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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3 2015-06-13 21:42:47 3
이 사진 두장으로... 이야기가 많네요 . [새창]
2015/06/13 20:32:00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니라면 숟가락 함부로 대면 안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네요.;
4452 2015-06-13 21:41:33 0
상소문 사대주의 비난 금지가 적절한가 [새창]
2015/06/13 20:22:28
초면에 말이 좀 많이 네 지나치게 거치시네요,
1. 제가 단 답글을 보자면 '우선적으로 광해군 당시의 외교진은 고스란히 인계됩니다' 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답글은 좀 읽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학문의 발전이 단순히 타 학문에 대한 배척만으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하신다니 참 할말이 없어지기는 하네요;

3. 서원을 단순한 지방 양반 세력의 근거지라고 그 폐단만을 부각시켜 봐야 할까요? 또한 이러한 서원의 문제가 왜 사대주의로 이어지는지요?

4. 역시 답글은 좀 읽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주자학을 중심으로 국가 체계를 정비하려는 노력은 정조와 규장각 학자들을 중심으로 벌인 대대적인 학술연구와 편찬사업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라는게 어떻게 규장각이 주자학 덕분에 라는 이야기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5. 대동소이한 문제인데 '한편으로 주자학을 중심으로 국가 체계를 정비하려는 노력은 정조와 규장각 학자들을 중심으로 벌인 대대적인 학술연구와 편찬사업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있다는 말이 왜 정조는 주자학을 중시 여기지 않았다 라는 말이 되는지요? 앞서 다른 분이 언급하셨습니다만 정조가 주자학의 신봉자인것과 별개로 답글은 좀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6. 자뻑과 예법으로 축약하시는데, 자민족 중심주의 사상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이게 사대주의의 폐단과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요?

