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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8 2016-07-14 09:07:10 2
지나가시던 스님들이 이렇게 비범합니다!!(자작짤 있으오) [새창]
2016/07/14 01:08:14
사실 기록을 보면 저 분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불법을 추구하는 승려분들이 아니라 전문적 수련 과정을 거쳐 가며 승려라는 이름아래에 이름 좀 있는 큰 절마다 제각기 별도로 양성되고 관리?되며 활동한 분들이지요, 기록에 따라 아예 승려가 아니라 하는 내용도 있는데 가령 고려도경 같은 경우에는 종교와는 괴리된 형벌 부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7167 2016-07-14 00:50:50 0
역사를 잊은민족 [새창]
2016/07/12 12:53:13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장 오래된 레퍼런스는 2010년에 출간된 1910년, 그들이 왔다 라는 우리나라의 서적인데 문제는 그 서적에서 조차 상기 발언이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적시하지 않은채 인용하고 있는데 재밌는 것은 해당 서적에서는 위대한 옛 조선의 영광과 같은 언급이나, 뒤의 100년 뒤에 다시 돌아온다 같은 이야기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즉 기존의 도시전설과 같은 낭설에 이리저리 살을 붙여가며 사람들을 잘 낚을수 있게 덩치를 키워나간겁니다.
7166 2016-07-14 00:46:50 0
역사를 잊은민족 [새창]
2016/07/12 12:53:13
첨언을 하나 하자면 실제로 아베 노부유키는 상기의 발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가령 일본 제국의 조선 총독부는 식민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을 찬미할 이유도 무엇도 없지요, 사실 그러한 것을 떠나 그 누구도 상기 발언의 원문이나 레퍼런스를 확인한바 없으며 확인된바도 없지요, 즉 근래에 들어 창작된 낭설에 불과합니다.
7165 2016-07-11 22:18:00 0
(임진왜란 직전까지) 조선군의 백병전 실력이 언제부터 약화됬었나요? [새창]
2016/07/11 02:35:11
종특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백병전이 약화되었는가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못하고 잘하고의 의미 부여를 할게 없다는 거죠, 그렇게 제도가 완비되고 기강이 바로선 세종때부터 이미 번상병들의 문제는 너무나 고착화되어 이미 수정이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했으며 사실상 조선군 전후기의 병력의 숫자를 책임지는 잡색군은 병력을 모을수 있다는 사실에만 의의를 두어야 할 상황입니다,

말씀하시는 그 제도가 무너진게 아마 16세기 무렵의 진관 체제의 붕괴를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만 그 것은 육수군의 영진군이 가지는 여러 진들의 절제도위와 만호등이 진을 중심으로 스스로 적을 방어하는 책임 그러니까 자전자수 체계의 붕괴를 말하는바 이러한 자전자수의 체계가 왜 성립되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백병전을 못한다 잘한다 이야기 할게 없지요, 애시당초 진관 체계는 전 국토의 효율적 방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요충지를 중심으로 방비하되 그 틈을 잡색군으로 막는 다는 것인데 가장 지방군 중 정예라 할수 있는 번상병 부터가 저러하며 고질적인 기마병의 부재 및 재정 지원의 한계로 말미암아 군제의 폐단 이전에 편제부터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 언제부터 약화되었는가를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조선군은 솔직하게 말해서 크게는 전후기로 나누어 볼수 있겠습니다만 그 질이 크게 달라진바는 없습니다, 그 들이 가진 전력 내에서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였고 때로는 이득을 본바도 있습니다만 그 것이 뭔가 엄청난 변화를 야기하거나 혹은 전반적이고 총괄적인 질적 향상을 의미한 적은 없지요, 다만 지휘관이 누구인가 어떠한 상황인가 등에서 승률이 좀 차이가 벌어질 뿐입니다.
