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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2014-03-12 23:04:35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나와서는 안된다는게 그를 말리라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은 답글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그는 명분이 없습니다, 자격만 있을뿐이지요.

만일 우구데이 칸이 그의 권위를 짓밟지 않았다면 그가 나올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있기야 하지요, 네 칭기스칸 재위 시절 7년간의 통치 경험이나 오만함 말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급박하게 나올 이유는 아닙니다, 그건 누구보다 옷치긴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우구데이의 즉위 과정에서 이미 엿보이고 있습니다.
522 2014-03-12 22:48:37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네 무대에 나왔지요, 그러나 그는 무대에 나올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가 무대에 나온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자격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가 나오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지나버렸기에 자격은 있을지 모르나 명분이 없었다는 겁니다.
521 2014-03-12 22:16:05 0
GwangGaeTo님 역게가이드 수정해 보았습니다.(1차수정본) [새창]
2014/03/12 21:56:07
흠..참 이거 골치 아픈 문제이기는 하네요,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싫다, 말하지 못하게 하는것도 싫다, 말하는 것도 싫다, 대화도 싫다. 그럼 뭐 어쩌자는 건지 말입니다.;
520 2014-03-12 22:13:45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내용을 조금씩 빼놓으셨네요,

황금씨족은 칭 기스칸의 유지를 받들었고 그 유지라는 것은 우구데이를 대칸의 자리에 추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구데이의 자격을 놓고 쿠릴타이가 열릴 당시를 전후하여 옷치긴이 황금 씨족의 일원으로 칭 기스칸의 유지에 대하여 반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볼수 있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구데이의 즉위식 당시의 모습을 볼때 옷치긴은 우구데이의 가장 큰 지원자이자 정치적 파트너 였습니다.

그러나 우구데이는 그의 재위 시절 옷치긴에게 더할 나위없는 최악의 행동을 저질렀지요.

옷치긴에 대한 당대의 인식은 2세대나 차이가 나는 이로서 대칸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은 있을지 모르되 무대에 나올수 없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네 이 것은 사실이지요, 여기서 해석을 어찌하느냐에 대하여 여러 말이 나올수 있으나 단적으로 그가 군사적으로 당대의 명분을 취했다 한들 다른 황금씨족들이 그를 용인할수 있었겠느냐 하면 그 것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옷치긴이 군사행동을 취할 당시의 상황을 보면 우구데이 칸이 죽고 그의 자리를 대신할 그의 아내도 죽었습니다, 다른 올루스의 군주들은 서방 원정을 떠나가 있었지요, 즉 어떠한 황금 씨족이나 제국 내의 귀족들의 지지를 염두한 행동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가 황금 씨족에 대하여 어떠한 포용 정책이나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한 상황속에서 대칸의 자리를 얻고 그 것을 쿠릴타이에서 인정받을수 있었는가를 생각한다면 불가능합니다.
519 2014-03-12 22:05:26 2
GwangGaeTo님 역게가이드 수정해 보았습니다.(1차수정본) [새창]
2014/03/12 21:56:07
건의를 받아들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음 아무튼 이제 저 글 들을 비릇한 가이드 라인 자체를 어떻게 찬 반 양측의 의견을 잘 조합해서 최대한 불만을 줄이고 작성하느냐이겠군요.

이번에는 소위 말하는 닥반러 분들도 아무쪼록 잘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518 2014-03-12 21:59:23 1
GwangGaeTo님 역게가이드 수정해 보았습니다.(1차수정본) [새창]
2014/03/12 21:56:07
한국의 일본국 원류설은 기마 민족 주체설이 어떨까요?

이 부분을 보자면 이후에 식민 사학이나 넒게 보자면 투라니즘과도 연결이 되기는 합니다만 어쨌거나 그 근간은 중앙 아시아를 건너온 기마 민족들에 의하여 한반도와 일본 등의 문명이 건립되고 또 기술이 발전되었다는 내용이 주축이니 말입니다,
517 2014-03-12 21:55:32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그리고 이건 좀 재밌는 부분인데, 구육 칸의 즉위식에서 오르다와 몽케가 옷치긴을 이끌고 칸의 자리에 앉혔지요, 네 차카타이의 예수 몽케 말입니다.

