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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2017-06-20 20:57:28 2
문성재님의 brianjung님 낙랑목간 관련 반박에 반박글 [새창]
2017/06/20 17:33:24
제가 그다지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불러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긴 한데
전 "좆문가"와 "개소리"라는 말을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학계에 몸담고 계신분이라면 당연히 학계 연구동향은 알고 계셔야죠.

낙랑지역 유물이나 유적의 양식이 한나라것이어야 한다는 건 이미 오영찬 교수가 10년전에 그렇지 않다는 걸 밝혀놨습니다.
현재 국편위 공식입장도 낙랑이 한나라와 토착문화가 혼합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구요.

"좆문가"와 "개소리" 얘기를 들어도 당연한 것이,
이미 10년전에 이런 낙랑은 한나라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유물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나왔고, 현재는 주류학계 공식입장인데
그건 아랑곳 없이, 아직도 낙랑유물/유적이 한나라 양식이어야 한다구요? ㅋㅋ

심지어 최근의 유적연구에서는 낙랑지역 분묘양식이 고구려양식에 가깝다는 것까지 나왔습니다.
물론 이 연구를 보고 "봐라 낙랑지역 분묘가 한나라양식이 아니지 않느냐? 낙랑은 평양에 있던적이 없다"라고 주장하시겠지만,

역사학자 맞으세요?
그런 주장 인정받고 싶으시면 정식으로 논문써서 동료검토받고 인정받으라고 하세요.
초보자들 대상강연에서나 헛소리하지마시구요.

어찌나 어이없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니 저같은 중간수준도 못되는 역덕에게 "좆문가"소리를 듣지요.
1003 2017-06-20 15:51:21 0
남자의 로망 워프 기술을 개발해도 난제가 많군요.. [새창]
2017/06/20 13:30:05
편지보내고 몇달씩 걸리던 시절에는 사실 현지부임한 관리가 그냥 왕이었죠. 중앙통제가 불가능했어요. 그러니 식민지가 잘 굴러갔다는 말은 좀 어폐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냥 면허권을 부여하고 그 사람한테 맡겨논 거니까요. 그 사람은 국왕한테 돈 내고 면허권 사구요.

각설하고, 4광년정도 거리에 2주 걸리면 그래도 로마 수준으로 운영은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지구에서 알파센타우리까지는 로마에서 다마스쿠스 정도 되는것 같음.

그러니 100광년이라고 하지만 실제 100광년 되면 거의 1년이 걸리니, 이 정도면 거의 통제가 불가능할거 같고.
10광년 안밖으로 통제거리가 설정될거 같아요.
1002 2017-06-20 14:15:00 4
[새창]
자칭 민족사학 좆문가 특징
1. 글 근거 자체가 모호하다. 심지어 출처도 속인다
2. 자기가 쓴 글 안에서 논리가 모순된다
3. 금방 반박되는 증거를 근거라고 제시한다
4. 반박못하겠는건 절대 반박 안한다
5. 옛날 책에만 나와있으면 다 그게 근거라고 우긴다. 그게 개인 기록이건 사서건 주석서건 상관없다. 옛날 책에 나와있으면 다 맞는거다
6. 근거나 논리가 반박당해도 절대 인정안하다. 똑같은 얘기 하고하고 또하고 반복한다. 무슨 나치 프로프간다도 아니고.
7. 혹여나 연관글 베스트 올라가서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해도 아랑곳 않는다. 그냥 마이웨이다.
1001 2017-06-20 14:10:32 1
삼국시대의 일식기록으로 보는 천문학 강역 [새창]
2017/06/20 13:52:47
http://egloos.zum.com/katnani/v/489964
박/라의 주장으로는, “특정국가가 관측한 일식의 식분도를 모두 합하여 평균하여 보면, 평균식분이 최대인 지역을 찾을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최적관측지”(p. 189)라는 주장으로 논지를 전개해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이 개념이 옳은지 검증하기 위해 박/라는 도읍지가 확실히 알려져 있는, 후한과 고려시대의 일식에 대해 같은 계산을 하여 그 결과를 p.190과 p.193에 제시하면서, 대체로 잘일치한다고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박/라의 논문에는 그 산출근기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 그 계산이 맞는지 검증해 보았다. 사료를 살펴본 결과, 고려 개경(126.6E, 38.0N)에서 관측되었다고 기록된 일식은 모두 82개였다. 이것은 陰雲不見, 陰雨不見등의 기록과 江華시대의 일식기록을 제외한 것이다. DE406과 F.R.Stephenson의 ΔT 자료(1997- DE406에 맞게 수정한 것)를 가지고 그 평균식분도를 그려본 바 아래 그림 1과 같았다(이하의 그림자료는 筆名 세연의 계산결과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최대식분지역이 한반도 중부지방이 아니라, 중 국의 길림성 白山시 근처로 나타난다. 여기서 개경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440km 떨어져있다. 이 정도의 차이라면, 최적관측지에서 그 당시의 도읍지를 찾는다는 것은 별의미를 갖지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박/라는 논문에서(p. 190), “ 고려에서 실제로 일어난 99회의 일식의 평균식분도에서...식분이 최대인 지역이 한반도중부에 놓여 있어 고려수도의 위치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고 주장하고 있으나, 논문의 그림 9에서 보면 식분이 최대인 지역의 범위가 실제로는, 한반도와 만주, 일본의 규슈, 시코쿠 및 혼슈중 교토서쪽 전체를 포함하는 타원형의 범위내가 되어 실제로 어디인지 알수가 없다.

