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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23: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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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선교회의 92년 10월 28일 자정 휴거떡밥이죠.
1990년대 세기말을 틈타 이장림 목사를 중심으로 생긴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주장으로 당시 한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장림 목사는 원래 기독교 서적을 전문적으로 번역/출간하는 생명의말씀사의 번역가였다. 그리고 현재는 이름을 "~답게 살자"라고 해서 "이답게"로 바꿨다고 한다. 80년대 후반에 출판한 이장림의 저서 "다 가올 미래를 준비하라"에서 따와서 다미선교회라고 이름을 지었다. 새하늘교회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0년대는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흉흉했던 세기말 분위기와 맞물려 종말론을 내세우는 신흥종교들이 많이 탄생한 시절이었다. 다미선교회는 종말론자 이장림 목사가 주도하여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요한묵시록을 근거로 해서 1992년 10월 28일(수) 24시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주장으로 신자들을 모아 돈을 뜯었다. 그런데 성경을 봐도 복음서에서 그 날은 천사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며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온다고 했다. 개신교계에서는 당연히 이단 취급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다. 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것은 대략 1980년대 후반부터로 이때부터 명동이나 서울역 등 주요거리에서 길거리 전도를 했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이슈가 된것은 1990년~1991년도부터로 시한부 종말론을 다룬 종교서적들이 서점에 다수 등장한데다가 1991년에 KBS 사랑방 중계, 뉴스비전 동서남북, MBC PD수첩 등이 다미선교회와 시한부 종말론에 대해 다루면서 이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방송에서 다미선교회를 딱히 긍정적으로 다룬것은 아니기는 했지만 다미선교회측에서는 이를 오히려 포교의 기회로 삼아 상당수 신도들을 낚았다.
월급 100만원 받으면 잘 번다는 소리 듣던 시절에 뜯은 액수가 몇백 몇천도 아니고 억 단위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이 낚였는지는 짐작이 간다. 신도들 중 4명은 총합 6억 5천을 냈고, 천만 이상 헌납한 신도는 30여 명이었으며, 그중 일부는 10월 28일까지 먹고 살 만한 돈만 남겨놓고 전재산을 헌납했다고 한다.
하도 종말론이 유행하다보니 딱히 다미선교회와는 상관없는 다른 평범한 개신교 교회들도 휴거 책자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해졌다. 그리고 다미선교회 안에서도 정확한 휴거의 때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10월 28일은 맞는데 정확히 몇 시냐는 것. 28일이라면 한낮인가 자정 직전인가, 한국시간인가 GMT인가를 놓고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다 결국엔 자정까지 기다리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다.
그리고 대망의 1992년 10월 28일. 하도 세상이 어수선해진 나머지 TV방송국까지 출동해서 그날 밤 마감뉴스를 통해(KBS 보도본부 24시, MBC 마감뉴스, SBS 마감뉴스) 생방송으로 휴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방송을 지켜보았으며 마침내 밤 12시가 되자….
휴거는 당연히 오지도 않았다.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흥분한 나머지 몇몇 사람들이 기절하거나, 나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누가 "나방이 휴거가 되었다!"고 소리쳐서 나방이 있던 곳으로 몰려들어 좀비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등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별 일 없이 평온하게 다음 날이 되었다. 당시 이를 취재하던 한 기자는 "이들은 하늘나라가 아닌 집으로 돌아갔으며..."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휴거가 올것이라고 믿던 신도들에게 남은것은 허탈감과 후유증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다미선교회 기도원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이 기물을 때려부수고 책임자 나오라고 소리지르고 난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