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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2012-07-26 22:26:48 1
우리나라 역사 왜곡, 진짜 이정도 많을 줄이야.. [새창]
2012/07/25 14:15:30
이전에 같은 글을 올리셨기에 역시 같은 글에 단 같은 댓글을 가져와 봅니다.

====

몇가지 내용의 오류가 있어 간단하게 지적 드리자면 첫째로 동북공정은 국경 근처가 아니라 중국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역사 정립 사업입니다, 또한 그 목적이 차후에 통일을 대비한것이다 라고 보기는 아직은 힘듭니다, 실상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대내적 목적이 큰 사업일뿐더러 무엇보다 그 들의 속내는 말 그대로 추측만 가능할따름입니다, (애초에 사업의 시작이 자국의 역사 인식을 위협할수 있는 이론 7가지를 반박하는 이론정립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중 2개가 우리나라의 유사역사학 이론이었죠,)

두번째로 임나 일본부 설은 상당히 까다로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신공황후가 신라 궁궐문 앞까지 파도를 타고 넘어오니 신라가 항복하고 고구려와 백제가 무릅을 끓었더라 한반도 정벌설 같은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만, 한반도 남부 지역 등에서 지속적으로 발굴되는 유물로 볼때 다채로운 가설이 나올법도 한 이야기이죠, 쉽게말해 마냥 부정하기도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광개토 대왕 비문 조작은 광개토 대왕릉비에 관련된 수많은 가설중 하나로 재일 사학자 이진희가 발표를 했는데 시간적 흐름에 의한 파손과 탁본을 뜨기 위한 과정에서 파손된것이 확인되어 신뢰성이 떨어진 가설입니다.

홍삼 왜곡은 참 처음 보는군요, 찾아봐도 이 글과 같은 내용의 글들 말고는 기사가 없습니다, 오히려 한의사단체 참의료실천연합회에서 홍삼을 장기복용하는 사람들에게 고혈압 심장질환 불면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한 기사만 그에 반론하는 내용의 기사만 보이는군요,

그리고 기무치는 아사즈케에 매운 풍미를 살리는 정도인 일본식 김치입니다, 한국 김치가 아니라 말이죠,

당시 일본은 Kimuchi를 김치 관련 표준 명칭으로 하고 그 분류에 일본식 기무치 및 자신들의 전통 식품인 아사즈케를 포함하려고 했습니다. 한국 김치는 우리꺼!! 가 아니라 말이지요,

147 2012-07-26 22:12:07 5/5
위문후님의 글에 대한 간단한 반론입니다. [새창]
2012/07/26 21:17:38
몇 일 일때문에 부득이 하게 잠수를 하고 오니 별 글이 다올라오는군요, 저도 모르는 제 자신을 탐구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146 2012-07-22 23:12:24 3/4
초코틴틴님의 글에 대한 간단한 반론입니다. [새창]
2012/07/22 22:53:01
감정 싸움으로 비출수 있는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말씀대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개인적인 감정에 가린다면 곤란한것이겠지요,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145 2012-07-22 22:18:49 2/9
아래 일본의 찬양하는 종자들을 위한 글 [새창]
2012/07/28 09:36:41
우선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대체제를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풍족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공업 혁명을 막을 정도로 저렴한 인력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단순하게 원나라를 엎으니 기술을 얻었다 라고 단축시켜 말씀하시는 오류가 있습니다.

두번째로 방곡령 사건을 이야기 하시는데, 이 경우는 미곡 수출에 따른 공급량의 미달과 흉작으로 인한 공급량의 미달에 따른 경제적인 마찰의 문제입니다. 엄밀하게 보자면 면포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애초에 중개무역이 경제적으로 나쁜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일본이 조선보다 경제적으로 우세한것을 말하며 조선이 원시적인 경제형태에서 탈피했다는 것은 입증이 안되는 애기 같습니다만, 대체 어떠한 점에서 일본의 열등함을 이야기 하시는지요?