7. 그러니까 배금 정책이라는게 단순한 말 외에 어떠한 정책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호란을 초래했는지요? 용골대를 이야기 해주셨습니다만 실록에는 잘 타이르고 달래서 돌려보내자는 요지 기록들이 나오는데요? 앞서 답글에서 언급했습니다만 말이야 그렇게 한다지만 현실을 무시할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 것이 호란으로 연결되는건 아닙니다.
4450 2015-06-13 20:58:15 0
상소문 사대주의 비난 금지가 적절한가 [새창]
2015/06/13 20:22:28
일단 윗 답글과 별개로 휴대폰이라 간략하게만 몇가지 언급해보자면 우선적으로 광해군 당시의 외교진은 고스란히 인계됩니다, 두번째로 소중화 사상이 사대주의의 폐단이라 하셨는데 다른 분의 답글을 가져와보자면 17-18세기의 문화적인 성취나 업적이라고 한다면, 주자학에 대한 당대 학계와 국가 학술집단의 학문적 검토가 이전 시기에 비해 훨씬 방대하고 치밀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목릉성세에 버금갈 정도로 수많은 대학자들을 배출하였고, 주자의 경전해석과 성리설에 대한 전범위적인 검토가 이루어졌으며, 전국적으로 서원 향교 종학이 숱하게 건립되면서 후진양성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18세기에 주자의 경전해석과 성리설을 두고 노론의 중진학자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하여 벌인 호락논변의 경우 주자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깊이와 그 논의의 수준은 목릉성세의 거유들이 벌인 논쟁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주자학을 중심으로 국가 체계를 정비하려는 노력은 정조와 규장각 학자들을 중심으로 벌인 대대적인 학술연구와 편찬사업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주서백선, 당송팔자백선, 문원보불, 육선공주의 등을 비롯한 송대 성리학, 관각문, 주의문, 법령, 경제, 병법, 무예, 예악, 수학, 과학기술 관련 수백종의 서적들이 관찬으로 발행되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고, 그만큼 사회 전범위적인 체제정비가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규정할 수 있는 용어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소중화가 가장 당대의 여러 문화적인 맥락을 잘 대표하고 있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소중화라는 것은 작은 중화, 즉 '명나라가 망했으니 이제는 우리가 중화 문명의 적통의 계승자'라는 인식의 대전환입니다. 중화에 대해서 오늘날 많은 분들이 70-80년대에 구축되고 여전히 어느정도는 유효한 국가주의, 민족주의 한국학 연구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계시지만, 사실 중화라는 것은 전근대 한자문화권에서는 문명 자체이고 당대의 세계인식에서는 메카이자 센터이고 문명의 발원지이며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이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서구 근대를 표준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중화의 적통을 계승했다는 인식의 전환이 얼마나 대단한 자신감이며, 유학적 이상국가를 목표로 하는 조선으로서는 한걸음의 진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번째로 숭명배금 그러니까 친명배금을 드셨는데, 이게 문제...가 될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양 호란의 경우 이러한 반정의 명분보다는 실질적으로 그 들 내부의 문제가 원인이 된 것이고, 친명배금을 천명하엿으나 실질적으로 친명만 있었지 배금은 없었다고 봐도 좋습니다, 말이야 그렇게 한다지만 현실을 무시할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지요.
4449 2015-06-13 20:49:27 1
이 사진 두장으로... 이야기가 많네요 . [새창]
2015/06/13 20:32:00
피리 레이스 제독의 남극 지도는 검증된 바 없습니다, 음모론자들이야 미국에게서 검증 받았느니 뭐니 하는데 사실 무근이에요.
4448 2015-06-13 18:15:16 0
이병도는 식민사학자가 분명하다 [새창]
2015/06/12 22:54:38
근데 시쳇 말로 까놓고 말해서 본문과 같은 주장외에 친일 행적 정도 더해놓은 것 말고 자칭 재야 사학 소위 말하는 유사 역사학 측에서 달리 제시하고 있는 주장이 있나요? 윗 분 께서는 좀 흥분하신 것 같은데 잘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저런 저급한 빌드업이 여지껏 역사 게시판에서 벌어진 트롤링의 주된 논거들입니다, 거기에 반박하고 뭐하고 난장판이 벌어져왔지요.;
4447 2015-06-12 23:09:46 1
이병도는 식민사학자가 분명하다 [새창]
2015/06/12 22:54:38
그럴듯하게 쓰인게 아니라 사실 저게 주장의 전부이지요, 구태여 덧붙인다면 친일 행적을 볼때 식민 사학자임이 틀림없다 정도가 더해질뿐 대동소이합니다. 문제는 이 걸 논파하면, 역사 게시판의 카르텔과 집단 괴롭힘, 뉴라이트 적 사고 방식 등의 소리를 듣게 된다는게 좀 그렇지요, 뭐 그 분들이 감정으로 이성의 부족함을 덮는게 하루 이틀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4446 2015-06-12 14:27:34 5
역사 게시판의 기득권세력???? [새창]
2015/06/12 13:55:43
유사 역사라고 하는게 대륙 삼국설, 환단고기 등의 위서, 실질적 영토 점유가 기반이 되는 요서 경략 설과 같은 내용 들이 주가 되는 것과 별개로 애시당초 유사 역사 측에서는 공존을 절대로 바라지 않습니다, 이전에 전두환을 물고 빨고 핧던 임승국 이래로 그가 그러했듯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문제를 자신들의 주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서 찾는 터라 임승국이 학계에 피의 숙청을 내리기를 갈망했듯, 기존의 학계, 주장, 사이트 등을 독점하기를 갈망할따름이지요.

