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7
2016-07-24 00:34:03
0
더하자면 예종시기의 기록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중략)
장장(長墻)이 비록 요하(遼河)에서 압록강(鴨綠江)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염려할 만한 것이 있는데, 만약 벽동(碧潼)의 경계(境界)인 산양호(山羊湖) 사이에 이른다면, 이는 동한(東韓)의 땅이어서 저들의 봉역 가운데에 있으니, 사람에 있어서는 팔꿈치와 겨드랑이의 사이와 같고 인가(人家)가 울타리 안에 있는 것과 같아, 한쪽은 여기에 있고 한쪽은 저기에 있어서 저들의 주장에 달려 있습니다. 어찌 다만 장사(長沙)의 무수(無袖)692) 뿐이겠습니까? 이것이 그 해의 세번째입니다.
이와 같은 이해(利害)는 삼척 동자(三尺童子)라도 알지 못함이 없습니다. 건주(建州)의 사람들은 형세상 반드시 와서 싸울 것이나, 가까이 들리는 일은 항상 그 실지를 잃음이 많을 터인데, 만약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는데도 태평하게 주청(奏請)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우리를 무능(無能)하다고 여기고 더욱 능욕(凌辱)하는 일이 있을 것이므로, 모름지기 급히 달려서 상주(上奏)하여야 할 것입니다. 연산 파절(連山把截)은 고황제(高皇帝)가 정한 바이므로 양국의 봉강(封疆)은 서로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벽동(碧潼) 이서와 의주(義州) 이북은 큰 강이 한계로 막혀 있어서 족히 염려할 것이 못되나, 이어 김보(金輔) 등 내사(內史) 족친(族親)을 보내어 들어가서 나라 사람들의 뜻을 아뢰어 제총(帝聰)에 이르도록 하여 요하(遼河)로부터 압록강(鴨綠江)에 이르기까지 쌓도록 할 수 있다면 어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청(請)에 따르지 않는다면 마땅히 자치(自治)하는 일이 더욱 엄중하게 하여 만세(萬世)토록 견고하게 할 뿐입니다.
신이 가만히 보건대, 평안도의 폐해로서 큰 것이 셋 있으니, 부방(赴防)이고 관부(館夫)이고 기재(騎載)하여 영송(迎送)·호송(護送)하는 데 지대하는 일입니다. 만약 벽동의 강 밖에다 또 장장(長墻)을 쌓는다면 북방(北方)의 수어(守禦)는 옛날에 비해서 가벼워질 것입니다. 만약 전과 같이 남쪽 경계의 군사로써 강변(江邊)의 땅을 지키게 한다면 백성들이 모두 요해(遼海)로 흘러 들어갈 것이니, 그 해로움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강 연안의 주(州)·군(郡)을 흩어서 적유령(狄踰嶺)을 관방(關防)으로 삼아야 할 것이니, 강계(江界)·위원(渭原)은 희천(熙川)에, 이산(理山)·벽동(碧潼)은 운산(雲山)에, 창성(昌城)·삭주(朔州)는 귀성(龜城)에 옮기소서. 이렇게 하면, 강변을 부방(赴防)하는 폐단은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중략)
즉 조선에서 관할하는 연산파절의 범주는 압록강, 두만강 이남 지역에 국한될뿐더러 조선에서 관할하는 지역은 그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리어 백성들이 그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계하고 있는바 실질적인 경계선을 어디로 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