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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7 07: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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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글쓴분 말처럼 홈커밍은 철저하게 미숙한 히어로 지망생 스파이디와 어린아이-어른 사이에 껴서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청소년 피터 파커의 심적 성장에 포커스를 맞춰뒀습니다.
이게 참 교묘한게, 스파이디라는 히어로의 특징과 정체성에 완벽하게 부합하면서 원작 속 스파이디 캐릭터의 한 단면을 고증하는 부분인 동시에 히어로 오리진 스토리 특유의 ‘자기 정체성 고민’이란 주제와 딱 맞습니다. 게다가 이미 10년 가까이 차곡차곡 세계관을 쌓아온 MCU에 새얼굴로서 투입되는 영화 외적인 상황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죠.
영화 속 피터 파커는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미숙한 청소년입니다. 동시에 슈퍼 히어로로 데뷔는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무거운 일인지 하나도 모른채 그저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은 허영심에 들떠 있는 초짜 히어로죠. 이 부분들이 피터 파터일 때는 멘토 토니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스파이디로서는 어벤져스에 끼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집니다.
이 부분을 위해 의도적으로 생략된 것들이 있어요. 두번의 시리즈화에서 스파이디의 시그니쳐 액션씬이 된 화려한 마천루 거미줄 스윙 액션이 빠져있습니다. 이것 제작진의 미스로 누락된게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집요하리만큼 의도적으로 배제된겁니다. 작품 내 주요 액션시퀀스의 배경을 살펴보면 자명하죠.
스파이디는 반동과 원운동을 기반으로 액션 자체에 긴장의 강약이 심어져 있는 화려한 액션을 자랑하는 히어로지만 전장의 지형에 크게 영향을 받는 약점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강력한 영웅이긴 하나 거미줄을 걸어둘 곳이 없으면 특유의 호쾌한 스윙 액션의 맛을 살리지 못하죠. 근데 홈커밍에선 한적한 주택가, 평지에 홀로 뚝 떨어져 세워진 워싱턴 기념탑, 강 한 복판의 유람선, 심지어 고공을 나는 비행기 위까지 철저하게 스파이디에게 불리한 전장만을 끌고 다닙니다. 이를 통해 제작진은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끔 통제하지 못하고 상황에게 오히려 끌려다니는’ 미숙한 초짜 영웅의 모습을 잘 그려냈죠. 물론 마지막의 수송기 위 고공 격투씬은 끌려갔다기보다 영웅으로 각성한 스파이더맨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알면서도 그 속으로 몸을 던진 것에 가깝지만요.
또 스파이디의 대표 속성 중 ‘불행을 몰고 다니는’ 모습도 본 작에선 다소간 빠져 있습니다. 이는 아직까지 스파이디가 ‘힘의 책임’을 크게 느낄만큼 성장을 못한 천방지축 초보 영웅이라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에서 피터는 자기의 미숙함으로 인해 몇번이나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큰 인명사고를 낼 뻔도 했죠. (그리고 생기자마자 안생겨지게 된 여친도 있습니다ㅠㅠ) 지금은 아직 이 위기때 멘토이자 스승이며 삼촌이자 아버지 격인 토니가 그 사고들을 수습해 줍니다. 그러나 앞으로 토니가 MCU에서 그 역할을 다 하고 나면? 아니 당장 홈커밍2(가칭)만 가도 토니의 멘토 역할 비중은 줄어들게 뻔합니다만 그때가 되면 피터 파커는 새로운 두려움을 맞이하게 될겁니다. ‘이제는 아무도 내 행동에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흔히 청소년기를 벗어날 때가 된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이지만 이것이 사실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의 본질이기도 하죠. 또한 차기작에서 슬슬 피터의 행동들이 자신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결과들을 불러오기 시작하면 스파이디 캐릭터의 주요소인 ‘책임감’과 ‘불행’을 충분히 표현 가능할 겁니다. 1편에선 그 맛만 살짝 보여준거죠. 벌써부터 불행하면 관객들이 덜 충격먹을까봐(?) 차곡차곡 캐릭터 설정을 쌓는 배려를 해준겁니다.
