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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2016-02-08 13:32:34 9
박근혜의 최대 치적이될 사드 설치=>(한국의 영구적인 경제적 사망선고) [새창]
2016/02/07 22:32:03
근본적으로 엄청난 종말속도를 가진 대륙간탄도탄을 미사일방어막으로 막겠다는 그 발상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이미 그런발상은 냉전시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미국의 스타워즈계획이 실패하면서 실현불가능하다는게 검증됐습니다.

게다가 외교/경제적으로 적성국을 우호국으로 바꿀 생각을 하는게 우선인데, 그럴 생각은 버리고 니들이 무슨 무기를 쏘든 우리는 다 막아낼수 있다같은 개념으로 무기체계를 만들면 적성국은 영원히 적성국으로 남습니다 ( 냉전시기 소련은 미국의 스타워즈계획에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

통일대박론 말한 대통령아니셨나요? 어르고 달래서 사탕물려줘도 부족할 판에 니 창은 이제 종이나 다름없어라고 선언해서 대체 뭘 얻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국방부장관이 무슨 중국을 설득합니까? ( 기자회견에서 이 얘기 듣고 황당했음 )
그건 외교부와 대통령이 할 일이에요. 국방부가 이젠 외교도 합니까?
이 무슨 병영국가도 아니고 무식한 대통령이 방치하는 사이에 국방부가 시민들 역사교육에 외교까지 하고 있습니다.
대박이에요. 대박!
358 2016-02-08 13:24:24 2
박근혜의 최대 치적이될 사드 설치=>(한국의 영구적인 경제적 사망선고) [새창]
2016/02/07 22:32:03
말씀하신대로 북한핵이 "남한으로 온다면" 요격할 수단은 현재로서 없습니다. 너무 가까우니까요.
그러면 THADD는 그걸 요격할 유효한 수단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을 못합니다.

게다가 정상배치에 2년 넘게 걸리는데 왜 그걸 지금 말해서 쓸데없이 중국과 북한에 긴장을 조성합니까?

문제는 효과도 입증되지 못한데다가 정상배치에 한참 시간이 걸리는 무기체계를 왜 "지금" 배치하겠다고 대내외적으로 공표하냐는 말입니다.
2년안에 핵미사일 쏘라고 도발하는거나 다름이 없어요.
357 2016-02-08 13:19:13 2
박근혜의 최대 치적이될 사드 설치=>(한국의 영구적인 경제적 사망선고) [새창]
2016/02/07 22:32:03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2572
미 육군은 작년 말에 5번째 사드 포대를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인수받았다.
예정보다 1년 가량 늦어졌지만, 2016년 1월 현재 미국의 사드 보유량은 5개로 늘었다.
이 가운데 4개 포대는 텍사스의 포트 블리스에, 1개 포대는 괌에 배치된 상황이다.
또한 미국이 현재 보유한 사드용 요격미사일은 모두 100기 정도이다.

대개 1개 포대당 48기의 요격미사일이 장착되는 만큼 150기 가까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렇게 요격미사일 확보가 늦어지고 있는 데에는 요격미사일에 장착되는 컴퓨터 메모리 카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록히드마틴과 미 육군은 최근 5억3000만 달러 규모의 요격미사일 생산 계약을 맺어 조속한 물량 확보를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미국의 사드 포대 및 요격미사일 확보는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
또한 이들 무기를 인수 받아도 바로 전략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시스템의 운용 평가 및 작전병 훈련에 대개 2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6020716577661037&MS
한 장관은 "아직 사드가 정확히 언제쯤 배치될지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배치할 진지가 선정되고 공사소요가 제기되는 등 해결할 일들이 있고 소요되는 절대적 시간이 있기 때문에 공식 협의로부터 배치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꽤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356 2016-02-08 03:11:44 122
박근혜의 최대 치적이될 사드 설치=>(한국의 영구적인 경제적 사망선고) [새창]
2016/02/07 22:32:03
개발중이어서 당장 배치도 못합니다. 현재 미국이 배치한 사드 사이트도 미사일이 부족한 상태에요 --;
정상배치가 되려면 적어도 2년이상 걸리는데, 그동안 중국으로는 경제적압박을 북한으로부터는 안보적압박을 받겠죠.
사드배치 될때까지 손가락빨며 기다리면서요.

