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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5 22: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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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1년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 조박(趙璞)이 토관(土官)의 제도를 계달(啓達)하였다. 계달(啓達)은 이러하였다.
“평양부 사(平壤府司)의 원수(元數)를 상고하니, 그 수가 6백여 명이나 녹(祿)을 받는 데 이릅니다. 그러므로, 근처 각 고을과 평양부의 외촌(外村)에 사는 백정(白丁)들까지 직임을 받기를 청탁하여, 군역(軍役)을 면하기를 꾀합니다. 그 중 직사(職事)가 없이 참칭(僭稱)하는 아문(衙門)으로서 혁거(革去)할 만한 것을 마련하여 다음에 기록합니다. 내부시(內府寺)가 도벽(塗壁)을 맡고, 내원시(內園寺)가 채원(菜園)을 맡고, 내주시(內廚寺)가 각아(各衙)의 반봉(飯奉)을 맡는데, 이상 세 아문(衙門)은 참람하게 경관(京官)의 내자(內字)에 비하였으니, 이름을 고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대흥부(大興部)·용덕부(龍德府)·용흥부(龍興府)·천덕부(川德部)·흥토부(興土部) 이상 5부는 호적을 맡으므로, 동·서·남·북 도감(都監)의 관원이 각각 4명, 동·서·남·북 성황 도감(城隍都監)의 관원 각각 4명, 도합 32명이 한가하게 놀고 녹(祿)을 먹으면서 군역(軍役)을 피하니, 미편(未便)합니다. 사면 도감(四面都監)과 사면 성황 도감(四面城隍都監)을 5부(部)에 합속(合屬)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아 그리고 조선 시대에도 행정 구역 남아있었는데 말입니다? 줄어들었다 보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