7164 2016-07-11 19:44:51 0
(임진왜란 직전까지) 조선군의 백병전 실력이 언제부터 약화됬었나요? [새창]
2016/07/11 02:35:11
본문에서 언급한 척준경과 같은 이가 대두된 배경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원정 하나 해보자고 온 나라의 정남 즉 성인 남성을 있는데로 끌어모으는 한편 기병을 충족하고자 탈줄 안다면 말이 일단은 걷기라도 한다면 가리지 않고 끌어모았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여진과의 전쟁입니다, 병력들은 비 전투원 내지는 소규모 부락을 상대로는 높은 전투력을 보여주었으나 제대로 된 상대와의 전면전은 어떠한 개인의 뛰어난 무공이 아니라면 지탱 자체가 말 그대로 불가능했습니다, 각 성곽과의 유기적 연계는 이미 그 능력상 불가능한 것을 넘어 아예 전쟁 지속능력이 없어 아니 나라에 생산력을 갉아먹는 상황이라 병력을 최소한도로 줄일수 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유지 조차 안되는 상황에 내몰려 포기할수 밖에 없었지요,

황산대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된 전력조차 구성하기 어려운 비참한 상황에서 기라성 같았던 몇몇 장수들의 무공과 그 능력됨에 기대어 겨우 몰아낼수 있었습니다, 예컨데 딱히 고려시대라고 상황이 다른건 아닙니다, 오히려 해안가를 포기하고 내륙으로 거점을 옮기는 등 더 처절하다면 처절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나마 조선에 들어서 조금 호전되었지요,
7163 2016-07-11 19:38:18 1
(임진왜란 직전까지) 조선군의 백병전 실력이 언제부터 약화됬었나요? [새창]
2016/07/11 02:35:11
사실 백병전이 언제부터 약화되었는 가는 사실 실례되는 말씀입니다만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조선 초기부터 주축이라고 할수 있는 번상병들이 장구류를 팔아 유흥비와 집값을 마련하며 무단으로 군영을 이탈하여 수 개월간 집에 내려가 볼일을 보고 오는 등 그 군기의 해이함이 이루 말할수 없으며 도를 넘었으나 도리어 근무를 잘서고 규칙을 잘 지키는 이를 벌하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정도로 고착화되었습니다, 군마의 경우는 뒤를 생각지 않는 무분별한 공납이 여말부터 조선 전기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되어 사실상 왕이 탈 말 조차 구할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으며 기병은 서류상과 실지의 수가 다름을 어떻게 극복할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하기에 질적인 측면에서 이미 조선초기부터 무너져 내려간지 오래이고 사실상 조선군을 지탱하는 지방군의 경우는 아예 실질적인 훈련은 커녕 소집조차 제대로 되지 않던것이 사실입니다.;
7162 2016-07-10 12:40:34 0
일제가 조선의 신분제를 폐지시켰다는건 허위사실 [새창]
2016/07/09 16:54:04
뒤늦게 보니 참 고질적인 문제인 난해한 문장력으로 이해가 어려울것 같아 첨언하자면 형평사 운동과 수평사 운동은 오히려 신분제 타파의 증거 아닌 증거입니다, 당시 신분제가 소멸되어 일본 제국의 천황 아래에 모두가 평등한 상황에서 그 이전의 작금의 소멸된 신분제가 안고 있던 악폐습, 모순, 갈등 들이 고스란히 표출되었던 까닭에 일어난 사회 운동이니 말이지요,
7161 2016-07-10 11:44:32 3
[새창]
그래서 얼마죠?