은근히 이름이 겹치는게 많아서 참 헷갈리기는 합니다,
516 2014-03-12 21:51:29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아 그리고 첨언을 하자면 물론 아시겠지만 몽케의 세력이 미약한 탓도 있습니다, 말씀대로 그러했기에 바투가 몽케를 지지한 것이기도 하지요.;
515 2014-03-12 21:47:40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우구데이에게 칸위가 넘어갔을때 대 올루스와 제국의 군대를 총괄하는 톨루이가 별다른 행동을 취할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한게, 하루 이틀 어쨌거나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았지만 손을 잡고 연합 전선을 펼치고 있던 주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력이 위축된 상황에서 우구데이와 차카타이의 압력을 버텨낼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율초재의 건의를 받아들여 쿠릴타이를 개최하였고, 이 자리에서 주치 가의 바투의 발언 대로 톨루이 역시 계승 자격을 피력하였지만 결국 칭 기스칸의 유지를 받들어 우구데이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 불안한 상황은 톨루이의 사망과 옷치긴을 중심으로 한 황금 씨족의 균형이 우구데이로 기울었기에 우구데이에게 유리하게 유지될수 있었습니다.

구육의 경우에도 쿠릴타이에서 바투가 불참하여 오명을 입었으나 옷치긴을 비릇하여 황금 씨족의 지지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시 아시겠지만 황금 씨족의 지지입니다, 그 것이 없는 이상 사실상 대칸의 자리를 노리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지요, 말씀대로 아직 때가 아니라 참았고, 때가 왔다 하여 경솔하게 일어섰다는 주장의 논거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그는 충분한 자격 조건이 있었습니다, 네 그런데 그 것을 왜 표출하지 못했을까요? 왜 쿠릴타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군사 행동을 하여 그나마 남은 명분과 이미지를 버렸을까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원칙과는 별개로 그에게는 명분이 없었으니까요, 그는 다른 세대의 인물로 지원자로 남아있을지언정 어린 세대를 누르고 대칸에 오를 명분이 없습니다, 이미 칭 기스칸의 유지는 우구데이에게 있었고, 그 다음 세대역시 대칸의 유지는 그와는 달랐으며 명분또한 다릅니다.

이건 간단하게 사료에 입증되는 사실들로 충분하게 추론이 가능한 내용들로서 단순한 원칙 하나를 들고 대칸의 자리를 노릴수 없었던 일이며 이는 앞서 우구데이나 몽케, 구육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지요.
514 2014-03-12 21:24:13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그러니까 그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원칙이 있다 해서 이루어지거나 가능성이 있는게 아닌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가령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우구데이 칸의 즉위식이 열리기 전 그는 충분히 자신의 입지를 내세울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칭 기스칸의 유언이 명분이라 그러했다지만 사실 언급하셨듯이 그의 입지가 작은게 아니지요, 즉위식에서 허리띠를 잡고 이끌었듯 황금 씨족의 중추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왜 하지 않고 우구데이 칸의 후원자가 되었을까요?

간단합니다, 이 원칙이라는 것은 세대를 넘어갈수록 사실상 명분만 남아있고 효력은 떨어져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옷치긴이 우구데이 사후에 군대를 이끌고 온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쿠릴타이가 열릴경우 대칸의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일때 그는 자격은 있으되 지지는 얻기 힘든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사실 그러한 군사 행동 이면에는 우구데이 칸이 그의 면상에 침을 뱉고 권위를 짓밟은 사건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가 군사행동을 통해 당대의 명분을 얻지 못한다면 대칸의 자리를 얻을수 없는 현실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요.
513 2014-03-12 21:11:14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그러니까 음 제 말은 말입니다, 방계 상속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대가 2번이나 바뀐 상황입니다, 쿠릴타이로서는 옷치긴이 받은 모욕이나 본디 가지고 있던 야망으로서는 대 칸의 자리에 오를수 없었고, 남은 방법은 군사 행동이나 사실상 기회가 없었지요, 그 동안 쌓아온 이미지나 명분 등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빈틈이 생겼고, 그로 인하여 군사행동을 벌였지요, 뭐 실패는 했습니다만 요컨데 방계 상속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우구데이의 후원자가 옷치긴이었던 것처럼 세대가 바뀐 상황에서 옷치긴이 원칙을 준수하여 대칸의 자리를 노리기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어찌보면 상기의 표현은 립서비스에 가까운 것이 사료를 본다면

