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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3 2017-06-19 19:57:16 1
고구려는 북위에 정말 조공했나? [새창]
2017/06/19 18:39:53
마광팔이면 뭐 물타기니 나발이니 할것도 없는 진성 환빠 아닙니까, 진짜 대단하시네;
8832 2017-06-19 12:24:11 0
왜 역사학계는 재야의 공격에 짜증을 내는가. [새창]
2017/06/19 11:54:37
거울을 보고 떠드시능 모습 잘 보았습니다, 네 그래서 해당 글에서 반론이라고 가져오신 한반도 사민설이 어디서 나오나요? 대체 언제쯤 말씀해주실겁니까?

이런 논지들을 들고 나오니 재야사학 나부랭이들이 비웃음 당하지요.
8831 2017-06-19 12:08:52 0
왜 역사학계는 재야의 공격에 짜증을 내는가. [새창]
2017/06/19 11:54:37
호갱님, 아님 말고 같은 논리로 기어나오시면서요 호갱님, 학계에서 상대 안해준다고 빼액질하면 안되요 호갱님,
8830 2017-06-19 12:07:20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호갱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상기 링크에서 한반도 사민설에 관한 내용을 가져와 주세요 호갱님

호갱님 참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웃긴 일이세요 호갱님, 내로 남불을 말씀하시는데 정작 본인께서 이렇게 안보여 안들려 빼액질하는건 인간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세요 호갱님, 정신 승리도 이정도면 굉장하시다는 말씀밖에 드릴게 없어요, 호갱님

본인이 뭘 가지고 논박하는지도 모르고 해당 글에서 뭘 말하는지도 모르며 상대가 지금 뭘 말하는지도 답글 하나 않읽어보시고 계시니 말이에요 호갱님
8829 2017-06-19 12:05:22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호갱님, 정독좀 해보세요 호갱님, 난독증과 이해력 부족을 이렇게 인증하시면 정말 웃긴 일이세요 호갱님,

'모용외가 낙랑군을 두었답니다. 그럼 어디에 두었을까요? 불행히도 이 당시 기록에서 낙랑군의 위치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것이 어디에 있었든지 고구려에 의해 축출된 곳에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 낙랑군의 위치는 두 개가 되는 것입니다.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에 있었던 위치와 모용외가 설치한 위치의 두 개지요.'

여기에서 사민한 것은 후자인 모용외가 설치한 낙랑군이세요 호갱님

이렇게 까지 설명드렸는데 한반도 사민설을 주장하시면 그냥 빼액질에 녹음기 인증이세요 호갱님
8828 2017-06-19 12:03:44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호갱님 갈수록 점입가경이라 위의 답글에서 단락 하나를 옮겨올게요 호갱님,

'모용외가 낙랑군을 두었답니다. 그럼 어디에 두었을까요? 불행히도 이 당시 기록에서 낙랑군의 위치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것이 어디에 있었든지 고구려에 의해 축출된 곳에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 낙랑군의 위치는 두 개가 되는 것입니다.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에 있었던 위치와 모용외가 설치한 위치의 두 개지요.'

호갱님 지금 해당 글에서 한반도 사민설을 언급한 내용이 어디 있으세요 호갱님?
8827 2017-06-19 12:02:20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난독은 자제해주세요 호갱님, 지금 해당 링크에서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시구요 호갱님, 해당 글이 어떤 내용을 반박하는지 눈에 안보이시는것 같아요 호갱님, 우리는 그걸 난독증이라고 불러요 호갱님,

호갱님 링크에서ㅗ 반도 사민설을 언급한 내용이 뭔지부터 가져오세요 호갱님, 이해력이 딸리시는것도 이 정도면 정말 빼액질 급이세요 호갱님
8826 2017-06-19 12:01:09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호갱님 답글 다는 사이에 말씀을 이어주셨는데요 호갱님 해당 링크에서 말하고 있는건 한반도 사민설이 아니라 모용외가 설치한 요서에서의 사민이세요 호갱님,

호갱님 제가 링크해드린 글은요, 호갱님, 가져오신 글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반론하는 글이세요 호갱님, 이에 대하여 말씀을 해달라고 하시는데요 호갱님, 정신 승리 하지 마시고 해당 링크에 대한 재반론이나 해보세요 호갱님,
8825 2017-06-19 11:59:27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호갱님 그리고 계속 취사선택하고 불리한건 배제하실것 같아서 해당 블로그 원문을 더 긁어 왔어요 호갱님

(중략)

이렇게 해서 낙랑군은 한반도에서 축출된 것입니다. 그것이 낙랑군의 끝이 아니라는 게 후대의 바보 재야사가를 혼란케 하는 것입니다. (제발 사서 좀 읽으십시오.) [자치통감]의 뒷 구절을 마저 읽겠습니다.

