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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07: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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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도 적었지만 저희 큰아버지께서 점점 그와 비슷하게 하셨죠.
대한민국에 양반집 자손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예전에 큰아버지께서 제사에 대해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제사 음식을 만드는 것은 여자들이 하는데 그 제사에 여자들이 참례하지 못하는 집안이 있다.
우리 집안에서는 오래 전 부터 제사에 여자들이 참례하였는데
할아버지(어렸을 때 들어서 당신의 할아버지인지 제 할아버지인지 명확하지 않아요)께서 그렇게 고쳤다.
당시 다른 집안(친척들)에서 반대가 있었는데... 예를 세울수도 있고 폐할수도 있는 것이 진정한 양반이라고 하셨다.
예를 세울수도 있고 폐할 수도 있으려면 왜 그래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제사는 왜 지낼까?)
이 이야기가 왜 나왔냐면... 외가에서는 초헌, 아헌, 삼헌 뒤에 않아있는데 우리는 합문하고 나갔거든요...
외가에서는 술잔을 향 위에서 돌렸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그 외 여러가지가 우리와 달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었어요.
제례는 가가례라면서도 그러한 일들을 왜 하게 되거나 되지 않는지 설명해주셨었어요.
어쩌면 알뜰신잡 비슷할까요? 왜 우리는 조기를 익히지 않고 상에 올리는가로부터 노론과 소론 이야기도 나오고....
큰아버지 대에서도 제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것만해도....
한밤중에 지내던 것을 늦은 저녁 시간으로 바꾸셨고요, 이건 의도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 곡을 하지 않게 되었고요...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축문도 읽지 않게 되었어요. (저는 한밤중, 곡, 축문 모두 경험했어요.)
축문은 사실 없애고 싶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희 아버지께서 축을 읽으셨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당신이 손수 읽으신 적도 있거든요.
그런데... 축문은 원래 집사가 읽는 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라도 읽었어야 했는데...)
사실 큰아버지는 어쩌면 엄청난 애처가였던 것 같아요. (평소 큰어머니 편 들어주던 일이 많았어요.)
뒤로 갈수록 제사의 횟수가 줄어든 것이 당신이 힘들어서라도 했지만... 고모들은 큰어머니 때문이였다고 수근댔죠.
사실 제사라는 것은 굳이 장남만 지내라는 것은 아니에요. 고려나 조선 초기에는 처가 제사를 모시는 일도 많았다고 하고
또, 장남이 죽으면 동생이 제사를 물려받는 일은 그 이후에도 흔한 일 이였다고 하니 딸들이 제사를 모실 수도 있겠죠.
(더구나 요즘은 장남이라고 해서 재산을 더 물려주거나 하는 일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남이 있는데 다른 형제들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여러 문제가 있을거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희 큰어머니도 며느리의 종교를 생각해서 굳이 당신이 연미사를 넣겠다고 하셨겠죠.
미사라면 종파가 다르지만 참석할 수도 있는 것이고 (고모들은 아예 종교가 다르지만)
그렇게 가족들이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