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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15-04-19 13:05:50 0/4
"저는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새창]
2015/04/19 01:22:31
해군2함대가 실종자가족들에게 사고과정 설명을 무성의하게 하는 바람에 일부 실종가족들이 크게 흥분해 결국 부대정문 경비병을 밀치고 군부대로 진입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5분대기조를 투입시켜 실종자 가족에게 소총을 겨누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친 명령에 불복종해서 영창 며칠 다녀오는 것이 자신의 신념과 양심과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보다 힘든 일일까요?
실종자 가족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것은 국방과 하등 관계 없는 일일텐데요.
4 2015-01-11 12:19:04 10
베트남 전쟁 Vietnam War [새창]
2015/01/10 00:49:04
토츠카: 오랫동안 분단국가였고 무력통일로 남북갈등이 심했기에 분단국가가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글쎄요, 어쨌든 이미 통일된 베트남 땅에서 베트남 독립동맹과 프랑스군과의 휴전으로 남북 분단이 된 상황입니다.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분단 상태였고 제네바 협정에서 다시 통일하기로 서로 약속을 했지만 남베트남 임시정부가 통일을 거부한 것 아닙니까?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근대 이후입니다. 신라가 통일을 추구한 것은 백제, 고구려 민족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아예 다른 민족인 당나라 군과 연합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현재의 지도와 비슷하게 된 것은 조선 이후입니다. 말하자면 그 전까지는 수 천년 동안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였고 남쪽 지방 사람들은 천리장성을 쌓을 정도로 함경도 등 압록강 두만강 지역 사람들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아무 원한도 없는 베트남에 파병을 가서 많은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한 입장에서 '너희는 분단국가가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하는 것은 꽤 위험한 발언 같습니다.
3 2015-01-10 18:09:30 6
베트남 전쟁 Vietnam War [새창]
2015/01/10 00:49:04
↑ 주식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전쟁 등으로 경제상황이 혼란스러울 경우 주식같은 위험한 투자는 꺼려지게 되는 거 아닌가요?
2 2015-01-10 17:00:17 7
베트남 전쟁 Vietnam War [새창]
2015/01/10 00:49:04
토츠카// 베트남전 자체를 미국의 침략전쟁이라고 보지 않고 북베트남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남베트남의 동맹군으로 개입했다는 시점에서 시작하셨군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니 같은 사실로도 다른 견해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남북 베트남이 어떤 체제를 갖건 그 나라 국민이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당시 베트남 국민에게 어느 체제가 더 적합한지 왜 반드시 미국이 판단하고 개입해야 했는지요?
애초에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졌던 이유는 외세의 식민지배 때문이었습니다. 독립국가가 된 북베트남은 통일전쟁을 한 것이고 미국의 개입으로 베트남 국민들은 무차별적인 고엽제 살포와 끝없이 쏟아지는 네이팜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서해교전으로 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전쟁이 일어났습니까? 상대국 선박이 영해선을 침범해서 교전을 벌이는 일은 어디서건 가끔씩은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걸로 전쟁을 벌이는 나라는 흔치 않죠.
물론 그 의도를 인정하진 않으시겠지만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베트남전의 결과로 이익을 본 집단은 누구고 피해를 본 집단은 누구입니까?
남북베트남군, 베트콩은 물론 미군, 한국군 사병 역시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고엽제 피해를 봤습니다. 베트남 땅에 수없이 뿌려진 폭탄을 판매한 집단은 엄청난 이익을 거뒀습니다.
1 2015-01-10 02:44:32 11
베트남 전쟁 Vietnam War [새창]
2015/01/10 00:49:04
토츠카↑
1차 공격이 사실이었다 한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개입 명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그 뒷배경엔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되면 군수업체와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 아니었나요? 국제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구요? 왜 사실관계만 얘기하시고 가치관계는 생략하시나요?

남베트남 정부가 사실상 미국의 괴뢰정부였다는 것은 인정 하십니까? 북베트남 입장에선 반쪽짜리가 아닌 전국토의 독립을 원했습니다. 미군이 남베트남의 동맹군으로 들어온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명분 뿐으로, 남베트남군은 동족끼리의 전쟁에 미온적인 태도였습니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이제야 독립하려나 했는데 미국으로 바톤 터치된 상황이었으니까요.

파리 평화협정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손을 떼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습니다. 북베트남의 입장에선 이제 미국이 물러나서 완전한 통일 독립국이 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되었는데 그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겠죠.

대체로 보트피플 구성원들은 남베트남에서 위의 정치인, 군인, 관료, 교사를 했거나 프랑스령-인도차이나 시절에 프랑스 정부 밑에서 일을 했던 친불파들과 부유층 즉, 부르주아 계층과 그리고 1978년부터는 캄보디아와 베트남 간의 국경분쟁으로 인한 화교 탄압으로 인해 화교들이 보트피플을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종전 후 많은 이들이 처형당한 것을 두고 호치민이 너그러운 사람이었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말들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해방 후 일제부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갈등과 폐해가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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