또 국가간 외교나 개인 혹은 국가간 무역에 양심이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청일전쟁의 경우는 조선의 외교적 미숙으로 발발한 전쟁으로 청나라에 있어서 영향력이 미치는 마지막 국가인 조선을 사수하기 위하여 일본의 경우는 중국의 이권과 영향력 제거의 목적을 두었습니다. 중개 무역이라는 측면이 물론 있습니다만 크지는 않지요,

영국과 청의 무역은 조공 무역이 아닙니다. 서양의 문화, 종교,그리고 사회적 관행이 제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며 대외적인 강경 자세를 여덞개의 조항으로 표현한 것으로 일종의 쇄국 정책에 가깝죠,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은 생산량이 폭주하셨다고하는데 은 기술자가 유출되었다거나 혹은 조선의 영향으로 늘었다는 논거가 있나요?

또 그 이전 부터 탄력적으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역에 앞장선게 일본입니다. 물론 에도 막부 들어 쇄국으로 전향되었습니다만 유럽에서 대 일본 무역을 중시하는 바는 단순하게 임진왜란에 근거한 사안이 아닙니다.
144 2012-07-22 22:18:49 2/7
아래 일본의 찬양하는 종자들을 위한 글 [새창]
2012/07/22 21:05:44
우선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대체제를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풍족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공업 혁명을 막을 정도로 저렴한 인력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단순하게 원나라를 엎으니 기술을 얻었다 라고 단축시켜 말씀하시는 오류가 있습니다.

두번째로 방곡령 사건을 이야기 하시는데, 이 경우는 미곡 수출에 따른 공급량의 미달과 흉작으로 인한 공급량의 미달에 따른 경제적인 마찰의 문제입니다. 엄밀하게 보자면 면포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애초에 중개무역이 경제적으로 나쁜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일본이 조선보다 경제적으로 우세한것을 말하며 조선이 원시적인 경제형태에서 탈피했다는 것은 입증이 안되는 애기 같습니다만, 대체 어떠한 점에서 일본의 열등함을 이야기 하시는지요?

또 국가간 외교나 개인 혹은 국가간 무역에 양심이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청일전쟁의 경우는 조선의 외교적 미숙으로 발발한 전쟁으로 청나라에 있어서 영향력이 미치는 마지막 국가인 조선을 사수하기 위하여 일본의 경우는 중국의 이권과 영향력 제거의 목적을 두었습니다. 중개 무역이라는 측면이 물론 있습니다만 크지는 않지요,

영국과 청의 무역은 조공 무역이 아닙니다. 서양의 문화, 종교,그리고 사회적 관행이 제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며 대외적인 강경 자세를 여덞개의 조항으로 표현한 것으로 일종의 쇄국 정책에 가깝죠,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은 생산량이 폭주하셨다고하는데 은 기술자가 유출되었다거나 혹은 조선의 영향으로 늘었다는 논거가 있나요?

또 그 이전 부터 탄력적으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역에 앞장선게 일본입니다. 물론 에도 막부 들어 쇄국으로 전향되었습니다만 유럽에서 대 일본 무역을 중시하는 바는 단순하게 임진왜란에 근거한 사안이 아닙니다.
143 2012-07-22 21:33:15 5/10
아래 일본의 찬양하는 종자들을 위한 글 [새창]
2012/07/28 09:36:41
간단하게 몇자를 남겨보자면 고려의 경우 원나라의 외교적인 상황과 맞물려 사무역은 통일신라보다 쇠퇴했지만 공무역이 성행했습니다. 쌀의 생산량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문제이죠,

또 문화 경제 기술적으로 발전을 폭팔시켰다는 원나라 헤게모니는 뭘 말하는건가요?

