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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1 18: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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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먹이주고 싶어하시는데 주세요. 못 줄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만 사람들이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고양이가 불쌍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책임 못 질 일을 하니까 그런겁니다.
아파트 분위기가 암만 좋아도 누군가는 고양이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인만큼 싫어하는 내색도 못하구요.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생물은 없어요.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 행동 뒤에 어떤 결과가 따라와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저희 아파트에도 저런 고양이가 있었지요. 삼색냥이었는데, 하는 짓이 숙녀같은 고양이라 레이디라고 불렀어요. 정말 이뻤거든요. 모두가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맨날 밥도 주고 했어요. 누군가 싫어한다는 것도 모르고. 레이디는 새끼도 낳고 잘 살았습니다. 자기보다 새끼를 위하면서요. 저 고양이처럼.
그리고 죽었죠. 개죽음 당했어요. 말그대로 뒤졌어요. 인간에게 경계가 있었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몰랐겠지요.
레이디와 그 새끼들은 초딩 남자애들에게 잡혀 죽었습니다. 비비탄으로 눈알을 쏘고, 몇 번이고 땅에 부딪혀서 피토하다 죽었습니다. 그뿐인줄 알아요? 항문인가 생식기에는 나뭇가지가 깊게 박혀있었습니다. 어찌나 깊이 박혔는지, 고양이가 뻣뻣하게 굳어있더라고요.
죽인 건 그 사이코패스 같은 초딩들이었지만, 죽은 데에 대한 책임은 키우지도 않을거면서 알량한 온정을 베푼 저한테 있었습니다. 제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고양이들은 인간을 경계해서 잡히지도 않고 도망갔겠지요.
결국, 제가 죽인거나 다름없죠. 꼰대질이니 뭐니 하셔도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먹을 것을 주시려면 책임지실 줄도 아셔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먹을 것 주는 것에도 책임을 져야하냐, 라고 하실수도 있겠지만, 네, 먹을 것 주는 것에도 책임은 져야합니다.
고양이는 어찌보면 참 덧없는 생물이라 인간의 작은그 행동에 생이 휙휙 바뀌거든요. 저는 로드킬한 고양이는 기억나지도 않지만 아직도 그 아이들의 시체가 종종 꿈에 나오곤 합니다. 트라우마가 된 거겠죠. 제 무책임의 결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