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84
2017-06-16 08:28:21
4
으응 보면 볼수록 재밌어요
後句驪王宮生而開目能視, 國人懷之, 及長勇壯, 數犯邊境. 和帝元興元年春, 復入遼東, 寇略六縣, 太守耿夔擊破之, 斬其渠帥. 安帝永初五年, 宮遣使貢獻, 求屬玄菟. 元初五年, 復與濊貊寇玄菟, 攻華麗城[六]. 建光元年春, 幽州刺史馮煥、玄菟太守姚光、遼東太守蔡諷等將兵出塞擊之, 捕斬濊貊渠帥, 獲兵馬財物. 宮乃遣嗣子遂成將二千餘人逆光等, 遣使詐降;光等信之, 遂成因據險阨以遮大軍, 而潛遣三千人攻玄菟、遼東, 焚城郭, 殺傷二千餘人. 於是發廣陽、漁陽、右北平、涿郡屬國三千餘騎同救之, 而貊人已去. 夏, 復與遼東鮮卑八千餘人攻遼隊[七], 殺略吏人. 蔡諷等追擊於新昌, 戰歿, 功曹耿耗、兵曹掾龍端、兵馬掾公孫酺以身扞諷, 俱沒於陳, 死者百餘人. 秋, 宮遂率馬韓、濊貊數千騎圍玄菟. 夫餘王遣子尉仇台將二萬餘人, 與州郡幷力討破之, 斬首五百餘級.
[六]華麗, 縣, 屬樂浪郡
[七]縣名, 屬遼東郡也
그 후 구려왕 궁(宮-6대 태조대왕)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볼 수 있었고 국인(國人)들이 이를 두려워했다. 장성하자 용맹하고 굳세어 여러 번 변경을 침범했다. 화제 원흥(元興) 원년(105년) 봄, 다시 요동에 들어와 6개 현을 약탈하자 태수 경기(耿夔)가 이를 격파하고 거수(渠帥-중국 고대사서에서 주변민족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범칭. 군장君長보다는 격이 낮음)를 참했다.
안제 영초(永初) 5년(111년), 궁이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현도에 속할 것을 청했다.
원초(元初) 5년(118년), 다시 예맥(濊貊)과 함께 현도를 약탈하고 화려성(華麗城)을 공격했다. (6)
건광(建光) 원년(121년) 봄, 유주자사 풍환, 현도태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 등이 군사를 이끌고 새(塞)를 나와 고구려를 공격해, 예맥의 거수를 포획하거나 죽이고 병마(兵馬)와 재물(財物)을 노획했다. 이에 궁이 사자(嗣子-적자,상속자)인 수성(遂成-7대 차대왕, 태조대왕의 동생)을 보내 2천 여명을 지휘해 요광 등을 맞이하게 하고 사신을 보내 거짓항복 하였다.
요광 등이 이를 믿자 수성은 험요지를 점거해 대군(大軍)을 차단하고 은밀히 군사 3천 명을 보내 현도, 요동을 공격해 성곽을 불태우고 2천여 명을 살상했다. 이때 광양, 어양, 우북평, 탁군속국(광양, 어양 등은 모두 유주 소속의 군郡)에서 3천여 기병을 뽑아 함께 구원하게 했는데 이미 맥인(貊人)은 떠난 후였다.
여름, (고구려는) 다시 요동의 선비(鮮卑)족 8천여 명과 함께 요수(遼隊)(7)를 공격해 관원과 백성을 죽이고 약탈했다. 채풍 등이 신창(新昌-요동군 신창현)에서 요격했으나 싸우다 죽었고, 공조 경모, 병조연 용단, 병마연 공손포는 몸으로 채풍을 지키다 모두 진중에서 전사했다. 사망자가 백여 명이었다.
가을, 마침내 궁이 마한, 예맥의 수천 기병을 이끌고 현도를 포위했다. 부여왕이 아들인 위구태를 보내 2만여 명을 이끌게 했는데 주군(州郡)의 병력과 힘을 합해 이를 격파하고 5백여 급의 머리를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