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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8 2015-02-15 22:45: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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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net... 예 그런데 말입니다, 답글 좀 읽으시는게 어떻습니까? 누차 말씀드리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게, 본문에 가져오신 내용이, 서경이라는 도시입니까? 아니면 행정구역입니까? 훈제 청어는 그만 던지시지요 (3)

그리고 말이지요, 조선 시대에도 고려시대의 행정구역은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말입니다,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줄어들었는지는 설명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3687 2015-02-15 22:42:33 0
일본군 항공 병과에 관한 간략한 정리 글 (추가) [새창]
2015/02/15 17:56:30
그런데 그 것도 보면 참 이래저래 머리 싸움이 아닐수 없다고 보입니다, 가령 재정난과 조약 준수 때문에 영국이 골머리를 썩을때 그 틈을 노리고 일본은 업그레이드와 신형함 건조에 열을 올렸으니 말이지요, 뭐 그래봐야 미국의 생산력과 기술 앞에서는 (......)
3686 2015-02-15 22:36:5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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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을 다는 사이에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럼 개경을 어디에 비정시키시려는 건가요? 말씀대로라면야 어디에 던져놔도 이상할게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위에 올린 것에서 볼수 있듯 외촌 즉 평양과 구분 짓고 있지요? 거기다 가져오신 논문은 어떻습니까?

심지어는 가져오신 고려 사절요도 성 주위에 병영을 배치하여 이를 핍박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의하였다. 라고 하지 않습니까,

근데 우리가 뭘 말하고 있었고 또 서경의 면적 축소의 논거로 뭘 본문에다 가져오셨지요?

게다가 지난 글에서는 철저하게 배후지의 모든 걸 부정하고 성 안의 인구와 면적 추산에만 골몰하시던 분께서 왜 갑자기 말을 바꾸시는지? 이래저래 참 이채롭기까지 하네요.
3685 2015-02-15 22:32: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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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1년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 조박(趙璞)이 토관(土官)의 제도를 계달(啓達)하였다. 계달(啓達)은 이러하였다.

“평양부 사(平壤府司)의 원수(元數)를 상고하니, 그 수가 6백여 명이나 녹(祿)을 받는 데 이릅니다. 그러므로, 근처 각 고을과 평양부의 외촌(外村)에 사는 백정(白丁)들까지 직임을 받기를 청탁하여, 군역(軍役)을 면하기를 꾀합니다. 그 중 직사(職事)가 없이 참칭(僭稱)하는 아문(衙門)으로서 혁거(革去)할 만한 것을 마련하여 다음에 기록합니다. 내부시(內府寺)가 도벽(塗壁)을 맡고, 내원시(內園寺)가 채원(菜園)을 맡고, 내주시(內廚寺)가 각아(各衙)의 반봉(飯奉)을 맡는데, 이상 세 아문(衙門)은 참람하게 경관(京官)의 내자(內字)에 비하였으니, 이름을 고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대흥부(大興部)·용덕부(龍德府)·용흥부(龍興府)·천덕부(川德部)·흥토부(興土部) 이상 5부는 호적을 맡으므로, 동·서·남·북 도감(都監)의 관원이 각각 4명, 동·서·남·북 성황 도감(城隍都監)의 관원 각각 4명, 도합 32명이 한가하게 놀고 녹(祿)을 먹으면서 군역(軍役)을 피하니, 미편(未便)합니다. 사면 도감(四面都監)과 사면 성황 도감(四面城隍都監)을 5부(部)에 합속(合屬)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아 그리고 조선 시대에도 행정 구역 남아있었는데 말입니다? 줄어들었다 보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
3684 2015-02-15 22:27: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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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글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본인이 줄 까지 치셨잖아요. '직할구역' 그리고 '경내와 근교'이 무슨 말일까요?

그리고 지금 자꾸 관할 구역을 서경의 면적 추산에 올리시는데 그 논리를 옮기면 말입니다, 조선시대의 평양은 평안도의 감영 소재지 이니까 평안도를 평양의 크기에 넣어야 된다는 말인데, 크기가 오히려 넒어지는데 말입니다?
3682 2015-02-15 22:24: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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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성에 시가지가 형성되지 않았다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훈제 청어 던지지 마세요 (2)

그리고 인구 추산시 배후지의 역학을 절대 부정하시던 분께서 이렇게 의견을 바꾸시는 걸 보니 참 이채롭기까지 하네요, 아 이번에는 면적 추산이니 상관없다 뭐 이런 말씀을 하고 싶으신건지?

아 그 걸 떠나 이미 본문은 논파가 된거기는 하네요, 답글에서 고려사절요를 인용하신 것 처럼 서경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쌓여 있고 배후가 산이 솟은 도시입니다, 그런데 그 게 조선 시대에는 두배가 줄었다고 하나 여전히 도시로서 기능을 가지고 있지요?

두배로 커진다면 지형이 바뀌었고 공사를 했다는 말인데, 관련 기록은요?

그걸 떠나 조선 시대의 배후지가 쇠락했다는 논거는 뭐가 있나요? 최소한 위에서 다른 분이 언급하셨듯이 인구 추산의 변동 상황을 통계 수치로 만든 자료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건 어디있지요?
3681 2015-02-15 22:17:2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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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오신 글 읽어보셨다면 아실텐데요? 읽어보시고 가져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관할 하는 구역이 5부 방리라는것이지, 서경의 크기가 5부 방리라는게 아닙니다,
3680 2015-02-15 22:12:56 0
일본군 항공 병과에 관한 간략한 정리 글 (추가) [새창]
2015/02/15 17:56:30
아무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정도의 비유가 어울릴 급성장이다 보니 이래 저래 러일 전쟁에서 스스로 체감했듯 미비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었습니다만 문제는 이 걸 고칠 이유나 고칠 능력, 자원 모두가 부족했지요.;
3679 2015-02-15 22:10:5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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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제 청어 던지지 마세요, 지금 말하는 내용은 개경의 5부와 서경의 5부가 다르다는 말이 아닙니다,

서경의 5부 방리는 가져오신 글 그대로 서경이 관할하는 행정 구역을 말하는 것이지, 서경 그 자체를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3678 2015-02-15 22:09: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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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가져오신 글을 읽어보세요, 서경이 관할하는, 직접적인 지배력이 관철되는 지배 구역은 이라고 되어 있지요?

이게 서경을 말하는 겁니까, 서경을 포함한 행정 구역을 말하는 겁니까? 근거 없는 개념이라 일축하시기에는 독해력을 좀 키우셔야 할것 같습니다;
3677 2015-02-15 22:08: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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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걸 떠나 조선 시대 인구가 감소했다는 주장을 하시려면 최소한 인구 변화에 대한 통계 자료를 들고오시던가 하셔야지요,

복원 추정도와 중요한 요충지였다는 기록, 그리고 조선 시대 그림을 들고와서 봐라 이렇게 변하지 않았느냐 라고 하면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합니까?
3676 2015-02-15 22:04:2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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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5부 방리라는 건 저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뒤로는 산을 배후로 한 도시 즉 서경을 포함한 행정 구역 '전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도시 '그 자체'가 아니라 말이지요, 이거 본인이 가져온 본문의 지도를 부정하시려는 건가요?
3674 2015-02-15 21:45: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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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하면 위의 답글 말고는 글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가져온 글은 읽어보시는게 좋을듯합니다,

도시가 5부 방리라는게 아니라 도시를 포함한 관할 구역이 5부 방리라는 말입니다, 즉 지금 주장하시는 도시 그러니까 평양, 서경의 직접적인 크기와 그 변화와는 무관한 인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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