여담이지만 이미 벤 삼촌이 부재중으로 나오는 홈커밍입니다만 만일 스파이디 시리즈가 앞으로도 MCU를 통해 쭉 후속작이 이어진다면, 아마 토니 스타크의 예정되어 있는 퇴장, 혹은 세대교체가 피터에게 큰 영향을 미칠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홈스파 시리즈에서의 벤 삼촌 사건은 토니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겠네요. (물론 이건 아이언맨의 은퇴/세대교체를 홈스파 시리즈 일정에 맞춰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토니의 은퇴 시점과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소니-디즈니 계약상 홈스파가 2편 이후로도 쭉 MCU에서 나오게끔 연장이 되어야 하기도 할테지만요)
여튼 화려한 거미줄 액션과 스파이디 특유의 ‘책임감’, 그리고 불행 속성은 본작에서 제작진이 놓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배제하거나 약하게 맛만 보여준 것입니다. 시리즈가 지속됨에 따라 차기작에서 보여줄 준비는 그 바탕을 잘 깔아뒀죠. 여기서 무서운게 MCU제작진들, 그리고 큰 그림을 설계하는 캐빈 파이기의 저 태연한 여유와 자신감입니다. 만일 이 작품을 소니가 또 다시 만들었다면? 아마 스파이디란 이름값에 눌려 무조건 화려하고 스케일 크고 빅-카붐 블럭버스터로만 만들려 했을 겁니다. 빌런도 소니가 그렇게 사모해 마지않는 베놈, 그래 베놈으로 하자 라고 결정됐겠죠. 그리곤 온갖 과잉과 오바로 자뻑하다 무너지는 사태가 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소니 영화의 흔한 실책이기도 하고 스파이디 프랜차이즈 이름값이 워낙 크기도 하니 당연한 일이었을 거에요. 근데 마블은 달랐습니다. 자사 최고 인기 캐릭터를 다시금 손에 쥘 수 있는, 그것도 한정적 기한으로 만져볼 수 있는 찬스가 왔음에도 전혀 조급해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침착하게 스파이디 영상화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스윙 액션을 싹 빼버리고 캐릭터 본질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죠. ‘이 캐릭터는 누구보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우리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캐릭터다’ 하는 자신감이 이런 여유를 만들어 냈겠죠. 절대 한 편 안에 다 보여주려 조급해 하지 않고 천천히 기반부터 다졌습니다. 홈커밍의 놀라운 점은 이 영화에 만족을 하건 불만을 가지건 어쨌든 다음 편에 대한 더 많은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는 겁니다. 한 편을 갖고 뽕을 뽑을 생각으로 완성도 망쳐가며 이것저것 다 집어넣는 잡탕을 만들어 관객들 주머니 한탕 크게 털어먹고 그 뒷일은 나 몰라라 하는게 아니라, 천천히 차곡차곡 내실을 다져가며 다음편, 또 그 다음편이 기대되게 만드는 훌륭한 오리진 스토리를 만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소니가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지 말고 오래오래 이 협업관계를 이어가며 gooood이나 보고 떡이나 챙겼으면 좋겠어요. 어 뭐 좀 되는거 같네? 하고는 다시 가져와 또 심비오트 똥 묻혀가며 잡탕 만들지 말고..(에이미 파스칼의 그 거한 삽질 때문에 더 불안해서 그러는 겁니다)
여담으로 DC 영화는 홈커밍을 보고 좀 배워야 합니다. 마블 최고 인기 캐릭터인 스파이디를 본가로 데려와 데뷔시키면서도 캐빈 파이기가 이토록 담백함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들 캐릭터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완벽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디씨 워너 니들은 저 유명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플래시에 대해 자기 스스로조차 전혀 이해를 못했어요. 그냥 뻘건 망토 두르고 날아다니는 먼치킨 데우스 엑스 마키나, 쫌 예쁘고 간지나는 여전사, 빠른놈, 시커먼놈, 이정도 이해를 가지고 대충 영화 만들면서 팬들 팬심 우롱해 어쨌거나 이번 한 편으로 뽕 뽑고 보자 해댔으니 그 여파로 다름아닌 저스티스 리그가 폭망한거죠. 자기네 캐릭터에 대한 애정부터 탑재하세요. 그 훌륭하고 매력적이고 멋진 캐릭터들을 두루두루 가지고 있으면서.. 에휴 말을 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