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Lemonade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회원가입 : 12-06-21
방문횟수 : 1328회
닉네임 변경이력
일반
베스트
베오베
댓글
6943 2016-06-05 22:32:53 0
래몬님의 석유 태평양전쟁의 일본국가존립 생존에 불가피했다는데에 대한 반론 [새창]
2016/06/05 21:30:15
이게 어느 정도 문제인지 덧붙이자면 41년 7월에 전면적 금수 조치가 떨어지기 이전에 1년전에 금수 조치가 내린 것은 항공기용 옥탄가 고휘발유와 항공기용 윤활유가 전부이나 미국 해운사들은 자율적 규제로 사실상 전면적 금수 조치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일본은 자국 선박이나 중립국 선박을 이용하여 수입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전면 금수 조치가 시행되면서 그 모든게 틀어 막힌겁니다, 영국과 동인도 제도까지 함께 하면서 몇주간이나 일본에서 직접 현금을 들고 올때까지 운송이 중단되었으며 이는 사실상 일본의 모든 자원줄이 틀어 막힌셈이에요.;

그러한 상황에서 이제 인내심이 바닥난 루즈벨트 정부를 달래기 위하여 군부를 설득하여 중국 전선에서 더 이상 진출을 하지 않으며 남방 진출을 포기하는 제스쳐를 취하면 좋기야 하겠지요, 그런데 일본 군부 입장에서 이와 같은 취약한 현실을 방조하여 아킬레스 건을 미국에 쥐어준다는 건 앞으로 벌어질 모든 진출에 대하여 미국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속국과 같은 입장이 되버린다는 사실이고 현재 만주 일대의 위협이 독일로 인하여 사라졌고, 네덜란드는 항복하여 동인도 제도에 대한 지원은 불투명하며 영국 역시 아프리카에서 신나게 털리고 있어 신경을 쓰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더 좋은 선택지는 그들의 입장에서 없던게 사실입니다,

미국이라고 그 걸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금수 조치와 더불어 최전선인 필리핀 군을 정식으로 미군으로 편입시키는 한편 더글라스 맥아더를 극동 지역 미군 사령관으로 승격시켰고 군수 물자 배비를 서둘러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이야 말할것도 없이 말레이 반도, 필리핀, 홍콩, 북부 보르네오, 괌, 웨이크 제도, 진주만 등에 대한 공세를 본격적으로 세심하게 계획하고 다듬어 나가고 있었지요.
6942 2016-06-05 22:23:44 0
래몬님의 석유 태평양전쟁의 일본국가존립 생존에 불가피했다는데에 대한 반론 [새창]
2016/06/05 21:30:15
아...대체 어디서 어긋난건지 조금 알수 있는데 국가 존립은 비단 경제 기반만으로만 결정되는게 아니에요; 전쟁이 일어나든 아니든 간에 그 것과 무관하게 국가의 자원이 고갈되는걸 이야기 하는겁니다, 그리고 일본은 중일 전쟁으로 말미암아 지금 본문에서 들고 온것처럼 인조 석유까지 뽑아대며 어떻게 해서든 버텨볼려고 하고 있으나 그 소모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던게 현실입니다.
6941 2016-06-05 22:22:14 0
래몬님의 석유 태평양전쟁의 일본국가존립 생존에 불가피했다는데에 대한 반론 [새창]
2016/06/05 21:30:15
무엇부터 이야기 해드려야 되나 정말 총체적 난국속에 막막합니다만 간략하게 답글을 작성해보자면 첫번째로 진짜 몇번을 이야기 해 드리지만 좀 가져오시는 글을 읽어보세요, 조롱이나 비아냥 거리시기에 앞서 지금 글쓴이 님과 제가 이야기 한 주제가 무엇인지 좀 고민을 해보시고 말입니다, 대체 가져오신 자료와 제 주장이 다른게 뭔가요? 아니 이건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서 여쭤보는겁니다,

가령 논문을 들고나와 밑줄까지 쳐가며 제 주장이 잘못된 반론이라고 하시는데 무역 금제 조치 이른바 moral embargo가 발표된게 파나이 호 사건이 터진 그 해입니다, 이게 여러 헛점이 존재한다지만 미국 정부는 민간인에게 폭격을 가하는 국가에 대하여 비행기나 그 관련된 모든 부품의 수출을 금지한다는 조항으로 기존에 중일 전쟁으로 막대한 자원과 전비를 소모하고 있기에 실상 더 전선을 늘리기는 커녕 유지하기도 급급한 일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서겠습니까?