그리고 조선의 경우는 국가의 가치관이자 뿌리인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이상적인 사회상에 근거하여 상업을 천시한것입니다, 조공무역으로 필요성이 채워졌기에 안한게 아니라 말이죠,

정유 재란의 협상은 일본은 명나라 황녀를 일본의 후비로 삼을 것, 한반도의 남부 4도를 내줄 것, 감합 무역을 부활할 것, 조선 왕자 및 대신 12명을 인질로 삼을 것 인데,

본문에서 언급하는 바만으로 일본의 경제력이 낙후되었다 라고 보기는 힘든 이야기입니다, 가령 감합무역 즉 조공 무역의 경우는 중국은 동북아시아의 질서의 패권자로서의 위치를 확인하고 주변국은 이를 통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인데,

말씀대로라면 우리도 경제력이 낙후된것을 애기하는 것이며, 논리적으로 볼때 일본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그만 그만한 국가라는 애기가 되며,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일본보다 낫은 상황이 궤변으로 성립하게 됩니다.

한반도 남부 4도의 할양은 곡창으로서의 역할 즉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지리학적 위치로서 요충지로서의 가치도 있지요,

직조물의 판매가 한반도 상권 장악이라고 하시는데, 애초에 원시적인 물물 교환에 그치는게 조선의 경제입니다, 상권의 몰락 이런것 보다는 자본주의 시각에서 보는게 더 합리적인 문제이겠지요,

끝으로 일본인 학자들이 통계를 냈다 라고 하는데 어느 학자이고 어떤 논문이나 사설인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142 2012-07-22 21:33:15 5/9
아래 일본의 찬양하는 종자들을 위한 글 [새창]
2012/07/22 21:05:44
간단하게 몇자를 남겨보자면 고려의 경우 원나라의 외교적인 상황과 맞물려 사무역은 통일신라보다 쇠퇴했지만 공무역이 성행했습니다. 쌀의 생산량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문제이죠,

또 문화 경제 기술적으로 발전을 폭팔시켰다는 원나라 헤게모니는 뭘 말하는건가요?

그리고 조선의 경우는 국가의 가치관이자 뿌리인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이상적인 사회상에 근거하여 상업을 천시한것입니다, 조공무역으로 필요성이 채워졌기에 안한게 아니라 말이죠,

정유 재란의 협상은 일본은 명나라 황녀를 일본의 후비로 삼을 것, 한반도의 남부 4도를 내줄 것, 감합 무역을 부활할 것, 조선 왕자 및 대신 12명을 인질로 삼을 것 인데,

본문에서 언급하는 바만으로 일본의 경제력이 낙후되었다 라고 보기는 힘든 이야기입니다, 가령 감합무역 즉 조공 무역의 경우는 중국은 동북아시아의 질서의 패권자로서의 위치를 확인하고 주변국은 이를 통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인데,

말씀대로라면 우리도 경제력이 낙후된것을 애기하는 것이며, 논리적으로 볼때 일본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그만 그만한 국가라는 애기가 되며,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일본보다 낫은 상황이 궤변으로 성립하게 됩니다.

한반도 남부 4도의 할양은 곡창으로서의 역할 즉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지리학적 위치로서 요충지로서의 가치도 있지요,

직조물의 판매가 한반도 상권 장악이라고 하시는데, 애초에 원시적인 물물 교환에 그치는게 조선의 경제입니다, 상권의 몰락 이런것 보다는 자본주의 시각에서 보는게 더 합리적인 문제이겠지요,

끝으로 일본인 학자들이 통계를 냈다 라고 하는데 어느 학자이고 어떤 논문이나 사설인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141 2012-07-22 20:26:01 0
근래에 읽은 일본역사에 관련된 책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책. [새창]
2012/07/22 18:07:39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만주 벌판은 다채로운 지형이 어우러진 땅입니다. 둥베이 평원과 같은 중국 최대의 평야 지역은 물론 큰 강이 흐르고, 또 산림이 끝없이 펼쳐져 있기도 하며, 늪지도 상당히 많습니다, 또한 평균 해발 1.900m를 아우르는 산맥들도 있지요,

