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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3 2016-08-03 23:06:14 6
소드마스터 아이유gif [새창]
2016/08/03 20:52:26


7212 2016-08-03 22:24:36 0
신미양요때 미군은 왜 한강 하구로 진입해서 무력시위를 하지 않았나요? [새창]
2016/08/03 14:48:51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올라가고 싶어도 못 올라갑니다, 일단 미군이 승리한 이후 물러선것에서 볼수 있듯 한강 하구 유역의 조류 및 해역 조건 등으로 인하여 진입이 매우 어려운게 사실이고 한강 하구로 진입해봐야 뭐 이렇다 할 요충지나 주요 도시도 없는 것이 사실이지요, 일본이 괜히 제물포 등에서 상륙후 올라간게 아닙니다.;
7211 2016-08-02 23:49:03 1
조선 수군이 강했던 이유.jpg [새창]
2016/08/02 15:10:03
하나 더하자면 조선 수군의 유별난 소나무 사랑은 현재까지도 이해 불능의 떡밥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선박의 재료로는 삼나무가 보다 상위에 놓일정도로 그 단점이 매우 치명적인 터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 재료로 쓰인 것은 조선이 유일할 정도인데 그 것도 건조 기간이나 방식의 문제로 선박 수명이 매우 짧다는 걸 생각해보면 특히나 알수없는 일이지요.

더불어 판옥선의 높이 문제도 꽤나 뜨거운 떡밥중 하나입니다, 각선도본을 보면 단층 선박인 조선보다 오히려 낮은 것을 알수가 있고 다른 기록들을 찾아보더라도 오히려 외판의 기록은 낮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다 그나마 그렇게 만든 원인인 복원력의 문제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기록에 따라서는 판옥선과 거북선이 아예 구조 자체가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구조적으로 선미를 그렇게 낮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등등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총체적인 난국이라 할수 있는게 현실이지요.
7210 2016-08-02 23:41:26 0
조선 수군이 강했던 이유.jpg [새창]
2016/08/02 15:10:03
음...충각 돌격으로 격침 시킬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전과도 그러하거니와 그런 수준의 내구성이면 원양 항해 자체가 불가능한게 사실이지요, 또한 조선 수군의 전술은 화력전이 아니라 근접전에 더해진 약간의 화력전입니다, 사실 화력전으로 적선을 격침 시키거나 무력화 시키는 것이 하향 사격이 불가능한 조선 수군의 기술적 문제와 더불어 생산력의 문제로 인하여 거의 불가능한게 사실이고 기록을 놓고 보더라도 주는 돌격이지 화력 투사로 인한 적 선단 및 세력의 제거가 아닙니다, 끝으로 이순신 장군이 장약을 비릇한 어떠한 병기의 개발 및 연구에 종사하셨다는 사실은 사실 무근이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그 분은 말씀하신바와 같이 기존 조선 수군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극복하심과 동시에 일신의 능력을 다하여 승전을 이끌어내셨지 어떠한 기술적 발전을 통하여 승리하신게 아니지요.,
7209 2016-08-02 23:10:23 0
조선 수군이 강했던 이유.jpg [새창]
2016/08/02 15:10:03
일단 진지를 좀 먹고 답글을 이전의 관련 논쟁에서 옮겨 간단하게 달아보자면 명종 실록 16년 기사에 이르기를 화포의 모범적인 사용 방안은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서 빨리 노를 저어 곧장 적선에 가까이 다가가 그 높낮이에 따라 동시에 일제히 발사하는 것입니다, 사실 고질적으로 보고되는 명중률의 문제를 생각하면 중 장거리 사격이 안고 있는 경제적, 군사적 문제는 무시할 수없는게 사실이라 이게 정답일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문제를 정리한 책이 조선 수군의 훈련 교범 즈음 되는 수조 규식입니다.

이 당시 조선 수군의 양상?을 어느 정도 엿볼수 있는바 사거리 문제에 있어 총통은 200보 조총의 사거리는 100보 활은 50보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롤링과 피칭, 요잉등 사거리를 변동하는 다종다양한 상황이 가장 안정적일때를 기준으로 육군에 비해 1/5~1/10 수준인 200 - 240m의 사거리를 잡고있는 것으로 실제 전장에서는 이보다 짧아질수 밖에 없는바 이러한 측면에 대한 개선과 관련된 이순신 장군의 기록과 그로 인한 개선안 강구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순신 장군은 기존 수군의 패러다임을 혁파하지 않았음을 본인이 저술하고 있습니다, 무슨말 인가 하면 가령 한산도 대첩의 전과를 올린 장계에는 바다 가운데 나와 장수들에게 명하여 학익진을 벌려 각종 총통을 각각 쏘아 적선 2~3척을 격침시키니 여러척의 일본군이 그 사기가 떨어져 일시에 도망가려 하여 이에 흥분한 장수들이 승세를 타고 흥분하며 앞다투어 돌격하여 화살과 탄환을 쏘아 적선을 분멸하고 적을 해치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포 당항포 등의 승전을 기록한 장계에는 당항포에 도착했더니 왜선 한척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첨사가 불의에 '돌격하여 접근한 뒤' 총통을 쏘고 질려통을 비릇한 활과 철환등 개인화기를 투척하여 적을 살상하며 이후 접선을 위해 요구금 즉 쇠갈고리를 던져 끌어내었더니 반수 이상이 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기록을 적고 있습니다.

