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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2 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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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무과는 문과와 달리 식년시에 28명을 뽑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후기 들어 오면서 이 원칙이 무너져 수백명씩 뽑았다고 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무과엔 1,147을 뽑았습니다.ㄷㄷㄷ. 그리고 특별과거도 많이 있어서 무과 합격생이 무더기로 배출되곤 했었습니다.
조선의 무과가 문과보다 경시되었던 이유는 합격자 숫자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의 문과 합격자는 1만5천명이 못되는 반면 무과 합격자는 15만명에 달했습니다. 무과 합격자는 종7품, 종8품, 종9품으로 조선 관료사회 가징 밑에 위치했습니다. 편지에 무과 관료 맨 밑바닥(?)의 생활이 잘 나와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