모용외가 이들을 위하여 낙랑군을 두고 장통을 낙랑군 태수에, 왕준을 낙랑군참군사로 삼았다.

모용외가 낙랑군을 두었답니다. 그럼 어디에 두었을까요? 불행히도 이 당시 기록에서 낙랑군의 위치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것이 어디에 있었든지 고구려에 의해 축출된 곳에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 낙랑군의 위치는 두 개가 되는 것입니다.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에 있었던 위치와 모용외가 설치한 위치의 두 개지요.

하지만 모용외가 그냥 명목 상의 이름만 가진 군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모용외의 막료 중에도 낙랑 태수를 역임한 자가 있었으며, 모용외의 세자 모용황도 “평북장군 조선공”으로 낙랑과 관련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선은 낙랑군의 한 현입니다.) 또한 현도군도 이동해 오기 때문에, 낙랑군이 실제 설치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에 참고할만한 것은 [위서] 세조기(世祖紀)입니다. [위서]는 북위의 역사를 기술한 책입니다. 모용외의 손자 모용준이 세운 것이 “전연”입니다. 전연은 370년에 망했고, 북위는 386년에 세워진 오호십육국 중 하나입니다. 그럼 [위서] 세조기를 읽어보겠습니다.

연화 원년(432년), 영구, 성조, 요동, 낙랑, 대방, 현도 6군의 백성 3만 가구를 유주로 옮겼다.

없는 군현의 백성을 옮길 수는 없습니다. 이를 보면 분명히 낙랑, 대방 등의 군현이 모용외에 의해 옮겨져서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서 지형지에는 이런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樂良郡前漢武帝置,二漢、晉曰樂浪,後改,罷。正光末復。治連城。領縣二。戶二百一十九 口一千八。永洛正光末置。有鳥山。帶方二漢屬,晉屬帶方,後罷。正光末復屬。
낙양군은 전한 무제가 두었다. 양한과 진에서 낙랑이라 불렀는데 후에 고쳤다가 파하였다. 정광(520-525) 말년에 복구했다. 치소는 연성이다. 현을 둘 가지고 있다. 호는 219, 인구는 1천 8이다. 영락현은 정광말에 두었으며 조산(鳥山)이 있다. 대방현은 양한과 진에 속했는데, 후에 파하였다. 정광말에 다시 속하게 했다.

[위서] 지형지에 따르면 요동군의 호는 131, 인구는 855에 불과하니 낙랑군이 그보다 더 큰 군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분명히 알겠지만 낙랑군은 고구려에 의해 축출된 후 모용외에 의해 어딘가에 설치된 것입니다. 그럼 이 낙랑군은 모용외의 통치가 미치는 곳 어딘가에 있었겠죠? 그곳이 어디일까요?

모용씨는 선비족의 하나입니다. 본래 시라무렌 강 상류에 살던 모용씨는 285년에 요동에서 모용외를 수장으로 추대합니다. 289년 대능하 방면을 차지하고 307년에는 선비대선우의 지위에 오릅니다. 중심 근거지는 요서의 창려군(昌黎郡)이었습니다. 동진 원제는 모용외를 평주 자사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고구려는 앞에 본 것처럼 미천왕 때로 모용외와 요동의 지배권을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었습니다.

모용외의 본거지는 창려군이었으므로 옮겨간 낙랑군도 그 부근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요서 일대에 낙랑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중략)

호갱님 보시다시피 모용외가 따로 설치한 낙랑군에서의 사민을 말하고 있지 가져오신 글에서 처럼 한반도 사민설을 부르짖지 않으세요 호갱님

호갱님 반박이라고 가져오신 글이 저따위니까 비웃음 당하시는것이세요 호갱님, 링크에서 반박하고 있는 내용을 다시 들고오시면서 무슨 재반론이세요 호갱님?
8824 2017-06-19 11:55:11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호갱님 교치설 가지고 빼액질이신데요 호갱님 가져오신 글은 읽으셔야 죠, 호갱님

(중략)

첫째, 고구려 미천왕 때 장통이 점거했다는 낙랑군과 대방군은 평안남도나 황해도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천왕 때라면 고구려가 이미 요동반도는 물론 그 서쪽 상당 부분까지 차지한 상태였다. 낙랑군이 평양지역에 있었다면 장통이 1000가구를 거느리고 자국 영토를 지나 지금의 베이징 부근인 고대 요동에서 활동하던 선비족 모용씨에게 가는 것을 눈 뜨고 구경하고 있었겠는가?

둘째, 1000가구의 낙랑인이 이주한 것을 가지고 낙랑군 전체가 이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낙랑군의 인구에 대해 ‘한서지리지’ 낙랑군 조는 “6만2812호에 40만6748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략 한 가구의 구성원이 7명 정도라는 이야기다. 즉, 장통이 거느리고 간 1000가구는 7000명 정도라는 뜻이다. 40만7000여 명의 낙랑인 중에 7000명이 이주한 것을 낙랑군 전체가 이주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나머지 40만 명은 어디로 갔나?