역대 한반도의 왕조에서 만주 지역을 노리지 않은것은 가지고 있는 국력의 한계 때문입니다, 당장 영토를 넒혀 봐야 유지 관리도 안되는 땅을 굳이 탐하여 다른 국가와 이 경우는 대개 중국의 강대한 왕조들로 그 들과 마찰을 빚어 국운을 어지럽힐 까닭이 없었죠,
140 2012-07-22 20:22:38 0
근래에 읽은 일본역사에 관련된 책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책. [새창]
2012/07/22 18:07:39
랴오닝성 즉 요동성을 기준으로 볼때 중국 전체에서 전국 매장량 순위 1~5위를 차지고 하고 있는 광물이 꽤 있습니다만, 현재의 기술 발달 등으로 얻은 결과도 많을뿐 더러 오랜 기간 탐사를 해온 산물로 당시에도 풍부한 산출량을 가진 지역이었지만 대국인 중국과 마찰을 빚어가며 요동성을 얻을 필요성은 못 느꼈지요,

북한의 경우 철의 매장량은 304조 철광석의 생산량은 46만, 마그네사이트의 매장량은 2680조에 달하며 금은 61조의 매장량 즉 경제가치를 가지고 있을정도로 한반도에서 매우 풍부한 경제 자원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술 발달로 찾아낸 바도 있습니다만 당시도 굳이 대국과 마찰을 빚어가며 무모한 행동을 취할 까닭을 못느낄 정도로 은과 금, 철의 산출은 당시 정부 기준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의 인삼무역이 절정을 이룬것은 17세기로, 다만 일본이 계속되는 수입량을 못버티고 인삼 국산화에 목숨 아니 국운을 걸어서 1700년경에 조선의 인삼을 국산재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로 조선으로 부터의 인삼 수입이 줄어들었습니다,
139 2012-07-22 17:12:33 0
[새창]
여러 모로 조지 3세의 혜안이 아쉬웠던 부분으로 역사에는 if가 없다지만 만일 대륙 의회의 초기 요구가 수용되었다면 지금 아메리카는 프랑스와 스페인등의 식민지가 공존하는 영연방으로 남아 있을수 있었겠지요,
138 2012-07-22 09:52:06 18
조선 세종 11년 일본을 다녀온 사신의 보고서 (약간 충격) [새창]
2012/07/22 19:21:05
일단 조선의 경우 물물교환 수준의 원시적인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인력 중심의 농업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상이 국가의 가치관이라, 사실상 공업이 발달할 여지도 없었죠,

그리고 목욕이 나와서 애기 합니다만, 목욕을 자주한것은 솔직히 아닙니다,

단오제와 같은 풍습을 들여다 보면 1년에 몇차례 있는 세척(?) 행사 라는 점을 알수가 있죠, 향수의 발달을 이야기 하시는데, 음 이거 우리가 깨끗해서 발달을 안한것이 아닙니다. 기술적인 문제와 인습적인 문제로 사향이나 갓 꺾은 꽃 혹은 풀 등으로 머무른 것 뿐이죠,

쉽게 말해 꽃을 정제하여 진액을 담아낼 제반 기술이 전무했고 사치를 멀리하는 인습으로 개발할 가능성도 떨어졌으며 주자학적 질서의 강제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되도록 안씻게 되었다 라는겁니다.

일본의 경우 기후적인 문제로 조선보다 위생이 강조되었습니다. 유학이 국가적 가치관도 아니었죠,

더불어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서양은 굉장히 위생적인 습관을 강조했습니다,

생선기름이나 양기름 같은걸로 비누도 만들어 썻고 나중에 되선 거기에 꽃잎 따서 넣고 향기도 추가했죠, 또 기름으로 머리 빗고 기름으로 닦아내고 하는게 일반적인 사는 집의 풍습이었습니다.