배치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 사드가 실제 유효억제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 순번될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다가 기습적으로 배치했어야 할입니다.
미군 참수작전(적성국 지도자제거작전) 특수부대가 한국에 와있다고 광고를 하지않나, 이 정권은 대한민국 수립이래 가장 안보적으로 무능한 정권입니다.
355 2016-02-07 16:00:33 1
역대 조선왕들의 사인.jpg [새창]
2016/02/07 11:20:35
효종의 경우도 어의 신가귀가 수전증으로 안면부에서 혈을 잘못 짚어서 사망하게 됐다는 설이 많은데
신가귀의 안면부 침 시술은 이를 만류했던 다른 어의 유휴성이 이미 산침으로 효종의 눈가종기를 치료한바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라 볼수 없습니다.

문제가 됐던건 효종이 소갈(당뇨병)을 앓고 있었고 당뇨가 지혈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가귀는 침술에는 능한사람이었지만 이런 질병간의 연관관계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9312
많은 사람이 효종의 죽음을 두고 침을 놓은 어의 신가귀가 손을 떠는 수전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신가귀가 침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침 자리는 효종의 종기 치료나 죽음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지엽적 문제일 뿐이다.
비록 신가귀는 이때의 실수로 교수형을 당했지만 그것은 소갈에 대한 무지의 결과였지 수전증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신가귀가 종기를 사혈 침으로 치료한 것은 소갈병의 합병증만 아니었다면 잘못된 게 하나도 없었다.
신가귀를 말린 동료 어의 유후성도 산침(散鍼)으로 효종의 눈 주위 종기를 치료한 바 있다.
산침은 중국 명나라 때 의서인 <의학입문>에도 나오는 것으로 경락상의 혈 자리에 침을 놓지 않고 병소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아픈 곳을 따라 찌르면서 침을 놓아 피를 빼는 방식이다.
354 2016-02-07 15:43:50 3
역대 조선왕들의 사인.jpg [새창]
2016/02/07 11:20:35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8129/2
실록에서 말하는 임질은 현대적 질환인 감염성 성병과는 다르다.
동의보감에서 임병은 “심신의 기운이 하초에 몰려 오줌길이 꽉 막혀 까무러치거나, 찔끔찔끔 그치지 않고 나온다”고 풀이한다.
이들 증상은 신장과 방광이 허약해서 오는 질환으로 오히려 강직성 척추염에서 나타나는 마미증후군에 가깝다.
353 2016-02-07 15:35:52 2
역대 조선왕들의 사인.jpg [새창]
2016/02/07 11:20:35
잘못된 주장입니다.
간장게장과 생감(감은 소화가 잘 안되는 과일)을 먹고 체하여 고생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실록에 의식을 잃기전에 인삼과 부자를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경종은 그 직후에 사망했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ta_10408024_001
경종실록 15권, 경종 4년 8월 24일 갑오 1번째기사 의식을 잃자 인삼차를 올리다
352 2016-02-07 15:16:14 1
역대 조선왕들의 사인.jpg [새창]
2016/02/07 11:20:35
전날까지 멀쩡하지도 않았습니다. 실록에 사망 이틀전부터 건강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갑작스런 죽음이라 볼수 없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ha_10111026_001 11월 26일 ( 사망 2일전 기사 )
임금이 불예(편치못하니)하니 여명에 서평군 한계희·좌참찬 임원준 등을 불러 입시하게 하다
--- 불예는 임금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때 쓰는 표현입니다.

26일 기사를 보면 이외에도 의정부 당상관/종친의 문안, 명산대천에 사람을 보내 기도를 올린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ha_10111027_003 11월 27일 ( 사망 전날 기사 )
임금이 불예하므로 승지 등이 모여서 직숙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르다
--- 이날도 역시 불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역시 27일에도 의정부 및 육조당상의 문안기사가 나옵니다.
351 2016-02-07 15:03:51 2
역대 조선왕들의 사인.jpg [새창]
2016/02/07 11:20:35
예종이 복상사로 사망했다는 글의 주장에도 의문이 있습니다.
실록에 자미당에서 진시(오전 7~9시)에 사망했다고 나와있는데, 복상사(성관계 도중 심장마비나 뇌출혈) 사망이라면 야간이 되야 맞습니다.
350 2016-02-06 16:59:06 4
식민사학 추종자, 왜 이리 많은가 했더니 [새창]
2016/02/06 10:49:50
주장은 하는 사람이 입증하는 겁니다.
신문기사를 찾아서 링크를 거시면 되죠.

