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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2014-03-12 20:51:47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그러니까 음 제가 오해를 하게 글을 적은 것 같은데,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바투가 몽케의 정당성을 언급할때

"칭기스 칸 가문의 일족 가운데 확고한 생각과 올바른 견해로 나라와 군대를 장악할수 있는 사람인 뭉케 칸, 칭기스 칸의 막내 아들이자 그의 대목지를 소유하고 있는 나의 좋은 숙부 툴루이 칸의 아들, 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왕자가 있는가? 야사의 법령과 초원의 법칙에 따르자면 부친의 자리는 막내 아들의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을 살펴볼때 군주의 자리는 뭉케의 자리이다"

라고 한 것 처럼 말이지요, 다만 테무게 옷치긴이라는 인물의 경우는 그의 분봉이나, 당시 그의 위치 그러니까 황금 씨족의 최 연장자 라는 것 등 여러 측면에서 쿠릴타이의 정당성을 요구할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계승 원칙은 사실이나 형제간의 계승 원칙은 당대의 대칸들의 형제나 자식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겠지요.
507 2014-03-12 20:43:53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보통은 그렇게 될수가 없습니다, 옷치긴이라는 것도 하나의 별칭인데, 사실상 말자 상속 원칙은 부모 공양이 근간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잇는 것은 다른 형제들의 몫이지요;
506 2014-03-12 20:43:15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그리고 옷치긴의 죽음은 사실상 알수가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추정만 할뿐인데, 대강 이렇습니다, 황금 씨족 최고 연장자인 옷치긴의 쿠릴타이의 참가와 구육 칸에 대한 지지는 바투의 불참으로 인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던 투레게네 카툰에게 힘을 실어 줬음은 분명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일전에 대 칸의 자리에 무력으로 도전했던 옷치긴의 전력은 예전에 우구데이를 대 칸의 자리에 올렸던 동방 왕가의 수장으로서 옷치긴이 가졌던 그러한 상징성을 상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구육 칸의 즉위식에서는 주치 가의 오르다와 차카타이 가의 예수 몽케가 일전에 옷치긴이 우구데이를 이끌고 그러했듯 구육을 인도하여 대 칸의 자리에 앉게 만듬으로서 옷치긴의 역할을 대신 했던 것에서 이러한 그의 명분적 상징적 약화는 여실히 보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1246년 3차 쿠릴타이 이후 진행된 옷치긴의 군사행동에 대한 심문은 대체적으로 바투와의 대립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라 옷치긴 가문을 직접적으로 징계한다기 보다는 그 들과의 불화를 다스리는 수준에서 진행되었으리라 짐작해볼수 있습니다,
505 2014-03-12 20:40:24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테무게 옷치긴의 대권?에 대한 도전은 사실 우구데이 칸 사후에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찍이 칭 기스칸의 치세에도 7년간 제국을 경영했던 경험상 대권을 탐낼 여지는 충분하며, 무엇보다 우구데이 칸 시절 옷치긴 가문의 땅에서 여자를 수탈한 일이 있습니다, 짤 없이 이건 얼굴에 대놓고 침을 뱉고 모욕을 한 것이나 다름 없기에 일어설만 하지요. 문제는 그러한 대권의 도전의 전제 조건은 쿠릴타이가 열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즉 말자 상속 원칙에 따른 재산 분할이외의 사실상의 계승 권한이 전무 했던 상황이나 계승 우선 순위에서 밀려있던 것을 감안할때 구태여 구육과 더 나아가서는 모든 올루스의 제왕들이 모인 쿠릴타이와 대립할 필요가 없었지요.
504 2014-03-12 20:01:19 1
자꾸 역게에 집착하시는 일1베충에게 알리는 말씀 [새창]
2014/03/12 19:51:32
확실하게 관에 못질하는 링크네요, 더 이상 변명은 통하지 않겠습니다, 이제껏 통하지도 않았지만 말이지요.
503 2014-03-12 19:57:07 1
자꾸 역게에 집착하시는 일1베충에게 알리는 말씀 [새창]
2014/03/12 19:51:32
최소한 글은 좀 수정하고 올리던가, 배척당할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저리도 뭘 믿고 당당하게 행동하시는지 왜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시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502 2014-03-12 19:55:22 1
자꾸 역게에 집착하시는 일1베충에게 알리는 말씀 [새창]
2014/03/12 19:51:32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요? 위기에 몰린 타조라고 해야할까 참 난감할 정도네요.
501 2014-03-12 19:54:26 0
[새창]
일베 게이들아 운운해도 일베에서 온 분은 아니지요? 에휴 이것 참 뭐라고 해야할지 말이 안나오네요.;
500 2014-03-12 19:47:09 0
반대 3개만 받아도 글이 삭제되버리네요 ㅎ [새창]
2014/03/12 19:35:58
일베 덕분에 애먼 사람들만 피해를 입네요;
499 2014-03-12 19:44:34 0
[새창]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498 2014-03-12 19:37:46 2
9천년전의 돌가면.. [새창]
2014/03/12 19:27:28
석가면을 보고 자연스럽게 흡혈귀, 그러니까 죠죠에서의 독일 처럼 새로운 전략 무기를 양성하려는 이스라엘 정부를 생각하다니, 만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입니다.;
497 2014-03-12 19:35:19 0
[새창]
*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496 2014-03-12 19:34:37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 1 [새창]
2014/03/12 19:19:27
말 그대로 능력이 아니라 정치적인 배려를 우선시 했기에 원나라 시기까지 줄곧 목안의 가시와 같았던 아수라장이 펼쳐진 셈이랄까요.
495 2014-03-12 19:33:03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 1 [새창]
2014/03/12 19:19:27
이제 여기서 톨루이가 칭기스 칸의 명령에 복종하여 형인 우구데이 곁에서 조력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겠다 약속하여 1차 계승 논쟁은 일단락 되기는 했습니다만 물론 능력만 본다면 당연히 대칸의 자리를 계승할 이는 우구데이가 아니라 톨루이였습니다, 항상 아버지 곁에 머물며 중국에 대한 원정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뽐냈으니 말이지요, 그러나 그 냉혹하고 잔인한 성품에서 칭기스 칸이 우구데이에게 바랬듯이 몽골의 전통을 잘 수호하리라 바라는 것은 무척 어렵다 판단했던것 같습니다, 결국 호의적이고 타협적이며 관대했던 우구데이가 차기 칸위 계승권자로 낙점되었지요.

