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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22: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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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 아시아에서 대부분은 중국과 일본, 인도, 동남아였지 과연 한국(조선, 고려)이 어느 정도나 알려졌을까요?
- 본인의 말을 본인이 반박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고려의 자료를 18세기 신부가 얼마나 신빙성있게 쓸 수 있다는 건가요? 본인 주장대로라면 오히려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됩니다.
2. 저 기록을 남긴 신부는 삼국유사를 본 적도 없을 텐데, 어떻게 삼국유사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을 적었을까요?
- 그래서 아래에 적지 않았습니까? 직접 전해지지는 않아도 구전될 수는 있다고요.
미디어가 흔하지 않은 과거에 풍문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큽니다.
3. 그 불교 국가였던 고려의 이야기가 과연 외국인 중국에 얼마나 흘러갔을지, 그건 알 수가 없죠.
- 알 수가 없다고만 하시면 반박이 되지 않습니다.
반문해보죠. 건국부터 멸망까지 불교가 국교가 되어 불교의 이념과 의식이 국가 깊이 자리해 몇 백년을 흘러간 나라가 몇이나 될 것 같습니까?
불교도들이 고려를 인상적으로 여길 가능성과 여기지 않을 가능성, 어느 쪽이 더 높을거라고 생각하세요?
4. 참고로 저 신부가 더 남긴 기록들을 보면, 고구려왕이 요동 태수를 죽였다는 내용도 언급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후한서 같은 중국 고전 사료들은 본 게 확실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고조선이 요임금 때에 있었다는 내용도 중국 고전 사료에 실려 있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 후한서는 굉장히 메이저한 사료입니다. 시대극으로 소설책 한 권을 쓰더라도 하나의 소스만 가지고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서를 다룰 때, 출처가 얼마만큼 자세히 기록되어있는지를 따지는 겁니다.
삼국유사에 모호한 사실이나 야사가 혼재되어있음에도 보조사료로 인정받는 이유는 출처가 자세해서입니다.
기본적인 사실까지 무시하려 드시면 안 됩니다.
5. 그게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죠.
지금처럼 인터넷만 검색하면 모든 정보가 즉시 뜨는 정보화 시대도 아니었고, 문맹률도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인들 중에서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인 더군다나 까마득히 먼 옛날 고조선 시대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 지도 미지수죠.
- 더 미스테리합니다. 그럼 어느 정도인지 알지도 못하시는 사실에 왜 진지한 중요성이나 정당성 비스무리한 걸 덧붙이시는 건가요?
이래서 제가 답을 내려놓고 말씀하시는 거 아니냐고 하는 겁니다.
진실일지 아닐지도 모르는 사실에 역사적 근거를 댈 수는 없습니다. 추측이라고 하기엔 기존 연구에서 충분히 논박이 되는 부분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