즉 이순신 장군이 기존의 조선 수군의 전술, 패러다임을 혁파하고 화력전 위주의 전술을 펼쳐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보기는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일전에 했던 비유를 빌자면 조선 수군을 허물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우신게 아니라 조선 군 전체의 고질적인 사기와 군율의 문제를 해결하는등 관리를 잘 하신 것이지요.

사실 까놓고 말해서 할려고 해도 할수가 없는게 생각조차 할수도 없었지만 그 이전에 생산력이라는걸 무시할수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원균에게 통제사를 넘길때 그 동안 열심히 모아 배비한 화약이 4000근 정도 됩니다, 근데 현자총통 20문을 기준으로 볼때 1회 사격당 화약이 250근이나 소모되지요, 뭐 이런 말은 뭐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어떻게 보면 답이 없는게 맞는데다 물론 다른 분들이 논 파하셨습니다만 본문의 기록이 잘못되었음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7208 2016-07-29 07:04:42 3
역사저널 그날 어떻게 보세요? [새창]
2016/07/28 23:38:20
역사스페셜과 대동소이 하죠, 아무리 전문가를 섭외한다 한들 시청률이라는 문제를 중시하는 윗분들의 의향을 무시할수 있겠습니까.
7207 2016-07-26 23:39:33 0
인천상륙작전 이 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JPG [새창]
2016/07/25 08:51:39
휴대폰으로 작성하느라 글을 쓰기 어렵고 글재주가 부족하여 전달이 어찌될지 모르나 덧붙이자면 김일성이 서울 방어를 위해 병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날짜는 19일 이후의 일로서 철원 지역에서 편성중이던 부대를 끌고 왔는데 이 들중 상당수는 언급하시는 초기의 고참병들이자 국공 내전을 뜷고 나온 이들이었습니다, 덧붙이자면 9월 공세를 말씀하시는데 가령 북한군의 13사단의 9천여명의 병력중 3천여명이 의용병이었으며, 15사단은 전쟁 초기부터 유지되어온 정예부대이고 다른 부대들 역시 대동소이한바 낙동강 전선에서 양측 모두 정예병이 70%이상 죽고 1주일 이상된 징집병들로 채워졌다 하시는 내용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 참으로 궁금해지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7206 2016-07-26 23:22:35 0
인천상륙작전 이 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JPG [새창]
2016/07/25 08:51:39
어떻게 답글을 달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잠시 고민을 하다 몇글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우선적으로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상기 답글부터 제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조차 하고 계시지 못하심이 너무나 명백하니 말입니다, 가령 정치 이야기가 해악이라는 논증 미상의 주장도 그러하거니와 지나친 자기중심적인 사고관을 엿볼수 있음과 동시에 반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며 전력이라는 것에 대한 본인조차 명확한 판단기준이 없는 주장을 강변하고 있으며 사실 수십여대의 전차와 그 이상의 차량이 서울을 수복하는 과정에서 격파당하고 노획당하였습니다만 괴멸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러한 전력의 부재를 그러한 전력의 존재 자체가 없다는 논지의 말씀하신 분이 전사를 읽어보았는지 반문하시는 것이 문제이지만 전체적으로 반론이 불가해지자 바로 나오는 인식공격이 답글을 작성하는데 들어간 시간들을 너무나 안타깝게 만듭니다, 그러시면서 누가 누구의 논점 이탈을 이야기 하시는지 말이지요,
7205 2016-07-26 07:22:13 0
인천상륙작전 이 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JPG [새창]
2016/07/25 08:51:39
휴대폰으로 작성했더니 답글이 두번씩 써지는군요, 아무튼 음 2선급 부대라고 하니 정확하게 감이 안오시는것 같은데 크로마이트 작전에 따른 서울 수복의 일련의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시길 바래요, 가령 신촌 일대에서 벌어진 안산에서 연희동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노고산, 와우산, 연희 고지 , 성산등을 확보하는 전투가 말씀처럼 단순한 게릴라 전일까요? 부평에서 제42기계화연대와의 전투에서 상대의 전력은 어떠했습니까? 김포공항은 또 어떠했고요? 그게 말씀하시는바와 같은 어린아이 손목비트는 수준이었을까요?
7203 2016-07-26 07:05:36 0
인천상륙작전 이 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JPG [새창]
2016/07/25 08:51:39
그리고 참 민망스럽기까지 한 부분이 양측 모두 정예병이 70%이상 죽고 1주일 이상된 징집병들로 채워졌다 하시는데 뭘가지고 말씀하시는겁니까? 또한 그게 낙동강 전선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지 괴멸당한게 아닙니다, 괴멸당한것은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후방 교란 및 보급선의 차단 등이 성공한 이후의 일이지 그 이전이 아니라고 드린 말씀과 무슨 관련성이 있을까요?
7202 2016-07-26 06:56:48 0
인천상륙작전 이 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JPG [새창]
2016/07/25 08:51:39
지속적으로 논점을 이탈하시는데 인천상륙작전은 어떠한 작전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의견의 총의을 이끌어낸게 아니라 정치 놀음과 권력으로 강행한 작전입니다, 거기에 일부러 진격속도를 늦춰가며 언론플레이 하는게 문제 될게 없고 졸속이 아니라 하시니 놀랍기 이를데 없지요, 정확하게 적의 전력도 파악을 못한 상황에서 그 것도 증원이 예상되는 긴급한 데 언론플레이가 적절하다고 하시는건 결과가 좋으니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말밖에 안됩니다, 그게 뭘 말하는지는 잘 아시겠지요,

