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3
2021-05-19 21:17:09
3
역사학에서 이런 종류의 주장을 경계해야 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봅니다.
'주류 사학이 고조선의 범위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는 답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무리한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1. 18세기 초면 유럽이 아시아와 결코 단절되었던 시대가 아닙니다.
2. 삼국유사는 조선 멸망 이후에나 주목받았던 책이 아닙니다.
불교 중심의 야사들이나 역사적 시점이 모호한 이야기가 다수 섞여있기는 하나, 내용의 출처가 굉장히 상세하게 적혀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보조사료로서 다뤄져 왔습니다.
절대 듣보잡은 아니었습니다.
3. 조선은 억불로 들어섰으나, 중국은 이후에도 불교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삼국유사가 직접적으로 전해지지는 않더라도, 동아시아의 전통있는 불교국가였던 고려의 이야기는 불교인들을 통해 전해졌을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습니다.
구전되는 내용이 바뀌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살이 덧붙여질 수도 있습니다.
4. 고조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역만리 너머의 신부가 주장하였더라도, 당대의 사료는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신빙성있는 사료들을 취합하여 결과물을 냈는지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5. 또한 그 신부가 그 주장을 펴기 위해 활용한 고대의 중국 사료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설사 실전되었더라도 동시대의 다른 사료를 통해 뚜렷한 존재만를 교차검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18세기 유럽의 신부라 신기하다'는 것을 제외하고 직접적인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당시에도 한민족의 이야기들이 대륙을 통해 흘러다녔구나 라는 흥미로운 사실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이걸 고조선의 역사를 신빙성있게 다루는 자료로 활동하기엔 논리의 비약이 큽니다.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보려는 재야사학자들이 많지만, 결국 유사역사학의 굴레로 빠져드는 이유는 명징합니다.
주장하는 것까진 좋은데 근거가 없습니다.
실증사학의 한계니, 수구적이니 보수적이니 정치적이니해도 그만큼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재야사학계에 없습니다.
그럼 주장에서 끝내야 하는데 자꾸 답을 정해놓고 대충 비슷한 것이라도 나오면 결정적인 증거라고 떠벌리거든요.
진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