논문을 표절하거나 교수임용에 비리가 있으면 그게 학자들이 식민사관을 가졌다는 증거가 되나요?
349 2016-02-06 16:30:21 5
식민사학 추종자, 왜 이리 많은가 했더니 [새창]
2016/02/06 10:49:50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3%91%EB%8F%84#.EA.B5.90.EC.9C.A1.EC.9E.90.EC.9D.98_.EC.82.B6 ( 이병도 )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A0%95%EB%B0%B0_(%EC%97%AD%EC%82%AC%ED%95%99%EC%9E%90) ( 김정배 )
이병도는 해방후 내내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했고, 김정배는 고려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마치고 고대사학과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김정배가 서울대를 다닌바 없는데 어떻게 이병도의 제자가 되나요?
348 2016-02-06 16:26:33 3
식민사학 추종자, 왜 이리 많은가 했더니 [새창]
2016/02/06 10:49:50
위만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있으며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무슨 근거로 위만의 조상이 중국인이라고 주장하시나요?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nh&setId=117165&position=23
위만조선과 관련하여 우선 위만의 출자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다. 즉 그를 古朝鮮系 流民으로 보기도 하고, 漢系 燕人으로 보는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한 위만의 원래 이름은 滿으로 그를 연의 朝鮮故地 점령에 의해 연인이 된 토착세력의 후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중국식의 衛氏 姓을 가진 위만은 최초 사료에서 ‘만’으로만 나타나고 있어 그 성격이 보다 비중국적일 뿐만 아니라, 과거 연의 조선침공에 의해 복속된 고조선지역의 토착적 존재로서 조선계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347 2016-02-06 16:24:40 4
식민사학 추종자, 왜 이리 많은가 했더니 [새창]
2016/02/06 10:49:50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위만이 고조선의 준왕을 축출하고 정권을 찬탈한 기록이 있습니다.
위만조선이 고조선의 계승국이 아니면 어느 나라가 계승국이며 누가 고조선을 이은것인가요?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nh&setId=117165&position=23
① 燕王 盧綰이 漢을 배반하고 匈奴로 들어가자 滿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명을 모아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浿水를 건너 秦의 옛 空地인 上下障에 居하였다. 점차 眞番과 朝鮮의 蠻夷 및 옛 燕·齊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王險에 도읍하였다(≪史記≫권 115, 列傳 55, 朝鮮).

② 한나라 때에 이르러 盧綰으로 燕王을 삼으니 朝鮮과 燕은 浿水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 노관이 漢을 배반하고 匈奴로 도망한 뒤 연나라 사람 衛滿도 망명하여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準에게 항복하였다. (위만이) 서쪽 변방에 거주하도록 해주면 중국의 망명자를 거두어 조선의 藩屛이 되겠다고 준을 설득하였다. 준은 그를 믿고 사랑하여 博士로 임명하고 圭를 하사하고 百里의 땅을 봉해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이 망명자들을 유인하여 그 무리가 점점 많아지자 사람을 준에게 파견하여 속여서 말하기를 “한나라의 군대가 열 군데로 쳐들어 오니 (왕궁에) 들어가 숙위하기를 청합니다”하고는 드디어 되돌아서서 준을 공격하였다. 준은 만과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인용≪魏略≫
346 2016-02-06 04:52:37 3
고구려 사초. 그리고 삼국사기 불신론. [새창]
2016/02/05 17:04:23
식민사학에 대한 어떤책을 읽어보면 알수 있습니까?
그 어떤책의 어느구절을 보면 그렇게 알게되나요?
345 2016-02-06 04:48:47 1
고구려 사초. 그리고 삼국사기 불신론. [새창]
2016/02/05 17:04:23
당연히 않좋게 보신다고 했는데 그건 님의 주관적 인상일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님이 않좋게 보는것과 그 기술이 자주적이지 않다는 것 사이에 하등의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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