, 물자 등도 부족한데다 무엇보다 연계가 거의 안되는 상황이라 답이 안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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