첫째로 몽골비사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카타이, 바투를 비릇한 우익의 아들들, 옷치긴 노얀, 예쿠, 이숭게를 비릇한 좌익의 아들들, 톨루이를 비릇한 본영의 아들들, 딸들, 부마들, 만호, 천호들이 무리가 되어 케룰렌의 쿠데우 아랄에서 모두 모여 칭기스 칸이 지명한 그 분부대로 우구데이 칸을 추대했다.

두번째로 집사이고

차카타이는 우구데이 칸의 오른팔을 잡고, 톨루이는 그의 왼팔을, 숙부 옷치긴은 그의 혁대를 잡고 칸의 자리에 앉혔다. 툴루이 칸은 술잔을 받쳐들었다. 천막 안과 밖에 있던 모든 참석자들은 아홉 번 무릅을 끓고 "그의 칸위로 말미암아 왕국에 축복있으라!!" 고 말하고 그에게 칸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세번째로 세계 정복자의 역사(세계정복자사) 입니다.

차카타이는 그의 오른손을 옷치긴은 그의 왼손을 잡고 오랜 회의의 결정과 어린 사람의 행운에 대한 지지로서 그를 칸의 자리에 추대했다. 올루그 노얀은 잔을 들고 궁전 안과 밖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세번 무릅을 끓고 "그의 칸위로 말미암아 제국에 번영 있으라"고 기도하며 외쳤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세계정복자사에서 옷치긴은 우구데이의 왼손을 잡고 있으므로 좌익을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우구데이 칸의 즉위에 대하여 찬성과 지원을 약속하고 있으며 집사에서도 옷치긴은 우구데이의 허리띠를 잡음으로서 황금씨족 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즉 우구데이나 옷치긴이나 서로간에 공통적으로 옷치긴이 대칸의 자리를 가질수 있다는 사실이나 위협이라는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장 강력한 정치 파트너이자 후원자로서의 사실만이 존재하고 있지요.
512 2014-03-12 20:58:16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가장 결정적인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아시겠지만 본문에서 언급하였듯이 옷치긴이 군사 행동을 일으켰을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투레게네 카툰은 사신을 보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저는 당신의 子婦이고 당신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온 군대는 무엇입니까? 온 올루스와 몽골 제국의 군대가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라고 했는데 여기서 子婦 그러니까 아들 아내 혹은 아들 부인라는 표현은 몽골은 세대별로 父 子 孫 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우구데이의 처 투레게네 카툰은 세대별로 볼때 子에 해당되는 이의 아내가 됩니다,

이는 달리 말해 다음 칸의 자리에 오를 이에게 옷치긴은 祖父에 해당 되므로 이제 2세대나 지난 옷치긴이 나올 무대가 아님을 인식하려는 의도가 있다 라고도 할수 있으며 당대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도 말하고 있지요.

따라서 옷치긴이 방계상속 원칙을 이유로 나왔으리라 보기는 어렵다고 말하는데, 필력이 부족해서 이야기가 좀 두서 없이 오해를 하게 만들었네요;
509 2014-03-12 20:53:02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가령 집사나 기타 당대의 사료를 보면 옷치긴의 역할이 여실히 들어나는데, 그 것은 후원자이자 황금 씨족 내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경쟁자들과 다르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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