(중략)

호갱님 축출되어 요서 지역으로 이동했다는데 가져오신 글에서는 뭘 말씀하시고 계시나요 호갱님?

호갱님 내로 남불 같은 멍멍이 짖는 소리 하지 마시고 현실을 보세요 호갱님, 정신 승리도 이정도면 수준급이세요 호갱님

아이고 호갱님 가져오신 글이 뭘 말하는지는 읽어보시고 재반론이라고 하셔야죠 호갱님
8823 2017-06-19 11:52:24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호갱님 이렇게 난독 인증 거하게 하실줄은 몰랐네요 호갱님 그리고 호갱님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떤 단어를 쓸때는 해당 단어의 용례에 대하여 좀 아셔야 될 필요가 있어요 호갱님

(중략)

건흥 원년 (313년) 요동의 장통이 낙랑, 대방 2군에 웅거하여 고구려왕 을불리(미천왕)와 서로 공격하여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다. 이에 낙랑의 왕준이 장통에게 권고하여 백성 천여 가를 이끌고 모용외에게 귀부하게 하였다.

(중략)

자, 길고 지루해서 이따위 포스팅은 더 읽지 않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연도별로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313년 낙랑군, 한반도에서 축출되어 모용씨의 요서 지방으로 이동함
432년 북위 세조가 낙랑군 백성을 유주로 사민시킴. 북평군에 조선현을 둠 (낙랑군은 쇠락하여 폐지된 것 같음)
52X년 북위에서 다시 영주에 낙랑군을 설치함
525년 영주를 잃어버림. 낙랑군도 이무렵 없어진 듯
537년 남영주에 낙랑군이 설치됨. 남영주는 [수서] 지리지에 나오는 수성임

(중략)

네 호갱님 어디에서 한반도 사민 설이 기어나요 호갱님? 가져오신 글만 봐도 한반도 사민설은 없으세요 호갱님,
8822 2017-06-19 11:43:13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호갱님 망상은 호갱님이 자제하셔야 되요 호갱님, 모용씨가 설치한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으셨어요 호갱님, 사민 정책이 이루어진 것은 그 낙랑군이구요 호갱님, 근데 가져오신 글에서는 한반도 사민설을 짖고 있으세요 호갱님 이렇게까지 말씀드렸는데 뭔 말인지 모르시면 정말 난독증 인증이세요 호갱님,
8821 2017-06-19 11:38:35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답글 달아주시는 사이에 헛소리를 이어주셨는데요 호갱님, 해당 글을 읽어보세요 호갱님 사민 정책이 언제 있었나요, 호갱님? 물타기 운운하시면서 헛소리를 하시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세요 호갱님, 불리하니까 헛소리를 하는게 아니라 호갱님이 빼액질 하고 난독증 증세를 보이시는게 문제세요 호갱님,

그리고 호갱님 평양에서 발굴된 유물은 봉니뿐이 아니시구요, 호갱님, 관련 사료도 교차 검증 안 거친게 아니세요 호갱님, 유사 역사학 나부랭이들이야 취사선택이나 입맛에 따라 다른걸 배제하지만요 호갱님 학계에서 그러시면 인간 취급 못받으세요 호갱님
8820 2017-06-19 11:36:39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또한 낙랑군 조선 무덤이라고 하셨는데요 호갱님, 정확히는 낙랑군 조선현 출신의 무덤이 한구가 발굴되었는데요 호갱님,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내용은 북위 태무제인 탁발도의 조선현 네 낙랑군 조선현이 아니라 조선현에 대한 사민 정책에 관한 것일뿐 어떠한 낙랑군의 비정에 대한 내용이 없으세요 호갱님, 탁발도의 사민 정책도 낙랑군의 이전과는 무관하구요 호갱님, 전체 무덤 130여개 가운데 2기만이 북제의 시기이고 그중 하나뿐이라 낙랑군과의 연관성은 더더욱 떨어지세요 호갱님
8819 2017-06-19 11:30:43 0
'낙랑군은 갈석산 및 요동에 있었다'라고 말하는 중국사료들. [새창]
2017/06/19 01:02:11
그리고 호갱님 다른 분께 말씀해주신 내용인데 봉니는 보낸 쪽과 받는 쪽 모두에게 남아있을수 있으세요 호갱님

호갱님은 봉니가 뭔지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호갱님, 공문서 등을 봉인하기 위하여 죽간 등을 묶은 끈에 진흙을 붙이고 인장을 눌러찍은걸 봉니라고 말해요 호갱님, 따라서 베이징 일대에서 봉니가 나왔다고 임둔군이 거기다 라고 할수는 없으세요 호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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