그리고 기보전력 멀쩡히 잘 살아 있습니다, 전차나 자주포 전력이 괴멸이라면 인천상륙작전에서 해병대를 맞이한 T-34는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더불어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니 생각을 못하시는것 같습니다만 크로마이트작전은 인천에 상륙하고 끝이 아니에요, 보통 서울의 수복까지 언급하는데 오류라고 지적하시는 부분까지 참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 일견 막막해지는 바 없지 않습니다,

대체 1선 부대에서도 차량이 모자라서 배비가 안된다는 건 어디서 나오는 말입니까? 미해병대가 16일밤에 노획한 트럭은 어느 나라 트럭일까요? 왜 거기서 북한군 장병과 사병들이 나왔을까요? 20일날 새벽 미해병대 진지 기습에 자살 폭탄 트럭까지 끌고 나온건 또 어느 나라 군대이고요? 어째서 서울까지 진격하는 내내 T-34는 지속적으로 등장하여 결국 모네건 상병이 무공훈장까지 받게 됬는데 어느나라 군대일까요? 덧붙이자면 역시 논점 이탈을 벌이신 부분인데 2선급 부대랑 싸운다고 해서 이걸 그냥 주겠습니까?이게 말씀처럼 그렇게 쉬운작전이었을까요?
7201 2016-07-26 00:40:28 0
인천상륙작전 이 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JPG [새창]
2016/07/25 08:51:39
위에서 빼먹은게 그 2선급 병력을 상대하던 와중에 명예 훈장이 나온 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승전보에 신이난 맥아더는 기자들을 불러가며 진격 속도를 늦추었고 5일내 서울 탈환과 같은 언론 플레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만 자살 폭탄 트럭까지 동원하며 결사 항전으로 응전한 북한군은 꽤나 이런 표현은 좀 그렇습니다만 귀찮은? 상대였습니다, 물론 기보 전력의 훈련 미숙 등 낮은 숙련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나마 중국에서 혹독한 내전을 뜷고 성장한 하사관과 장교들이 지휘하는 정예라 꼽히는 전력들도 부족한 병력 혹은 화력 등으로 밀려날수 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요.
7200 2016-07-26 00:28:17 0
인천상륙작전 이 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JPG [새창]
2016/07/25 08:51:39
더하자면 노르망디라고 딱히 인천보다 사정이 좋은건 아닙니다, 완편된 부대는 고작해야 3개 사단 남짓한데다 편제된 장비들 역시 초기에 노획한 장비가 주를 이루는 열악한 상황인것은 물론이거니와 롬멜과 가이어 폰 슈베펜부르크 등 지휘부의 분열로 말미암아 어정쩡한 배치로 시작하여 축차투입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인천보다 낫을것도 없는 상황인데 뭐 적 전력의 오판이 반대가 되었다는 정도의 차이를 들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7199 2016-07-26 00:19:06 1
인천상륙작전 이 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JPG [새창]
2016/07/25 08:51:39
불행하게도 사전 정찰이 이루어진것은 상륙이 결정된 다음의 일이지 그 이전에 고려된 사실이 아닙니다, 더불어 맥아더와 그 가신들이 비교가 안되는 화력만을 믿고 말씀과 같이 기존의 전선을 갈아치우며 북진을 강행한 결과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는 잊으신게 아닐지 우려가 됩니다, 화력만으로 해결될수 있었다면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비릇한 여러 졸전 아닌 졸전들이 일어날리가 없지요.

덧붙이자면 낙동강 전선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지 괴멸당한게 아닙니다, 괴멸당한것은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후방 교란 및 보급선의 차단 등이 성공한 이후의 일이지 그 이전이 아닙니다, 또한 기계화가 안되었다 하시지만 증원병력들은 2선급으로 차량화는 물론이거니와 기갑전력까지 배비된 상태였지요, 다만 낙동강 전선에 투자를 하는 탓에 실상 병력이 적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걸 사전에 파악하고 작전을 결정한게 아니라는 이야기로 당장 서울 외곽의 산악 지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투들만 놓고 보더라도 인천 상륙 작전이 안고 있는 리스크가 너무나 명확한 것을 알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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