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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0 10: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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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나마 답변을 드리자면 전후 관계좀 봅시다 라는 말씀을 그대로 돌려드릴수 밖에 없습니다, 이전부터 줄곧 인신공격, 정신승리, 본인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하신체 훈제청어만 던져대는 모습등 을 보이신바나 이 글에서 고압적 태도로 일관하시는 것을 떠나 지금 남방 작전이 언제 시작되었고 일본 제국이 언제 친서방 국가를 탈피하고 추축국과 손을 잡게 되었으며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언제부터 미국과의 갈등을 보였고 그것이 표면화되었는지 사건 전체에 대하여 일말의 이해조차 보이지 않으시니 어떻게 이 문제를 설명드려야 할지 모를 상황입니다,
우선적으로 사건 개요를 요약하여 옮겨드리자면 파나이호 격침사건으로 일본군이 중국에서 벌이고 있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강경한 비난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는 같은 해에 브뤼셀에서 십 수개의 국가들이 모여 중일
전쟁의 조속한 해결 및 자국민의 안전과 재산권 보호등을 요구한 뒤에 얼마 안되어 벌어진 탓에 그 동안 쌓여온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볼수 있으며 비록 그 효과는 미비하나 하지만 다분히 일본 제국을 겨냥한 민간인을 공격하는 국가에 대하여 비행기나 그 관련된 모든 부품들의 수출을 반대한다는 무역 금지 조치 이른바 maral embargo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일본 제국의 반응은 상당히 안좋았습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실제로 자원을 끊을경우 미일통상조약에 위배됨과 동시에 네덜란드 령 동인도 제도를 비릇한 동남아 일대로 전장을 확대할것이 분명하기에 강제성도 없는 조약이거니와 큰 효용성은 없었지요,
문제는 그 뒤에 불거지는데 일본은 하이난 섬과 스플래틀리 군도를 점령하였는데 일본 제국 측이야 말레이 군도를 비릇한 동남아 일대의 침탈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해명하였으나 그걸 믿을 서구 열강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긴장감만이 가중되는 가운데 39년 7월 충칭의 미 대사관 인근 미국 시민 소유의 교회에 폭격이 떨어지고 다음날 정박중이던 미 군함 지척에 포탄이 날아들었습니다,
그 결과 벌어진 것이 이제 근 30여년간 이어져온 미일통상조약의 파기이었고 이로서 미국의 대일제제는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불을 붙인게 1년뒤의 일본 제국의 이탈리아 및 독일과의 삼각 동맹이며 그와 동시에 일본 제국은 일본 제국군은 프랑스 페탱 정권의 묵인 아래에 북 인도차이나 반도 일대로 진주하게 됩니다,
물론 미국이 이러한 일본 제국의 행보를 간과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미국은 '국가 방위의 강화를 촉진하기 위한 법안Act to Expedite the Strengthening of the Nathional Defense' 그러니까 '국가 방위법 Nathional Defense Act' 를 통과 시키는데 이 군수 물자를 비릇한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기계 등 모든 것을 수출하지 못하게 막을수 있는 권한을 주는 법안에 있어 영연방, 유럽의 저항세력, 중국, 네덜란드 동인도 령을 제외한 모든 국가를 수출 금지 국가로 넣어버립니다.
이 조치에 따르자면 40년 7월 5일은 항공기의 엔진과 부품, 정비에 필요한 부속 일체와 여타 다양한 금속들이 그 제제 대상에 들어가는 한편 20일 뒤인 26일에는 석유와 일부 고철이, 마지막으로 두 달 뒤인 9월 30일에는 모든 고철에 대한 수출이 금지 될것이었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지요,
0년 12월과 그 이듬해인 41년 1월에는 금속과 철광석, 공작 기계 일체에 대한 수출 금지가 내려졌고, 사실상 일본은 자원 수입이 모두 끊겨 버린 상황에 내몰리게 된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이 호감을 가지고 있고 외상을 맡은바 있는 노무라 기치사부로 제독을 주미 대사로 임명합니다만 별 효과는 없었던게 뭔가 성의를 내보여야 서로간의 대화가 될 문제인데 도리어 미국과의 전쟁을 생각한 것이라 밖에 볼수 없는 마셜 제도와 캐롤라인 제도 일대에 대한 군사 기지화를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또한 이 와중에 일본 제국은 타이를 끌어들여 프랑스 령 인도차이나 반도를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타이가 잃어버린 영토를 돌려달라고 분쟁을 일으키면 일본은 중재를 한다 이런 식이었는데 그 댓가로 사이공 비행장을 얻는 등 남진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 것이지요.
그리고 7월에 일본 제국은 그루 주일대사에게 비시 정부로 부터 인도차이나 반도의 통행권을 얻었다고 통보하고는 본격적인 남진에 나섰고 필리핀 바로 앞까지 도달하는데 이는 곧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 받아들여 질수 있었고 주먹은 말 보다 빠르다고 더 이상 여론을 두려워 할것도 국익으로도 인내를 할 필요성도 없었기에 미국은 인도 차이나 반도의 진주가 결정된 다음날인 41년 7월 26일 무역 금수 조치를 강행합니다,
즉 미국과 일본간의 모든 교역을 금지하는 한편 미국내 모든 일본인의 재산을 동결하고 모든 일본 선박은 미국의 항구에 대한 기항이 금지되는가 하면 정박중인 모든 일본 선박은 8월 1일까지 화물을 내려놓고 떠나야 했지요.
이전까지는 그러니까 1년 전에 금지된 석유 제품은 항공기용 연료와 윤활유가 전부였습니다, 미국 해운사야 자율 규제 형식으로 석유 그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다지만 일본 제국은 자국과 중립국의 유조선을 통하여 미국과의 석유 무역을 행하였으나 이제는 모두 끝난 셈이며 여기에서 일본이 택할수 있는 선택사항이 뭘까요?
자 이러한 배경에서 놓고 볼때 지금 주장이 맞다고 보십니까? 단순한 오만 운운하시는데 일본과 미국이 서로간의 국익과 시각차를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일이 경과하는 와중에 일본 제국이 택할수 있는 선택지가 뭐라고 보시는지요? 더욱이 자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던 남방 작전이 언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시는겁니까?
두번째로 한반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미국이 일본에 본격적인 상륙전을 벌인다 가정했을때 제주도는 그러한 일본 제국 본토에 대한 항로를 차단하고 적을 요격할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입니다, 그러하기에 본토 결전 작전에 따라 결 7호 로서 요새화가 가속화 되고 또 물자가 배비되었으며 한반도 자체가 일본 제국과 대륙을 잇는 교두보로서 일본 제국의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여차에 반격의 실마리가 될 대륙에 버금가는 전력이 밀집한 지역입니다, 본진을 쓸어버리면 끝나는 전쟁 운운 하시는데 일본 본토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한반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