또한, 박/라는, p.193의 그림 11, 후한시대 낙양(112.4E, 34.7N)에서 보인 것으로 기록된 일식의 평균식분도를 제시하면서, “史官이 소문을 들어 적은 것을 뺀 57개의 일식의 평균식분도에서 평균식분이 최대인 지역이 수도 낙양보다 약간 북쪽으로 나타나있다. ... 아마도 사관이 직접 관측하지 않은 일식이 기록보다 더 많아서 수도에서 관측안된 일식이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그 림에서 보이는 최적관측지는 114E, 42N지역으로 여기는 내몽고자치구의 化德(114.0E, 41.9N)근처인 데 여기는 하북성 張家口(114.9E, 40.8N)의 서북 143km지점으로 낙양에서 직선거리로 무려 823km나 떨어진 곳이다. 약간 북쪽인 곳이 아니다. 저자들의 논리는 스스로 모순성을 보인다.

1000 2017-06-20 14:08:30 0
삼국시대의 일식기록으로 보는 천문학 강역 [새창]
2017/06/20 13:52:47
이렇게 검색능력이 후지시니 맨날 발리죠. 94년 논문이면 23년전 건데 그게 아직까지 반론이 없을꺼라고 믿음?
지리산 두매산골에 있어도 인터넷이 되는데 대체 어디에서 살다 오셨어요? ㅋㅋ

http://orumi.egloos.com/m/2468176
①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은 독자적 관측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② 특히 일식의 경우 『삼국사기』가 바로 천체 역학적 계산을 통해 실제로 그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기록의 비율, 즉 실현율이 가장 높은 사서이다.
③ 이를 토대로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우연히 최적 관측치가 중국 대륙 동부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실측한 기록이다.

①에서 『삼국사기』의 행성과 달의 접근 현상과 금성이 낮에 나타난 현상에 대한 기록을 보고,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만 관측 기록된 독자적인 것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 결과를 확대하여 ②, ③ 주장의 전제가 되는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모두 독자적으로 관측 기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삼국이 일식을 독자적으로 관측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삼국에서 다른 천문현상처럼 일식도 독자적으로 관측하고 기록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이 독자적인 관측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중국 기록을 참고하여 불확실한 삼국의 일식기록을 바로잡았을 가능성을 제시한 박성래 교수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실제로 박창범 교수가 정리하여 부록으로 싣고 있는 삼국 시대의 천문 현상 기록>을 보면, 일식의 경우 독자 기록은 단 2번에 불과하다. 그것도 이른바 천체 역학적 계산방법으로 검증해서 실제로 일식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식이 발생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판명된 사례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일식기록에 대해 삼국의 독자 관측 기록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②의 일식 실현율에 대한 부분도 지나친 해석이다.
『삼국사기』에는 약 1,000년 동안 67개의 일식기록이 들어 있다(중복사례 포함).
이에 비해 중국의 일식기록은 아주 많아서 같은 기간 동안 400개가 넘는다.
대략 1/6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록에 대해서 실현율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일로 보이며,
더욱 이와 같이 계산된 실현율을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독자적인 실제 관측에 근거하여 기록된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부분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리고 중국 춘추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의 일식기록 37개의 실현율이 86%라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어떻게 실현율 80%로 계산된 『삼국사기』에 대해 실현율이 가장 높은 사서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사기』가 단지 일식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을 기록한 것(日有食之)에 비해, 이미 『漢書』와 같은 고대 중국의 사서에서 '일식이 일어났는데 개기식이었고 그 때 해의 위치가 영실9도이다'(日有食之 旣 在營室九度)와 같이 자세하게 일식을 기록한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느 책이 일식을 더 정확하게 기록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일식기록에 대한 최적 관측지점을 계산하여 ③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도 무리한 해석이다. 일단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①, ②의 전제를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박창범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최적 관측치를 추정한 그림을 보아도 대부분의 일식은(최적 관측지점은 아닐지라도) 신라, 고구려, 백제 모두에서 관측되었을 터인데도, 삼국에서 함께 일식을 기록한 경우가 겨우 2번에 불과한 이유에 대해서도 해명이 필요하다.
당시 세 나라가 서로 다른 일식만을 기록하기로 합의했던 것일까?