즉 엄밀히 말하자면 칭기스칸은 주치를 장자로 다시금 인정하려 했으나 차카타이가 출생이라는 최대의 약점을 끄집어내어 주치의 발목을 잡음으로서 주치가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났다고 볼수 있지만 생각해보건데 후계구도의 안정을 바랬지만 오히려 시쳇말로 개판 오분전으로 번졌기때문으로 이는 몽골 제국 전체의 분열로 번질수 있기에 황금씨족 내부의 단결을 중요시 하는 정치적 배려에서 그나마 성격이 괜찮았던? 우구데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우구데이는 황금씨족의 불화를 결코 멈출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집사에 주치에 대한 부분을 보자면 내용중 한 곳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그의 형제들 차카타이와 우구데이 사이에서는 항상 반목과 불화 다툼이 벌어졌고 --- 때문에 그와 툴루이 칸 및 툴루이의 일족 이 양측은 서로 일치 단결의 길을 걸었으며, 그들은 결코 비난하는 일이 없었고 그의 출생의 건전함을 인정했다'

위 기사중 ---는 주치가 메르키트 인임을 기술하지 않고 비워둔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 기술을 통해 톨루이는 차카타이나 우구데이에 비하여 주치의 출생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혐오하지 않았음을 알수 있는데 여기에 더하여 주치의 처인 백투드미쉬 푸진과 톨루이의 처인 소르칵타니 베키는 케레이트 부 옹칸의 동생인 자카 감부의 딸들로 자매사이였기때문에 차카타이와 우구데이로 부터 따돌림당해 제외된 톨루이와 역시 곤궁한 처지였던 주치의 우호 관계는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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