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이미지는 내용과 관계가 없는 참고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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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가을 한번은 저녁식사가 끝나고 환자 회진을 돌고 있는데,
온 몸에 피를 묻힌 청년이 검은색 봉투를 하나 들고 뛰쳐들어왔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서 '당장 수술방을 잡으라'고 눈에서 레이저를
무섭게 쏘아댔다는 것.
분위기로는 '뒷골목에 서식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였다는데,
드물긴 하지만 이쪽 사람들이 이런 의사들을 찾는 경우가 꽤 있고.
증상과 원인에 따라서는 경찰과 연관된 부분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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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비닐 봉투 안에는 절단된 손가락 하나가 물 속에 들어있고,
순간적으로 살펴본 청년의 손가락은 별 문제없이 붙어 있었다는 것.
환자는 수술방을 준비하고 난 뒤, 손에 셔츠를 칭칭말고 곧이어
나타났는데, 손가락의 주인인 줄이야 한 눈에 알아보았지만,
몸 이곳 저곳에 자상과 창상들이 다수 보였다는 것, 이른바 칼침자국.
워낙 일(?)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손가락이었기에 우선 순위를
정해가며 긴시간동안 수술을 했고, 동트는 새벽에야 비로소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옮길 수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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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환자는 자신의 신변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가장 필요한 사항만
응대를 하였고, 원인에 대해서는 '요리중 사고'라고 완강하게 주장했다고.
레이저 청년은 환자의 입원중, 마치 간병인처럼 옆에 줄곧 붙어 있었는데,
간호사에 의하면 서로 특별한 말도 하지 않으며 눈빛만 나누고 있더라는 것.
원무과로부터는 환자의 신상은 나왔지만, 환자는 급여적용을 결코 원하지
않았고, 치료비 일체는 레이저 청년이 현금으로 꼬박 꼬박 잘 내고 있었다고.
4주 이상은 입원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2주가 넘자말자 병실을
나갔고, 그 이후로 통원을 하러 한번도 들르지도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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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승천하는 용그림 같은 거 없었나요?'
'없었어, 몸은 좋드라만. 얘가 근데 회진들어가 보면,늘 신문보고 있드라,
TV같은 것도 보지 않고, 신문하고 주간지가 전부야, 그리구 암것두 안해.'
'조폭....관련된..??'
'다들 그렇게 생각은 하더라만, 말투에 위력이 있거나 하지도 않더라고.'
'밤의 비즈니스 맨들은 복장이 벌써 확 튀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니가 임마, 그런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거 아냐?'
'대화는 좀 해보셨나요?'
'대화? 글쎄, 시간은 많이 할애했지, 환자상태가 상태니 당연한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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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형님이 없을때 레이저가 다녀갔다는 것.
원무과에서는 환자를 내내 지키던 레이저를 단박에 알아보았다고...
폰번호가 적힌 메모가 있었는데, '저희 회장님께서 박사님(이 형님은 박사)을
꼭 다시 한번 뵙고 식사를 뫼시고 싶어하십니다. 부디 연락 부탁드립니다.'라고
씌여 있었다는 것. '야, 필체는 나보다 훨씬 좋드라야.ㅎㅎ'
은근히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병실에서의 그 환자 눈빛으로 보면,
마다할 것도 없어서 원무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했다는 것.
환자의 목소리는 예전의 나눴던 톤과 달라진 것이 없었고, 만날 날짜를 잡았고.
바로 이어서 연락이 왔을 때는,자기 직원들이 모시러 가겠다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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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저녁식사를 약속한 그 날과 시간에 병원앞에는 긴장감이 돌았는데,
영화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 '에이, 형도 똑같네..영화얘기는..'
독일의 그 유명차가 검은색으로 줄지어 서있고, 흰색 컬러깃을 바짝 세운
청년들이 제복처럼 검은 슈트를 일제히 입은채 도열하고 있었다는 것.
은근히 살떨리는 와중에 레이저가 있는 차까지 갈때까지 청년들이 깍듯한
예를 다하는 것을 보며, 잠깐 두려워 후회하기도 했다고.
호텔의 연회층 하나를 통채로 얻어서 마치 팔순잔치를 하듯 상을 차렸는데,
형님 소개는 레이저가 아닌 다른 중년이 하더라는 것, 이 중년한테는 전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준위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더라고..
* * *
회장은 형님과 바로 옆에 앉았는데, 마치 노부부같은 모양새로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요새는 어떠세요.'라고 어색하고 바보
처럼 말을 떼었다는 것.
그런데, 순간..그 환자,아니 회장이 눈가가 붉게 변하는것이 바로 보이더라는 것.
'형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에이, 조폭이 애들 보는데서 짜는게 말이되나요.'
'넌 그래서 아직도 인간을 모르는 거야, 말라 비틀어진 추한 영혼이지'
* * *
'이거는 그래도 그럴 수 있는 거야 생각했지, 이런거 처음도 아니었고.
그런데 너무나 불편한 거야, 과했어, 기분좋게..편하게 식사했으면 좋았겠는데,
물론 마음은 알지, 무슨 변고가 있었나보지, 어려운 여건이었고 나를 만난건데,
나야 의사지 다른게 있었겠냐, 가금씩 시간내서 넋두리 하는 거 들어주고..'
'무슨 넋두리를 하던가요.'
'인간 내면 같은 거 이상하게 묻더라, 어물쩍하면 자기가 중얼대고'
'그런데, 차려놓은게 핵심이 꼬냑이야, 난 양주도 싫어하는데, 그래서 소주를
찾았어요. 그랬더니 앞에 주루룩 쌓아주는 거야. 괜히 불편하니까 얼마나 펑펑
들이켰는지 모르겠다. 환자가 아주 좋아지고 자리잡은(?)것도 안심되고..'
'그러다 보니 술이 술을 좀 먹고, 많이 거나해진거야, 자잘한 이야기에 웃고..'
환자 회장도 술을 했지만, 그렇게 밝게 웃는 것도 처음보고 해서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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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갑자기 레이저가 일어났다고..
형님이 형님으로 모시면, 우리에겐 큰형님이 되신다고 했다는 것.
그리곤 '얘들아, 큰 형님 가마 타신단다~'라고 크게 외쳤다는 것.
일순 청년들이 테이블 하나를 치우고, 어딘가에서 방석을 가져와서 주르륵 얹었고,
밴드들이 쿵짝거리고 음악을 막 올리는데 방석에 앉으니 청년들이 테이블 옆으로
모여서는 번쩍 들어올리고는 크게 펼쳐진 상 주변을 맴돌았다고..
술기운이 바짝 도는데, 사람들은 머리통들만 보이고,겁이 날줄 알았는데,
그렇게나 신나서 웃음이 계속 터져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누가 뭐라건 말건, 그저 묵묵히 지내왔던 바느질 인생인데, 누군가에게는
이렇게나 큰 안심을 주었다니 아이러니컬하게도 형님이 위안을 받았다는 것.
--- 싱겁던 재미가 조금이라도 있으셨던, 오유에서만 보시자고요.
--- 참고로 이 형님은 최근 미국가서야 처음으로 야동을 봤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