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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2014-03-13 19:32:3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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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고 반박해서 해결되면 모두가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분쟁과 트롤링, 어그로가 난무하는 진흙탕만이 가득합니다, 아니 그 이전에 황당한 이야기를 들고 오는 분들의 자세는 어떨까요? 토론이나 배움을 원할까요? 아니면 배척과 트롤링만을 원할까요?

불행하게도 열에 아홉은 이러한 상황에 봉착하기에 가장 효과적이고 간단한 해결책으로서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토론하고 논쟁 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제파 전술 처럼 끊임 없이 같은 논리 같은 주장 같은 내용으로 밀고들어오는 상대에게 얼마나 더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요?

각자의 의견 피력하는 것, 좋습니다, 네 자유가 중요한것은 사실이나 그 것은 방종이 아닙니다, 최소한 타인에게 피해는 끼치지 말아야지요.
536 2014-03-13 19:03:33 1
What If? 미드웨이 해전 [새창]
2014/03/13 18:46:12
어쨌거나 미국은 아니 그 생산량은 정말 답이 없지요, 항공모함과 전차, 항공기 등이 주간 단위로 그냥 많이 만들어서 많이 끊어나오는데, 우랄 산맥 저편의 비밀 공장을 가지고 있는 소련도 불가능한 위엄일수 밖에 없습니다.

대체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해질수 밖에 없지요;
535 2014-03-13 18:58:11 0
GwangGaeTo님과 제 수정본을 합쳤습니다. (통합본) [새창]
2014/03/13 16:55:56
일단 간략하게? 줄여보았는데, 좀 난잡하기는 하네요;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4631&s_no=14631&page=1

결론 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연구된 바를 살펴볼때 홍산 문명과 우리는 어떠한 연관도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하가점 상층 문화일때는 산융이나 선비 거란과 같은 유목 민족들의 터전이었고 하가점 하층 문화일때는 정주민족이던 이 들의 터전이었는데 이 들과 한국사를 연계시키기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이 이 지역에 한때나마 거주하며 활동했음을 입증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인데 일단 문헌 사학쪽으로는 불가능한게 당연한게 문헌이 전무하지요.

그렇다면 고고학적으로는 어떠한가를 보자면 가령 옥제 장신구들의 경우 우리만의 무언가는 절대로 아닙니다, 가까이는 일본 멀리는 러시아 까지 동북아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유물이며, 곰이나 용의 모양을 한 가공품들의 형상 역시 토테미즘의 성격상 전 세계에 걸쳐 발굴되는 형상이지요, 마찬가지로 상투를 튼 모양의 남성 상의 경우도 중국에서도 상투를 틀었다는 아니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상투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빗살무늬 역시 그렇습니다, 최초로 발견된 곳도 유럽이고 최초의 학술명이나 연구 성과 역시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폴란드 독일 스웨덴 러시아 중국 일본 등등 빗살 무늬 토기의 출토지는 그 만큼 많지만 우리가 이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안에서 우리의 문화권을 한정 짓는것은 그 안에서 우리와의 명백한 관련성을 찾았고 입증할수 있었기 때문일뿐이지 우리의 문화권 내에서만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된게 결코 아닙니다, 무엇보다 홍산문명에서 발굴된 채문 토기와 협사회도는 우리가 빗살무늬 토기라 부르는 즐문토기와는 다릅니다.

건축 양식 역시 우리와 중국이 전혀 다른 양식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기에 증거가 될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홍산 문명간의 관련성이 부정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할수 있고, 인구이동과 문화 전파라는 고고학적 난제를 해결할수 있는 유전자 인류학과 체질인류학에 있어서 우리의 조상뻘되는 민족은 요서지역에서 홍산 문화를 건설했던 집단과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서지역에서 출토된 인골은 고동북 유형 그리고 고화북 유형 끝으로 고몽고고원유형의 순서로 그 중 고동북유형으로 지칭되는 집단중에서 한국인의 선조뻘되는 집단과 연계시켜 볼만한게 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신석기 단계와 청동기 초기 단계에서 이미 이 들 요서와 요동 및 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는 상당한 터라 요서의 홍산문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홍산문명은 황화 문명과의 연관성부터 신러 문화나 자오바오거우 문화등에서 볼수 있듯이 황화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여러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아직까지 연구 성과는 갑론 을박인게 사실입니다.

물론 중국 정부의 이념적 개입이 우세한것 역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만 여기서 중요한것은 확실하게 고고학적으로나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볼때 우리와는 관련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영토 중심의 사관 정리 사업인 동북공정에 대하여 홍산문명이 어떻든 현재로서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 밖에 볼수 없는 우리가 홍산문명에 대하여 뭐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지요,
533 2014-03-13 18:20:35 0
GwangGaeTo님과 제 수정본을 합쳤습니다. (통합본) [새창]
2014/03/13 16:55:56
확실히 따로 링크를 만드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 함축하여 그러니까 요약을 해서 붙이는 것도 괜찮겠네요, 아니면 간략한 소개와 링크로 만들던가 말입니다,

음 그런데 혹시 글자수 제한 같은게 있나요? 작성 할때 따로 주의해야 할 점이라던가 말입니다.
532 2014-03-13 18:17:42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명분이 있었다 그 애기는 옷치긴 한테나 가서 하세요, 지금 계속 설명 드리지 않습니까, 정말 모르시겠어요? 지금껏 본인이 하신말이 뭔지도 모르시나요?

