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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08: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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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FU가 성급했다고 하는게, 뱉대숲은 정말 말도 안되는 물건이었습니다. 시빌워랑 비슷하게 개봉했지만 거기 비교했을때 처참할 정도의 완성도였어요.
캡과 토니는 자신들의 캐릭터가 명확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솔로무비를 통해 변화를 겪어요. 캡은 3편의 영화 속에서 항상 꾸준히 고결하지만 주변 환경에 의해 심적 변화를 겪습니다. 선하리라 믿었던 국가와 군대, 조직이 타락하는 광경을 목격하며 거기서 독립해 자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정의와 용기의 가능성인 동시에 아집과 자만의 위험성이기도 합니다. 반면 자기 자신만을 알던 오만한 나르시스트 토니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성숙해집니다. 동료들을 위하고 걱정하고 팀을 위해 악역을 자처할 정도로 변화하죠. 그러나 선한 의도와 달리 토니는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것에 미숙하고 자기 고집이 너무 강한 캐릭터이기에 자주 비극을 낳습니다. 이 완벽하게 상반된 캐릭터인 둘이 시리즈를 거쳐오며 우정을 쌓고 서로 이해는 못할망정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해주는 기묘한 동료애를 쌓아왔죠.
시빌워의 구조는 두 진영의 신념 차이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갈등의 촉매에 불과하고, 그렇게 한번 틀어져 오해가 쌓이기 시작한 후로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동료애가 결국 지극히 개인적 감정들이 어긋남에 따라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비극을 맞습니다. 우리는 이전 시리즈들을 통해 토니와 캡을 너무 친숙하게 잘 알게 되었기에 그들의 신념을 잘 압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 변화 과정을 지켜봤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초창기 신념과는 정 반대되는 선택들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공감하죠. 또한 그들의 인간적 면모와 약점까지도 알고 있기에 감정에 의한 마지막 파국에도 깊게 동감하게 됩니다. ‘상관없어 저놈은 우리 엄마를 죽인 놈이야’ 이 대사에 가슴이 울린 이유가 바로 여기 있죠.
똑같이 엄마를 두 캐릭터 사이 중요 소재로 차용한 뱉대숲은 어땠나요? 슈퍼맨의 정체성을 박살낸 전작에 이어 본작에서 첫등장한 배트맨은 우리가 익히 알던 뱉신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란 별칭에 맞는 철두철미한 머리도 못 보여주고, 악당을 죽을만큼 패주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만은 살려주려 하는 그 기묘하고 뒤틀린 자의적 정의도 없습니다. 슈퍼맨도 배트맨도 세계에서 인지도가 제일 높은 두 영웅 캐릭터이지만 우리는 그 둘 중 누구에게도 공감도 이해도 할 틈이 없습니다. 그냥 모르는 사람들 같은 생경함만 느껴집니다. 관객이 그 내면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두 캐릭터가 화면 안에서 싸우다 화해합니다. 심드렁해질 수 밖에요. 문제는 이게 그냥 평범한 오리지널 망작이었으면 상관 없었겠지만 뱉맨이 나오고 슈퍼맨이 나와요. 근데 우리가 알던 이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새로운 모습에 공감할 틈도 주지 않으니 기괴한 어색함이 느껴지는 겁니다.
주역 캐릭터 둘이 대체 왜 싸우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데, 그게 무려 뱉대숲이란 빅 이벤트에요. 그 중요한 소재를 그리 날려먹었어요. 심지어 슈퍼맨의 죽음이란 소재까지 섞어서요. 이 시점에서 DCFU는 망한겁니다. 자기네 최고 중요 캐릭터들에 대해 스스로조차 이해 못하고 막 갖다 버린 꼴이니까요. 마음 아프지만 시간 좀 지나서 리붓 말고는 솔직히 답이 없어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