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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 0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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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희가 되신 아버지께서 당시 기준으로도 단신이신데, 늘 번호는 맨뒷번호였었다는 말씀을 몇년 전에야 들었어요. 그때는 학교에 돈을 내야 계속 학업을 이어가던 시대라서.. 그 납입금이 늘 아버지 신문배달해 돈 모은것으로는 늦어서 키번호로는 5번 안쪽이어야하는데, 60번이 넘었다고.. 언젠가는 못냈지만 등교했더니 안낸 놈들은 나와라 집에가라 돈 가지고 오면 책상 주겠다 했었다네요. 아버지 마음에 깊은 상처였나봐요. 호쾌한 마초스타일 할아버지지만, 몇년 전에나 처음 들어본 이야기였음.그분의 자식인 저는 그런 일 겪지도 보지도 않을 수 있었그, 제 자식은 이제 나라에서 주는 밥이 당연한 시대에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밥 깨끗하고 좋은 것 써서 먹이는지 학부모들 불러다 모니터링도 시킴. 이 흐름이라면 시대의 흐름이 발전이겠지요. 이 흐름이 유지되길 바랍니다. 내 아버지가 겪었던 설움처럼, 그 설움을 딛고 좋은 나라를 만들기위해 노력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힘이 좋은 방향으로 한국에 작용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