오히려 일식기록에 대한 분석에서 중요한 사항은 최적 관측지가 아니라 관측 가능한 지역을 찾아보는 일이며, 이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결국 『삼국사기』는 삼국에서 관측한 일식 기록을 직접 실은 것이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관측 가능하여 중국의 正史에 실렸던 일식 기록을 참고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999 2017-06-20 13:55:57 1
요서 10성은 과연 어디였을까? [새창]
2017/06/20 13:18:23
환단고기 아니에요가 아니라 환단고기 맞음.
요서10성 관련해서 나오는 기록이 삼국사기 태조왕기랑 환단고기 태백일사 2개 밖에 없음.

운영자님 이제 환단고기 신봉하시나보네?
998 2017-06-20 13:49:36 0
문성재에게 극딜 당하는 네이버 부흥카페 [새창]
2017/06/20 13:45:26
아! 고구려 고분을 빼먹었네.
지배층 무덤에서 농기구 안나온다는 좆문가 문성재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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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ntents.history.go.kr/mfront/km/view.do?levelId=km_027_0030_0020_0010 , 고구려 사례
지금까지 고구려 지역에서 보습이 여럿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지안(集安) 유림향(楡林鄕) 지구촌(地溝村) 칠보구(七寶溝) 남산(南山) 출토 보습, 지안 태왕릉(太王陵) 서측(西側) 출토 보습, 지안 동대자(東臺子) 건축 유지(建築遺址) 출토 보습, 푸순(撫順) 고이산성지(高爾山城址) 출토 보습, 청원(淸原) 영액문(英額門) 산성자(山城子) 남파하(南坡下) 출토 보습, 평양시 상원군 고구려 석실분 출토 보습, 황해남도 신원군 아양리 남평양 유적 출토 보습, 아차산 제4 보루 유적 출토 보습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밖에도 지안 지역에서 몇 개의 보습이 더 출토되었다는 보고가 있고, 또 평양 근처의 정릉사(定陵寺) 터 우물 유지에서도 보습과 볏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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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구려도 무덤에서 농기구가 나오네?
997 2017-06-20 13:48:19 0
문성재에게 극딜 당하는 네이버 부흥카페 [새창]
2017/06/20 13:45:26
부흥 극딜하기 전에 본인 비상식이나 챙겨야지. 지배층 무덤에 농기구가 없다는 개소리를 하는 양반이 누글 극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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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이었다면 농기구를, 농군이라면 지배층인 관리가 사용하는 필기구나 관복에 사용하는 띠걸이를 같이 넣어 묻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 이런 되도 않는 소리를 주장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지배층 무덤에 농기구가 들어있다는 증거를 보여드리죠.
http://contents.history.go.kr/mfront/km/view.do?levelId=km_005_0060_0020_0040 , 가야 고분
또한 가야의 무덤에서는 백제계 유물에서 보이는 것처럼 쇠도끼, 낫, 살포 등 다양한 종류의 도구를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껴묻었다. 이것은 실생활 도구를 그대로 작게 만든 것으로 죽은 이가 사후에도 현실 생활을 유지하게 하려는 내세관과 함께, 농업을 중시하는 풍조를 알 수 있다.

