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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9 20: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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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링크의 글 중 일부를 발췌해드리자면..
(중략)
제로 이덕일이 문제 삼았던 지도는 바로 위의 것이다. 이덕일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위 지도를 보면 무엇을 욕해야 하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 될 것이다. 맞다. 욕할 부분이 떠오르지 않는 게 정상이다.
이덕일은 2-3세기 한반도 남부 지역을 그린 위 지도에 신라와 백제가 없다고 트집을 잡고, 이것이야말로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뒤집어 씌운다. 그런데 백제는 '백제국'으로, 신라는 '사로국'으로 엄연히 표기되어 있다.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는 한반도 남부에 마한 54개국, 진한 12개국, 변한 12개국이 있음을 전하며 이들 소국의 이름을 하나하나 모두 나열하고 있다. 자료가 매우 희박한 고대사에서 더없이 소중한 자료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덕일은 "삼국사기"에는 이들 소국 이름이 안 나온다며 "삼국지"를 믿을 수 없다고 매도한다.
"삼국지"는 3세기 대에 편찬된 책이고, "삼국사기"는 1145년에 편찬된 책이다. 두 책 모두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소중한 자료들이다. 다만 한반도의 3세기대 상황을 복원하는 데 있어서 3세기 당대에 저술된 책과 그로부터 900년 가량 뒤에 저술된 책 중 어느 쪽이 더 무게감이 있는 사료인지는 자명하다. 역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사건이 발생하였던 당대의 자료에 가중치를 부여한다. 문헌과 금석문의 내용이 상충될 때 후대 기록인 문헌보다 당대 기록인 금석문을 더 존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삼국지"가 외부자인 중국인의 시각에서 저술되었다는 점은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외부자의 시선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있는 것들도 있다. 예컨대 한말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얕아 피상적으로 서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자의 시선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참신한 시각에서 조선의 문화와 제도, 사람들을 묘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삼국지"도 삼한 사람들의 풍습과 생활상을 굉장히 생동감 있고 상세하게 전달하고 있는데, 이것도 외부인의 시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덕일 식대로 "삼국지"의 사료적 가치를 폄훼하면,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는 소중한 고대사 자료들을 쓰레기 통에 버리는 꼴이 된다. 도대체 이런 단순무식하고 폭력적인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렇다고 이덕일이 "삼국지"가 전하는 삼한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덕일은 1999년 이희근과 공저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에서 한반도 남부, 즉 마한 남쪽에 '왜'라는 정치체가 존재하였다는 괴설을 주장한 바 있다.
"......왜의 위치는 마한과 진한, 변진의 남쪽, 즉 한반도 남부이다. 따라서 왜는 중국의 삼국시대인 3세기까지는 한반도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한반도에 있었던 왜는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 두고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맞서 싸웟던 강력한 정치집단이었다. 그간 일본인들이 왜를 일본열도 내로 비정하면서 생겼던 모든 모순은 왜를 한반도 내의 정치집단으로 이해할 때 풀리게 된다......전남 나주 반남고분군은 고대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했던 왜라는 정치세력이 남긴 민족사적 유산이다"
이덕일, 이희근, 1999,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김영사, 21~27쪽.
이덕일이라는 '대학자'의 입에서 나왔기에 망정이지, 한국이나 일본의 평범한 학자가 입에 올렸다가는 당장 임나일본부설을 떠벌리는 식민사학자라고 귀싸대기를 맞을 소리를 저렇게 했었다. 참으로 기묘한 것은 이덕일은 자기 입으로 '3세기'에 마한, 진한, 변진의 남쪽인 한반도 남부에 '왜'가 '강력한 정치집단'으로 존재했다는 어마무시한 주장을 했던 주제에, 그냥 '3세기 한반도 남부에는 삼한이 있었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견해에 대해 '이게 바로 임나일본부설'이며 '매국사학'이라고 거품을 물며 덤벼들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