또한 논문에서 이야기 하는 것과 제 주장이 뭐가 다른지 좀 설명을 해보시지요, 지난 번에도 똑같이 옮겨놓고 입만 씻으셨는데, 밑줄까지 쳐가며 논거라고 들고오신거랑 제 주장이 대체 어디가 다르다는 겁니까? 석유 문제의 심각성, 미일간의 시각차, 일본 내부에서 위기 의식 자각 등 어디에 뭐가 다른지 반론이라면 좀 설명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두번째로 '일본제국 입장에서' 라는게 무슨 말인지 모르세요?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 볼때 면 확장을 위해 필요한 석유 수송로가 필요한게 아니라 국가 존립을 위한 국가의 생존을 위한 그 들의 입장에서 진주만 공습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겁니다,

또한 워싱턴 체제를 언급하며 제 논리의 엉성함을 조롱하시나 실상 가져오신 글 상편에 앞뒤 문맥으로 뭐라고 기술 되어 있었을까요?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 특수를 통해 경제적 호황을 누리는 한편 여지껏 듣도 보지도 못한 국제 연맹이라 하는 집단 안전 보장 체제가 그 들에게 손짓을 한 것입니다, 즉 문민정부로서는 더 이상 군부의 눈치를 볼일이 없어진 셈으로 일본 제국은 문민정부의 힘이 강해져 일본 제국군의 예산을 삭감하는 한편 국제 연맹에 가입하여 매우 유화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워싱턴 해군 조약에 가입하는 한편 9개국 조약에 서명하여 다른 국가들과 함께 중국의 영토와 주권을 지지하고, 문호 개방의 원칙을 지키며 특권을 요구하지 않음과 동시에 그 들이 부당한 외세의 간섭을 피할수 있게 도와주고 그 들의 자주성을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켈로그 브리앙 조약에 서명하여 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까지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도저히 태평양 전쟁이 벌어질 일이 없는게 사실입니다, 양보와 타협을 바탕으로 군부의 간섭을 배제한채 자유주의 국가를 향해 나아가던 일본에 미국이 싸다구를 올리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최소한 여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 제대로 근대화는 커녕 자국의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여타의 국가들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자부하던 일본에 대하여 미국의 이민법은 미국 아니 서구 열강의 시각으로는 도찐개찐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앞서 체결한 워싱턴 군축 조약은 군부 세력을 벼랑끝으로 내몰았고 이러한 문제는 1920년대 침체되어 가는 일본 경제에 있어 수많은 시민들을 선동하여 문민 정부를 그 들 스스로 끝장내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군부 세력은 폭주하게 된 것이지요.

가령 일본 제국이 지원하던 만주의 군벌 장쭤린이 장제스의 국민당과 가까워지는 한편 소련의 시베리아 개발이 포함된 1차 5개년 계획이 시행되는 등 만주에서의 일본의 이익이 침탈당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고 판단한 관동군은 그 유명한 만주 사변을 일으키게 된 것을 들수 있는데, 이 만주 사변의 외교적 후폭풍은 사건 그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만주 사변 직후 미국은 일본에 강력한 항의 서한을 보내어 향후 만주에 들어서는 그 어떠한 국가도 인정하지 않은 것을 밝혔고, 중국이 국제 연맹에 제소한 이래 켈로그-브리앙 조약에 따른 국제 연맹의 리튼 조사단 파견으로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가이며 중화민국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리튼 보고서가 국제 연맹에 올라가자 일본은 격렬한 항의를 표출했으나 결국 채택을 막지 못하고 일본은 국제 연맹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자유국가 표방이 없기는 왜 없습니까, 지금 해당 문맥의 앞뒤에서 본인이 유리하고 읽기 좋은 부분만 떼다가 반론하시는데 일본에 문민정부가 들어서 한때 군부를 궁지로 내몰았을 정도로 호기였던 시절이 존재하며 군부 시절에도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반전파는 존재했습니다, 저에게 궤변이니 어쩌니 하시지만 정작 이러한 부분에 대한 반론은 어디에 있습니까?