7160 2016-07-10 10:30:52 0
일제가 조선의 신분제를 폐지시켰다는건 허위사실 [새창]
2016/07/09 16:54:04
글쎄요, 여기에서 왜 투표권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지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어쨌거나 내 외지인은 물론이거니와 신분 등에 있어 차별 없이 선거권은 여성을 제외한 모두에게 있었던 상황인것을 떠나 프랑스의 입헌 의회의 1791년 헌법에서 볼수 있듯이 군주제 하에서도 얼마든지 투표권을 부여받을수 있는 바 투표권이 신분제의 유무는 물론이거니와 평등을 입증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7159 2016-07-10 09:23:02 0
일제가 조선의 신분제를 폐지시켰다는건 허위사실 [새창]
2016/07/09 16:54:04
그리고 을사 오적이라고 전부 참여한건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것 같은데 이후의 제도 정비에 있어 비단 일본 제국뿐만아니라 당시의 정미칠적을 비릇하여 여러 교집합을 이루었지요;
7158 2016-07-10 09:21:14 0
일제가 조선의 신분제를 폐지시켰다는건 허위사실 [새창]
2016/07/09 16:54:04
참 조선 귀족령의 제정시 일선에서 조율했던 송병준을 빼먹었네요, 이분이 아니셨다면 물론 if는 없겠습니다만 대한제국 황실이 그렇게 바깥으로 밀려나거나 괴리될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7157 2016-07-10 09:19:26 0
일제가 조선의 신분제를 폐지시켰다는건 허위사실 [새창]
2016/07/09 16:54:04
음 첨언을 하나 해보자면 저는 윗 분들의 의견 들중에 신분 특권의 부여에 동감을 하는 편입니다, 일단 일본 제국 내에서 신분제라는 것은 없습니다, 명목상이나마 어쨌든 모든 신민들은 천황 아래의 평등한 위치에 존재하되 거기에서 일부 계층에게 특권을 약속한 바 이 것은 신분의 고하라기 보다는 개혁에 있어 혹은 이후의 정치적 행보에 있어 자신을 따르거나 도움이 되거나 하여튼 그러한 이들에게 명분과 이권을 챙겨준 것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가령 그러한 사례를 생각해볼만한게 바로 본문에 언급된 조선 귀족령일것라 봅니다, 조선 귀족령의 바탕은 을사오적과 일제가 합심하여 고심한 결과물로서 그 내용에서 볼수 있듯 한일 합방에 있어 황실 및 황족과 한일합병 과정에 훈공 있고 충순한 자에 대한 보상을 약속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거기에서 황실 및 황족을 정치의 바깥에 두기 위하여 친왕과 황실을 각각 다른 대우를 하는 한편 식민통치를 앞장서 선전하고 정당화할 전위대로서 이용하며 식민통치의 이용가치가 있거나 혹은 그에 따른 댓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을시 기존의 전근대 사회에서 유지하던 신분과 부를 유지시켜주거나 그에 사응하는 신분을 내려주었습니다, 예컨데 신분제 자체는 타파된게 맞으며 단지 상응하는 이권을 챙겨준 수준이라는 것이지요,
7156 2016-07-10 09:10:53 1
일제가 조선의 신분제를 폐지시켰다는건 허위사실 [새창]
2016/07/09 16:54:04
형평사 운동이나 수평사 운동과는 조금 케이스가 다른 것이 이 사회 운동들은 명목상이나마 모든 신분제가 평등한 가운데 신분제 소멸 이전의 귀족 및 이전, 이후의 공훈을 세운 이들에게 신분 특권을 내려준바에 기인하는 건 아니지요,
7155 2016-07-06 23:32:11 10/12
100인 목베기 시합.jpg [새창]
2016/07/04 19:31:42
일단 이 사건에서 염두를 해둬야 하는 것은 당시 일본 제국의 신문에 쓰여진 기사는 일본 제국군의 위엄을 찬미하는 프로파간다용 기사라는 겁니다, 즉 후에 조사 결과 밝혀진 민간인, 포로 학살을 언급한 기사는 아니며 얼마나 언론 통제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에서 16사단 제9연대 제3대대 제3보병포 소대 소대장인 무카이 도시아키 소위와 동 대대의 참모 장교인 노다 츠요시 소위가 양자강 하류부터 남경에 이르기까지 상상 이상의 빠른 진격의 최전선에서 선봉을 다투며 큰 공훈을 세웠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볼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것이죠, 네 과연 이 양반들이 참수한 상대가 정말 군인인가 하는 문제인데 기사에서 언급되는 남경과 단양에서 벌인 공훈 경쟁의 대상이 과연 누구였을까? 하는 건 이미 수없는 교차 검증으로 그 아수라장의 사건은 밝혀진바 있으며 지금도 밝혀지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결국 본인들의 인터뷰로 포로 및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사건임이 확인 사살되었지요,
7154 2016-07-04 00:07:32 1
구한말 이탈리아도 한국에서 이권을 가져갔네요 ㄷㄷ [새창]
2016/07/03 21:29:02
애시당초 일본이 우리나라의 광업권을 빠르게 강탈하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한것도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등이 보다 효율적인 수탈을 위하여 광산규칙안을 제정 일본에 참여 의사를 타진한 까닭이고 이래저래 근대적 개발 사업에 관련된 현실을 보면 참 여러모로 시대가 암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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