다만 이후의 제직 기술의 발달로 덜 빨아도 괜찮은 질 좋은 천이 나왔고 종교의 문제 즉 간단하게 사람은 외면 보다는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사유로 쇠퇴하게 되었죠,
137 2012-07-22 09:52:06 1
조선 세종 11년 일본을 다녀온 사신의 보고서 (약간 충격) [새창]
2012/07/22 01:12:15
일단 조선의 경우 물물교환 수준의 원시적인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인력 중심의 농업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상이 국가의 가치관이라, 사실상 공업이 발달할 여지도 없었죠,

그리고 목욕이 나와서 애기 합니다만, 목욕을 자주한것은 솔직히 아닙니다,

단오제와 같은 풍습을 들여다 보면 1년에 몇차례 있는 세척(?) 행사 라는 점을 알수가 있죠, 향수의 발달을 이야기 하시는데, 음 이거 우리가 깨끗해서 발달을 안한것이 아닙니다. 기술적인 문제와 인습적인 문제로 사향이나 갓 꺾은 꽃 혹은 풀 등으로 머무른 것 뿐이죠,

쉽게 말해 꽃을 정제하여 진액을 담아낼 제반 기술이 전무했고 사치를 멀리하는 인습으로 개발할 가능성도 떨어졌으며 주자학적 질서의 강제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되도록 안씻게 되었다 라는겁니다.

일본의 경우 기후적인 문제로 조선보다 위생이 강조되었습니다. 유학이 국가적 가치관도 아니었죠,

더불어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서양은 굉장히 위생적인 습관을 강조했습니다,

생선기름이나 양기름 같은걸로 비누도 만들어 썻고 나중에 되선 거기에 꽃잎 따서 넣고 향기도 추가했죠, 또 기름으로 머리 빗고 기름으로 닦아내고 하는게 일반적인 사는 집의 풍습이었습니다.

다만 이후의 제직 기술의 발달로 덜 빨아도 괜찮은 질 좋은 천이 나왔고 종교의 문제 즉 간단하게 사람은 외면 보다는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사유로 쇠퇴하게 되었죠,
136 2012-07-21 23:15:51 0
판문점에는 태극기가 없다. [새창]
2012/07/21 22:52:39
당시 정전협상 당시 주체는 유엔 연합군 측과 북한 이었으니 정전 협정 조인장에는 태극기가 없지요,

쉽게 말해 태극기를 정전협정 조인장에 넣고자 한다면 당시 정전 협상의 대상인 유엔 연합군 전 국가의 국기를 늘어놓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음 그리고 본문을 보면 판문점에 태극기가 없다 라고 하지만 있습니다, 가령 2002년에 북한 병사가 판문점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파손시켜 문제가 일어난 적이 있었지요,
135 2012-07-21 21:37:34 0
대 청을 위협하는 남중국 해적 (1) 그들의 바다, 남중국해 [새창]
2012/07/21 09:02:45
뭐 그렇다 해도 간단하게 그림 몇개 넣고 볼드 처리 하는 정도라면 이전 보다는 쉽더군요; 배경색에 신경써서 작성하고,

html 태그를 포기하면 딱히 서버의 문제가 아니라면야 오류 걱정할 일도 없고 말입니다. 뭐 이전글 불러오기는 없는셈 치면 되고 말이죠,
134 2012-07-21 21:36:06 0
대 청을 위협하는 남중국 해적 (1) 그들의 바다, 남중국해 [새창]
2012/07/21 09:02:45

몇차례 글을 작성하며 느낀 점인데, 많이는 아니고 자잘한 부분에서 불편이 있습니다.

가령 간단하게 글자에 편하게 효과를 준다거나 그림을 원하는 곳에 이전의 방식보다 많이 넣을수 있는 등의 편의는 있습니다만,

붙여넣기를 했다면 그것이 문서 프로그램이든 홈페이지 든 간에 글자 배경색이 동떨어지는 문제인데 이 경우는 흰색으로 글자 배경을 잡아도 자세히 보면 동떨어져 보이더군요;

그 밖에 정상적인 html 태그의 인식 오류 문제, html 태그를 적용하고 글을 썼을때 글의 문단이나 띄어쓰기의 무시나 글의 절단, 글과 그림의 혼재, 동영상 태그의 인식 문제나 이전 글 방식으로 작성을 했다면 그 이후에 다시 새로운 글 쓰기 방식으로 수정해야 하는 등의 자잘한 부분의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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