거기에 일본을 쉴드 친다 어쩐다 하시지만 이건 앞서 글에서 명백히 드러내신 글쓴이 님의 주관적 역사관에 위배되는 부분에 대한 반론일뿐 무엇도 아닌 내용들 아닙니까? 일본이 국가 존립을 위해서라면 전쟁에 방향을 틀었어야 한다고 하시지만 당시의 일본 군사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십니까? 언제부터 일본이 미국에게 기술적으로 뒤쳐지게 되었으며 군사적으로 밀리게 되었는지는요? 당시의 미국의 전력을 놓고 볼때 일본이 미국에 대하여 어떠한 외교적, 군사적 양보를 감행해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건 저에게 궤변 운운하시며 조롱할 문제가 아니라 당시 현실을 외면하며 본인의 주관적 역사관에 위배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것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지금 본문에서 내각과 군부간의 시각차를 언급하시며 무슨 외교니 뭐니 하셨는데 그게 외교가 맞아요, 지금 부정을 하시고 계시지만 내부의 불만으로 외교적 시각을 부정할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당장 일본이 원하는건 아시아의 평화라는건 팔굉일우 즉 일본 아래에 단결된 평화였고 미국이 원하는 아시아의 평화라는 것은 일본의 군사 활동의 중지였는데 양측의 시각차가 극명한 사실이 어째서 일본 하나의 문제로 치부해야 하며 그러한 주장이 왜 일본을 옹호하는 이야기가 되나요?

더불어 그러한 시각차에 의하여 해결되지 못하는 중일 전쟁의 전쟁 범죄 등의 문제로 말미암은 무역 제제로 국가 존립이 위태로운걸 왜 부정해야 합니까? 일본의 무조건적 양보가 배제된 현실은 일본이 잘못인건가요? 그게 객관적인 역사입니까? 그걸 입증하겠다고 가져온 논문도 참 웃긴게 위에서 이야기 한 부분을 빼고 보더라도 작성자의 주관이 섞인 주장은 왜 밑줄을 치신겁니까? 여기에서 일본의 전선 확대가 그 들의 파멸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부정한 사람이 있던가요? 아니면 거기에서 어느 부분이 제 주장을 부정하고 있습니까?

또한 단계적인 금수 조치를 행한것은 이미 몇주 전에 코델 헐이 일본에 대하여 맹 비난을 가한것에서 볼수 있듯 미국이 딱히 일본의 시각을 이해한것도 어떠한 양보를 감행한것도 아닙니다, 국가 방위법 Nathional Defense Act' 은 군수 물자를 비릇한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기계 등 모든 것을 수출하지 못하게 막을수 있는 권한을 주는 법안으로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이 법안을 상정하여 통과 시킬때까지 갤럽 조사를 반복하여 민심의 추이를 파악한것에서 볼수 있듯 어느 한 순간 대통령 맘대로 모든 민간 시장 체계를 마비시킬수 있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해당 원문에서 일본 경제 체제에 대한 인식이 전무함을 여실히 알수 있었는데 일본이 1차 세계 대전의 호황을 타고 종래의 농업 중심 에서 공업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30년 기준으로 섬유 관련이 36%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볼수 있듯이 중공업은 좀 갈길이 멀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발전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고 나름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던바 그러한 흐름에 대소전선의 최전선이자 전진기지였던 풍부한 자원을 기저에 깔고 있는 만주가 빠질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 들은 단순히 군수 물자로 연명한게 아닙니다, 오히려 일본은 경공업 중심으로 당시에 완구, 섬유, 전구 등 을 다루는 예컨데 현대의 중국과 같은 포지션으로 독일에 대한 경제 조치와 더불어 노동자를 갈아넣는 생산 체계로 저렴한 가격과 균등한 질로 인하여 호황을 맞았으나 덤핑 무역등으로 인하여 영 연방 등에 의하여 경제적 제제를 당하여 급격하게 쇠락하던 와중입니다.

