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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2 10: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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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려 하면 세상의 온갖 소리가 들린다. 기척을 죽이고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자는 척 하고 있으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별별 이야기를 떠든다. 공항에서도 그랬다. 눈으로는 책에 걸쳤지만 귀로는 쫑긋 옆 사람에 기댔다. 잘 들어두었다가 나중에 얘기에 써먹어야지. 세상에,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돌아다닌 곳도 많다. 엄마인지 언니인지 모를 사람이 타박하는데... (말 투를 들으면 엄마지만 아까 잠깐 본 얼굴은 언니가 분명하다.) 들려면 도화살이나 들 것이지 역마살이 들었다고 구박이다. 누구는 남편이 뭐 하고 누구는 아이가 몇인데 그 집안 사정도 재미있지만, 저 잔소리 듣느니 나라도 도망갈테다. 게다가 말은 빠르기가 폭포수요 끊이지 않음이 강물이다.
그 새 전화도 왔는지 뭔가 다른 소리도 들렸다. 통화가 끝나자 비로소 한 마디도 못하던 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에게는 도화살이 끼어서 역마살이 왔다고. 이게 무슨 소리? 조심스레 훔쳐보니 나를 보고있는 것은 아닌데 내게 웃음짓는 것 같다. 저건, 틀림없는 요물이다. 말은 일리가 있었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남자들이 꼬여서 귀찮다고. 그래놓고 언제나 자기가 꼬셔놓고 바람피고 있다며 남자들이 나중에 불평한다고. 상처를 많이 받아 남자를 피하려 도망다닌다고. 그래, 그런 사정이 있었군. 참으로 안 된 일이다. 내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봐야겠다. 마침 예약한 호텔이 내 단골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매니저와 친하니까 무슨 수를 쓰던 우연한 필연을 만들어줄 테다. 문제는... 지금 가진 표를 취소하고 가장 빠른 비행기를 알아보는데 얼마나 걸릴까? 내일 북 콘서트를 취소하면 위약금이 상당할텐데... 뭐, 그거야 좋은 이야기를 얻으면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 그럴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