자격 조건이요, 그게 명분을 줍니다, 하지만 우구데이의 사후 2세대나 지난 현실에서 그 자격 조건은 더 이상 명분이 되지 못한다구요,

말꼬리 잡기도 아니고 일부러 그러시는 건지 아닌지 참 까칠한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답답하네요, 지금 명분이 뭐냐고 물으시는 것은 뭘 위한 명분인지 모르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투레게네 카툰의 말을 권력욕으로만 단순하게 보는게 오히려 매우 괴상하게 보이시는것 아세요? 생각해보지요, 몽골 제국과 그 올루스를 통틀어 할아버지 뻘 되는 이가 손자들과 칸의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적이 있기는 합니까? 왜 그들이 손을 놓고 있었을까요? 힘이 없어서? 아니면 능력이 안되서?

당장 차카타이나 옷치긴등이 왜 우구데이와 톨루이의 경합에 같이 나서지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그 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531 2014-03-13 11:25:43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저도 이제는 뭘 이야기 하시는지 도저히 모르겠네요, 제가 언급하신 1번과 2번을 부정한 적이 있던가요?

그리고 쿠릴타이에서 경합이 없다 하시는데, 쿠릴타이가 뭔가요? 따지고 보면 의사합치기관입니다, 말씀대로 그러한 일을 하기에 앞서 경합이 없다 하시면 이건 좀 이해가 안되네요.

몇번을 말씀드리고 끝에 다시 설명드렸지만 말씀하신 자격이라는 것은 명분을 제공하는데 이는 당대의 혹은 가까운 세대에나 통용되는바, 옷치긴이 군사 행동을 일으킨 상황에서는 그러한 명분이 별다른 가치를 지니지 못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투레게네 카툰의 말은 말 그대로 그가 나설 무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권력욕? 물론 있었겠지요, 하지만 상황을 보세요, 사건만 가지고 말할게 아니라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보시면 간단한게, 그에게 명분이 있었다면 왜 대칸의 경합에 나서지 않았을까요? 왜 원정을 떠난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왜 구태여 대칸의 천막을 장악하려 했을까요?

옷치긴은 자격은 있으나 명분이 없습니다, 이미 그가 나설 자리는 없는게, 그 막강했던 차카타이가 왜 죽을때까지 우구데이의 후원자로만 남고 대칸에 도전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 들은 이미 몇세대전의 인물로 더 이상 그 들이 대 칸의 자리에 도전할 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역할은 보다 젊은 세대의 역할이지요.
530 2014-03-13 10:37:49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좀 두서가 없는 글인데 아무튼 그가 군사행동에 나선 이유는 크게 2가지로 가장 큰 이유는 우구데이 칸이 그의 땅에서 수탈 좀 심하게 말하자면 약탈을 한 것입니다, 이건 옷치긴의 권위를 짓밟고 면상에 침을 뱉는 최대의 모욕이라 봐도 다를게 없습니다, 두번째로 칭 기스칸 생전의 7년간의 제국 경영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칭 기스칸과 불화를 겪는등 진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물론 이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 한다면 역시 설명이 안되는 것은 쿠릴타이의 경합에 있어 단 한차례도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결과적으로 우구데이 칸의 실정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수 있겠지요.
529 2014-03-13 10:34:28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대칸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단순한 힘과 자격만이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위에서 언급하셨듯이 명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황금 씨족의 만장 일치 즉 쿠릴타이가 필수적인 전제 요소입니다.

옷치긴은 우구데이 사후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도 나이가 많기는 했지만 황금씨족의 최 연장자입니다, 당시의 평균 연령을 떠나 2세대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칭 기스칸의 막내동생이라는 자격은 그 대칸 대에서나 명분을 가지는 것이지, 현재의 우구데이 대칸 사후의 자리를 놓고 명분을 논할것이 못됩니다.

이건 단순히 투레게네 카툰이 권력을 탐내서 한 말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요.

이러한 상황은 주요한 올루스의 제왕들이 서방 원정을 떠나고, 우구데이 대칸과 그의 사후 자리를 받게되는 아내 마저 모두 죽었으며, 우구데이 가문의 최대의 조력자인 차카타이 마저 죽은 틈을 노려 칸의 오르두 즉 천막을 군사로 에워싸는 행동을 통해 입증되는데, 만일 그가 어떠한 대칸으로서의 자리에 오를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코 벌일수가 없는 일입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해보자면 몽골제국을 비릇한 여러 올루스에서 칸의 자리른 놓고 벌이는 경합에 있어 세대차가 얼마나 벌어지는지 잘 아실것입니다, 과연 2세대씩 차이가 나는 다른 여타의 인물들이 능력이 부족하거나 세력이 없거나 야심이 없어 그러한 경합이 나서지 않았을까요? 어쨌거나 대칸이라는 자리 역시 명분이 중요합니다, 좀 두서가 없었는데 원칙에서 볼수 있듯이 그 자격이라는것은 대저 세대차가 크게 나지 않을때나 명분을 줍니다.