끝으로 소련은 이미 전쟁 이전부터 일본 제국의 제 1 주적입니다, 말기가 아니라요, 애시당초 조선군이 왜 설치가 되었고 여타의 식민지 이상의 지원이 이루어 졌는지 부터 생각해보세요, 아니 그 이전에 일본 제국군의 교리 개편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기라는 이야기가 나올수 밖에 없는게 사실이기는 하지요,

자꾸 논점을 이탈하시어 본인의 생각을 논하시는데 쉽게 말해서 지금 지척에 지원 병력이 산재해 있는 마당에 그 것을 방관하고 본토만 밀어치고 입을 씻겠습니까? 미국이 진주하여 비행장 건설하고 하는건 이야기 한적도 없습니다, 분명한건 일본이 본토 대결전을 함에 있어 한반도 역시 그 대상이었으며 한반도는 본토와 대륙을 잇는 지형적 요충지로서 이미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주목받고 있으며 유사시 지원 전력을 용이하게 보낼수 있으며 미국이 몰락 작전을 시행할시 예상되는 상륙 경로를 방지하기 위하여 전력이 배비된 바 미국이 그 걸 무시하고 그냥 본토만 공략하고 넘어가겠습니까? 대체 어떠한 이유에서 조선군과 관동군, 대륙에 배비된 전력들이 그 것을 관망하고 있겠습니까?
6940 2016-06-05 21:39:11 34
탱탱한 엉덩이 [새창]
2016/06/05 16:49:05

!?
6939 2016-06-05 00:17:26 1
[새창]


6938 2016-06-05 00:16:28 2
[새창]


6937 2016-06-04 22:31:37 12
[새창]

Dystopian Wars라는 보드게임의 세계관에서 본디 나라는 다르지만 원역사에서처럼 양도되려 하였으나 하필 미 연방국FSA과 프랑스 공화국 Republique of France이 적대적 관계로 얽힌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군수 물자로 징용되었고, 자유의 귀부인Madame Liberté이라는 이름 아래에 개조되어 무중력 엔진이 탑재된 공중 항모로 이송되며 광선포Heat Lance로 파시스트와 무례한 옛 동맹들에게 지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6936 2016-06-04 17:16:19 33
[새창]

어떤 세계에서는 자유의 멋짐을 모르는 이들을 위하여 공중 전함에 실려 광선포를 난사하고 다니시지요.
6935 2016-06-03 13:55:18 5/4
최근 식민지 근대화에 대해 키배가 있었던 거 같은데.... [새창]
2016/06/02 18:50:55
근대화의 정의가 나오기는 나왔지요, 본디 시스템을 악용하여 재 가입한 유저를 쉴드 치겠답시고 들고온 원문이 문제였고 주제였는데 해당 글에서 글쓴이의 근대화에 대한 정의 및 시각이 분명합니다만 글쎄요 반론하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근대화의 정의가 무엇이었는지는 일빠몰이를 당한 당사자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 해당 글이 야나이하라 식민 사상이라거나 식민 사관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고 해당 글의 근대화에 대한 정의를 부정하기까지 했습니다만 글쎄요, 그렇게 반론하시는 분들이 근대화에 대한 정의를 무엇이라 내렸는지 일단 잘 모르겠네요.;
6934 2016-06-03 08:58:05 0
6.25전쟁에서 한강을 방어선으로 북한의 전차를 저지할 수 있었다면요. [새창]
2016/06/01 10:14:53
제가 아는 것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첨언을 해보자면 아시는 사실이겠습니다만 50년 6월 말경 대강 28일로 기억합니다만 주한대사관의 참사관 드럼라이트로 부터 한국군의 저지 능력 부족과 더불어 사기 진작의 목적으로 폭격이 필요하다는 전문을 미 국무부에 보냈고 뒤이어 미 극동군 총사령부 한국 전방 지휘소 총 책임자였던 처치로 부터 사기 진작의 측면에서 우선 타격되어야 할 목표물 3가지를 포함한 총 6가지의 목표를 보고 받습니다,