이 시기 지역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농기구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살포이다. 살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우리나라 특유의 농기구로서, 김매기할 때 사용한다. 살포의 등장으로 U자형 따비(갈이), 살포(김매기), 낫(걷이)이라는 단계적인 지배층의 농기구가 완성되었다. 수장층의 무덤인 옥전 M3호에서 출토된 살포는 논농사를 장악하고 통치하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print.do?levelId=km_005_0060_0020_0030&whereStr= , 백제 고분
백제 지역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소형 철제 농기구 모형도 특색이 있다. 이것은 백제의 금강 유역과 영산강 유역, 대가야 지역에서도 출토되는데, 대체로 4세기 초에 금강 유역에서 출현하여 5∼6세기를 지나면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모형 농기구란 실제 사용하는 농기구를 모델로 하여 3∼10㎝ 정도 크기로 작게 만든 것으로, 낫, 살포, 따비, 도끼 등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실용 농기구를 상징화한 의례 도구이거나 껴묻거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용구일 것이다. 이렇듯 철제 농기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껴묻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사회에서 농업을 상당히 중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형 농기구는 지역 지배자의 무덤에만 다량으로 껴묻히는데, 지배자가 농업 생산에 필요한 농기구를 분배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 의례를 주도하는 등 경제적 기반인 농업 생산력을 장악하였음을 말해 준다.
996 2017-06-19 18:11:51 0
인민해방군 지상군 대대적인 개편내용 (현재까지) [새창]
2017/06/18 20:39:35
장기적으로 중국군은 아프리카 동부와 중동, 중앙 및 서남아시아와 인도양 및 태평양 서부까지 전력투사가 가능한 군대로 성장하는게 목표입니다.
이미 수단에 군항을 확보한 상태고, 지부티에 여단규모 상시주둔할 예정입니다.
995 2017-06-19 17:49:26 0
버팀목전세자금 대출하고, 바로 신용대출 할 수있어요 ? [새창]
2017/06/19 16:28:15
됩니다. 주택대출은 담보대출이고 신용대출은 담보와 무관하게 수입기반으로 잡히는 거라서요 ( 보통 다니는 회사 신용등급이랑 전년도 소득을 참조합니다 )
994 2017-06-19 16:04:47 0
현재 강단사학계 통설로 보는 왕험성, 수성(무수), 낙랑, 기자총 -7 [새창]
2017/06/19 15:28:44
지방정부(성정부도 아닌 그 하위 지자체)가 99년과 05년에 세운 비가 무슨 기자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됩니까?
지방정부가 말하면 그냥 다 맞는거에요? TT
993 2017-06-19 15:31:50 0
조명되지 않는 한국사 역사상 역대급 패전, 공험진 - 갈라수 전투 [새창]
2017/06/19 15:01:35
결국 대패를 당하고 9성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물러난 것이죠.
이걸 보면 공험진이 두만강 저 너머에 있네마네 논쟁하는것 자체가 무의미한거라고 봐요.

여진쪽이 살고 있던 땅을 무력으로 점령했다가 결국은 뺏긴거죠.
926년에 발해가 멸망한후 윤관군 공세시작이 1108년이었으니, 근 80년 넘게 여진땅이었던 겁니다.
992 2017-06-19 13:53:44 0
임용한 교수님이 쓰신 한국고대전쟁사 이거 괜찮네요. [새창]
2017/06/19 13:40:29
고구려가 백제와 손을 잡으면서 나제동맹이 붕괴된게 원인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991 2017-06-19 13:30:02 0
[새창]
EF EPI(영어능력지수)를 보면 한국이 27위, 일본이 35위입니다. 점수로는 4점 정도 차이가 나구요.
이 지수에서 홍콩이 30위라서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을텐데, 홍콩도 중국반환이후 영어를 전혀 못하는 본토인들 유입이 많아져서, 영어능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하락했습니다.
990 2017-06-19 13:24:55 0
중국은 기술 양자통신 전송 성공 ㄷㄷㄷ [새창]
2017/06/19 13:16:19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406072
하지만 이 기술이 실용성과는 관계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600만개의 입자 가운데 한 입자만에서 이 같은 양자얽힘 전송에 성공했다는 점은 아직 기술적으로 난관이 적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알레산더 링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중국 연구팀이 지상에서 받는 데 성공한 광자는 600만개중 하나일 뿐이고 공간적 거리도 양자통신을 실행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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