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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01: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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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을 써본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위쪽에 적은 내용이 조금씩 마음에 걸리네요. 제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지. 그런점에서 저는 바울을 좋아합니다. 이 사람의 편지들은 아주 논리적이거든요. 여러 번역본이 있습니다만, 공동번역(개정판 포함)이나 (표준 포함)새번역이 읽기 쉽습니다. 우리말성경도 그리 나쁘지는 않고요.
인용합니다: 자기가 유다인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율법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느님을 자랑하고 하느님의 뜻을 알고 율법을 배워서 사리를 분별할 줄도 알고눈먼 사람에게는 길잡이가 되고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에게는 빛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그 율법에서 모든 지식과 진리의 근본을 터득하였으므로 무식한 사람에게 지도자가 되고 철없는 자들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그런 사람이 남을 가르치면서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못합니까? 또 남더러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왜 자신은 도둑질을 합니까? 남더러는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자신은 간음을 합니까? 또 우상을 미워한다고 하면서 그 신전의 물건은 왜 훔쳐냅니까? 율법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왜 율법을 범하여 하느님을 욕되게 합니까? 성서의 말씀대로 "당신들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란 말을 가슴에 새겨야 될 것 입니다.
부활에 대해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논리의 흐름을 보세요.)
인용: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 생략...)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렇게 전파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인용: (...생략...)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생략...)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 하려고 그런 일을 합니까? 죽은 사람이 정말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습니까? 그리고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바울은 여행 도중 어떤 신비한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활한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어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보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라는 것은 엄청나게 큰 죄였습니다. 당장 때려 죽여도 될 만큼 큰 죄라고 사람들이 생각했죠. 바울도 그래서 그 이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한 것 입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경험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죠.
뭐... 이런 느낌? 자, 나를 봐. 내가 거짓말할 사람이야? 내가 한 말 믿었잖아. 그리고, 부활 봤다는 사람 많잖아. 그 사람들도 거짓말 하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당연히 신앙은 믿음의 영역일 것 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라 할 수 없겠죠.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포함) 신조나 사도신경의 내용에 반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도 기독교라 할 수 없고요. (다른 종교일 것 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 뿐일까요? 말로는 무슨 말을 못해요? 그가 그렇게 믿는지 아니면 믿는 척 속이는지 (자신을 속일뿐일지라도)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무화과 나무에선 무화과가 열리고 포도 나무에선 포도가 열리듯, 그 열매로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