대강 서울역, 주한미대사관 차량기지, 서울 중앙 방송국 북쪽의 적 선전 방송국, 한강 북측 제방 일대, 서울 북방 1마일 지점에서 동쪽으로 부터 진입하는 군대, 이타즈케 기지에서 발진한 F-82와 B-26 항공기 파일럿들의 판단, 발견되는 모든 적 전차들이 그것으로 이 당시는 아직 미 공군이 제공권을 잡은 시기는 아닙니다, 악천후와 적 항공기, 대공 사격등의 문제로 손실이 발생하는 한편 오폭 사건이 빗발치기도 하였으며 비단 그러한 문제를 떠나 미 공군이 제공권을 잡았다고 확신한 시기가 7월 20일이며 오도넬 극동 공군 폭격기 사령관이 더 이상 폭격기에 호위가 필요없다고 말한 시기가 8월 초입니다,

덧붙이자면 한국 공군의 정찰기 그러니까 ki-9 아키톰보의 전적은 불확실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주간 정찰기로 종종 쓰였다는 사실은 확실하나 그 것이 미 공군의 폭격을 유도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요,;
6933 2016-06-02 23:51:34 0
로마군 글라디우스 칼 사용법 관련 궁금증 [새창]
2016/06/02 23:22:54
https://www.youtube.com/watch?v=GIUQAtdz2i8

아 물론 어느 정도 과장은 가려봐야 할테지만요; 아무튼 첫 댓글의 동영상에 이은 트레이닝 동영상 하나 더 첨부해봅니다,
6932 2016-06-02 23:48:48 0
로마군 글라디우스 칼 사용법 관련 궁금증 [새창]
2016/06/02 23:22:54
https://www.youtube.com/watch?v=k71x-TmobGo

동영상을 하나 더 넣어보자면 글라디에이터인데 영화 자체가 굉장히 고증이 잘 되어 있는편이라 상기 동영상의 그 것처럼 사용법에 대한 궁금증을 푸시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6931 2016-06-02 23:44:56 0
로마군 글라디우스 칼 사용법 관련 궁금증 [새창]
2016/06/02 23:22:54
그리고 위력을 이야기 해주셨는데 사람 하나 잡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칩니다,

베게티우스의 기록을 보면 로마군의 신병은 각자 나무 기둥앞에 서서 목검과 바구니로 짠 방패를 들고, 그 기둥의 머리, 얼굴, 측면과 다리를 노려 공격하는 법부터 연습한다고 합니다, 예컨데 갑옷에 가려지지 않은 오금, 목 등 인체의 급소를 전부 찣고 베고 찍는 연습을 골고루 한다는 것으로

이는 디오니시수스의 갈리아 전기를 다룬 저서에도 묘사가 됩니다만 마구잡이로 사방팔방에 휘둘러대는 갈리아인의 칼 아래로 파고들어서 사타구니를 올려치고, 옆구리를 찔러넣고, 가슴의 치명적인 부위에 검격을 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방어구로 단단히 보호하고 있는 자를 보면, 무릎과 발목의 건을 베어 끊어서 바닥에 쓰러트려, 야생동물처럼 방패를 씹으며 울부짖게 만든다는 묘사가 나오지요,
6930 2016-06-02 23:42:21 1
로마군 글라디우스 칼 사용법 관련 궁금증 [새창]
2016/06/02 23:22:54
https://www.youtube.com/watch?v=q7rPY3hq-EM