옷치긴의 경우는 그냥 계승 순위에 가까운 정도이지 이 것을 가지고 여타의 대칸 경합에 나설 상황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했다면 왜 그는 단 한번도 쿠릴타이의 경합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까요?
528 2014-03-13 10:20:15 3/9
홍산 문명에 관한 두서 없는 이야기 입니다. [새창]
2014/03/12 23:01:34
울루랄라울루 님.. 그러니까 어떤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에는 곰 토템이 없다, 뭐 그런 말씀이신가요?

밝눈님.. 현재로서는 어떤 문명과 연관 되어 있는지, 독자적인 문명인지도 갑론 을박중입니다,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가깝다고해서 무조건 우리와 연관지어서 연구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 연구할게 있어야 연구를 하지요.

Nuke4japs님.. 보다 확실한 사례와 근거를 제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북 공정은 영토 중심의 사관 정리 사업입니다, 구태여 유물을 숨기고 부술 이유가 없지요.

구름낀날씨님.. 불통이라 주장하시기에 앞서 우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려님..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관련성이 없습니다, 현재까지는 말이지요,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중요한것은 지금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학계에서도 현재까지의 상황을 정리한바에 따라 우리와 관련성이 없다 한것은 왜일까요? 상식적인 가능성이 없기때문입니다. 유물 유적 하다못해 인골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관련성이 직접적으로 입증된바가 전혀 없는게 현실입니다.

오래된유머님.. 그러니까 저게 우리민족만의 고유한 무언가라는 증거가 뭔가요?

dong110.. 한국말이 서투르시면 영어로 해주세요.
527 2014-03-12 23:30:37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옷치긴이 군사 행동을 일으켰을때 투레게네 카툰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게 비단 이 아가씨만의 생각일까요? 제가 요모조모 살펴본게 아니라 사료에 그렇게 나와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가 자격과 명분 모두를 노릴 상황이라면 마땅히 쿠릴타이에서 결판을 내야지 독단적으로 당대의 명분을 취하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가 독단적인 군사 행동을 취한 것이 과연 명분이 있기에 한 행동일까요? 몽골 제국의 대칸들이 어떻게 자리에 오르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몇번을 말씀드리는데 그가 왕위 계승권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것을 들고 도전하기에는 명분이 없습니다, 이미 그가 등장하기에는 세대가 너무나 지나버린 상황입니다, 하기야 더 답글을 다시지 않는다고 하시니 뭐라 더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겠네요;
526 2014-03-12 23:20:33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아무튼 그렇습니다,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의견인데 왜 이리 이야기가 길어졌는지 잘 모르겠네요;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단 들어가 봐야 할것 같네요;
525 2014-03-12 23:15:55 0
몽골 초기 대칸 계승2 [새창]
2014/03/12 20:24:57
그러니까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중요한 건 그겁니다, 옷치긴에게는 자격이 있었으나 명분이 없습니다.

그저 기회가 와서 군사 행동에 나섰는데, 그 원인을 보자면 자격을 믿고 벌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길이 없습니다, 당장 황금씨족이 대부분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려 거병을 했을뿐이고 가장 가까운 시기의 불만이나 움직임을 설명할 근거는 우구데이 칸이 옷치긴의 땅에서 처녀를 수탈한 것 이외에는 없으니 말이지요.

그가 자격을 믿고 일어섰다면 그 자리를 모두가 자리를 비운 공석이 아니라 쿠릴타이입니다.
524 2014-03-12 23:12:49 2/4
역게 공지(가이드)에 대한 잡설 [새창]
2014/03/12 23:04:13
제가 처음 의견을 수렴했을때는 추천수는 비슷했지만 반대가 13?정도 나왔었지요, 어찌보면 필요성을 절감하시어 의견이 통합되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참 이게 당시에도 나왔지만 큰 문제이기는 합니다, 자유성 말이지요.

대저 유입 인구를 축소시킬것이다 부터 그러한 강제성을 띈 허들을 높일 필요가 있느냐 까지 일리가 있는 의견이라 특히나 설득이 어렵기도 합니다, 사실 그러하기에 특히나 여러 의견을 수렴하여 최대한 많은 것을 담을 필요가 있겠습니다만..닥반러분들을 보면 좀 답답하기는 하지요.

아무리 의견을 통합해도 불만 세력은 있기 마련이나 대화를 피하시니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사실 방법이라고 해야 하나밖에 없는게 사실이지요.

네 강제성 있는 집행 말입니다, 어찌되었건 공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 이후에 수정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의 의견을 다 담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최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지 모두의 의견을 담는 것은 현재의 닥반러 분들이나 기타 유사역사학에 찬동하시는 분들이 자리를 피하시는 이상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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