본문에서 가져오신 사진은 전형적인 중기형의 글라디우스로 대강 어떻게 쓰냐 하면 상기 링크의 리인액트와 같습니다, 그리고 왜 오른쪽에 패용하는 가라는 질문을 주셨는데 간단한게 상기의 동영상에도 나오지만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들기에 뺄때 걸리적 거립니다;
6929 2016-06-02 17:41:06 0
신분제가 존속되어 온 이유 [새창]
2016/05/30 17:51:09
본래, 혼연된 종교 ∙ 문화의 복합체에 대한 편의적인 호칭으로, 명쾌한 정의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힌두(Hindu)>라는 것은 오늘날에 파키스탄을 흐르는 인더스강(산스크리트어로 Sindhu)의 명칭에 기원을 가진 페르시아어이며, <인더스강 유역의 사람들>을 의미했는데, 인도(이 경우 현재의 인도만이 아니라, 근린제국도 포함하는 인도아 대륙이라고 하는 지역)에 침입해온 이슬람 교도가 자신들과 종교를 달리하는 인더스강 유역의 원주민을 힌두라고 하여, <인도인>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영어 등의 유럽어에도 채용되어서 힌두의 종교 ∙ 문화를 가리키는데 이즘을 붙여서 힌두이즘(Hinduism)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으며 힌두교는 이 말의 역어이다. 그러나 이 말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인도의 말은 없다.
힌두 교도 중에는 자신들의 종교를 <사나타나 다르마 (Sanātana-dharma, 영원한 법)>나 <바이디카 다르마 (Vaidika-dharma, 베다의 법)>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다지 일반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힌두교라는 말은 가끔 브라만교와 구별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 브라만교는 불교흥기 이전에 브라만계급을 중심으로 베다성전에 의거해서 발달한 종교를 가리킨다. 한편, 힌두교는 기원전 6~기원전 4세기에 베다문화의 틀이 붕괴해서 브라만교가 토착 민간신앙 등을 흡수해서 크게 변모한 형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양자가 완전히 별도의 것은 아니며, 넓은 의미로 힌두교라는 말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브라만 교도 안에 포함한다.
힌두교는 특정한 교조에 의해서 창시된 것이 아니라, 인도지역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것이다. 힌두교를 의미하는 적당한 말이 인도의 언어에 없다는 사실이 시사하듯이, 힌두교는 개인 개인에 의해서 의식된 신앙 체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인 관념이나 의례와 융합된 사회관습적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데 입신이나 개종에 의해서 힌두 교도가 된 것은 아니며, 힌두 교도의 자식으로서 태어나는 것이 바로 힌두 교도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런 성격은 힌두교가 불교나 그리스도교 등의 세계종교에 대해서, 유대교 등과 함께 민족종교라고 불리는 이유의 하나이다. 그러나 힌두교가 인도를 넘어서 전파된 경우도 있으며, 인도 그 자체가 유럽에 필적하는 하나의 세계라는 등의 이유로, 민족종교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힌두교는 복잡다양한 복합체로, <종교>라는 말의 의미를 일탈하고 있는데 신 또는 절대자를 보아도, 힌두교는 일원론도 일신교도, 이원론도 다신교도, 무신론도 그 중에 포함하고 있다. 한편 힌두교는 그리스도교 등이 배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포섭력을 가지며 모든 것을 흡수하여 성장한다. 따라서 힌두교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극도로 발달한 철학체계에서 그 저변에 있는 가장 원시적인 신앙이나 주술도 그 중에 수용하고 있다. 힌두교는 고도의 신학이나 윤리 체계를 포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카스트제도나 아슈라마(생활기)제도를 비롯해 인간생활의 전반을 규정하는 제도, 법제, 습속 등을 내포하고 있다.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생활법 (a way of life) 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과 같은 성격에서 유래한다.

어떻게 시간과 사정상 답글을 띄엄띄엄 쓰게되었는데 덧붙이자면 상기에 인용한 앞서 님께서 제시하신 종교학 대사전의 개요에서 볼수 있듯 브라만 교와 힌두교는 유대교와 기독교 같이 교리적 해석이나 사고관이 극명하게 다른 관계가 아니며 도리어 경전을 비릇한 사상적 측면 등 앞서 언급드린바와 같이 브라만 교가 힌두교 내에 위치해 있다고도 해석할 여지가 있을 정도로 연관성이 매우 뚜렷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유대교와 기독교와 같이 서로 다른 종교라는 비유와 해석을 붙이는것은 잘못된 사례라 볼수 있겠지요.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 136 137 138 139 140 >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