수긍을 하고 주장을 고치거나 혹은 제대로 된 논거를 제시 하는 등 발전적 혹은 긍정적인 방향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며 왜 그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결국 아무런 학문적인 측면에서의 어떠한 발전적 방향이나, 기반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주장을 수용해주기를 원하는 한편 반대하는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몰아내는것을 요지로 트롤링을 반복하니 문제가 되겠지요;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에 언급하신 건전한 다양성이라는게 역사를 주제로 하는 커뮤니티 혹은 게시판 등지에서 사실상 거의 사라져가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단순한 질문도 금기시 되는게 사실이니 말이지요.
4445 2015-06-12 12:28:44 1
[유사역사를 금하길 원하는 역사게시판의 연명상소] - 완성본 [새창]
2015/06/11 21:28:21
왜 이 분들은 임승국이 전두환을 물고 빨며 학계의 피의 숙청을 가해주기를 갈망하고, 제 입맛대로 교과서 수정도 안되고, 주장이 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안되자 이병도를 물고 늘어지며 정신 승리를 한 이래로 수십년째 같은 논리를 고수하는지 앞서 다른 분이 언급 하셨지만 참신한 논리를 듣고 싶습니다,
4443 2015-06-11 20:23:22 3
의견 수정) 해가람님의 동어반복에 대한 저의 공식적인 답입니다. [새창]
2015/06/11 20:02:59
식민 사학자 즉 식민 사학이라는 학문적인 성과를 거둔 학자라고 한다면 그러한 학문적인 성과를 제시하면 될 일이고, 그 것이 곧 해가람님 주장의 논거가 될 것이며, 저를 비릇한 다른 언급된 분들을 논파시킬 증거가 될 터인데, 왜 그러할 것이다 라는 심증만을 제시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하면서 자신을 빈정 거리느니 뭐니 핍박받는 상황 즉 감정적인 그러한 문제를 끌어내어, 문제를 덮으시려 하시다니 참 답답하지요, 물론 본인이 말하고 지키지 못하는 자기 할 말만 하며 말 돌리고 있는 상황은 둘째치고 말이지요.
4442 2015-06-11 19:13:30 0
연명상소안과 그 수정에 관하여 2 - 레몬네이드 [새창]
2015/06/11 18:57:33
끝으로 조선사가 뭔지 보지도 않으셨지요? 아니 볼 생각도 없으실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사대관을 식민 사학의 논증으로 들고 나오지, 가서 한번 보세요, 이게 무슨 책인지, 본인이 들고 오는 자료는 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어디 블로그에서 복붙 하실게 아니라 말입니다.
4441 2015-06-11 19:09:21 1
연명상소안과 그 수정에 관하여 2 - 레몬네이드 [새창]
2015/06/11 18:57:33
본인 말만 하지 말며, 말 돌리지 말라고 하시더니 정작 본인이 그대로 하고 계시네요, 무엇보다 녹음기 틀거면 글 안파셔도 된다고 하셨는데 기어코 파셨네요?

다른거 필요 없다니까 뭘 이렇게 글을 올립니까? 식민 사학자라면 식민 사학적인 학문적 성과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거 하나 말해달라는데 왜 말을 못해요?

본인 주장이잖아요? 근데 왜 말을 못하십니까? 빈정거린다고 피해자 행세하기전에 잘 생각해보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분들이나 저나 질문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리고 답변도 이거 하나면 되요,

이병도가 식민 사학자라면, 식민 사학적인 학문적 성과는 무엇인가?

본인의 주장을 입증할 논거이자 모든 사람들을 논파할 키워드입니다, 정황 증거따위로 메울 문제도 아니고 말이지요.
4440 2015-06-11 17:34:49 2
[새창]
본문과 답글에 첨언을 해보자면 달레 신부가 쓴 조선 신부사에 묘사되기로는 사형장 50보내에 장막을 치고 사람의 통행을 막는게 원칙이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며, 형장에 도착하면 등 뒤로 결박하여 조리돌림을 시킨뒤 턱 밑에 나무를 괴어 엎드리게 만든뒤, 도수 내지는 회자수 혹은 망나니로 불리는 집행자가 자루가 긴 월도로 목을 벤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행가 새비지 렌도어의 묘사에 따르자면 처형장으로 가는 도중 망나니가 주막에 계속 들려 술을 마시는 바람에 인사 불성이 되어 제대로 목을 베지 못했다 라고 그 참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상기 본문에 김윤보의 형장도첩에서 볼수 있듯이 줄을 목 뒤에 교차하여 정확히 타격 지점?을 표시해 놓는 한편 상투에 끈을 고리에 엮어 반대측의 집행자가 바로 들어 보일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예컨데 사형시에는 주로 월도를 썼고, 집행자의 심리적, 육체적 상태가 고르지 못하여 편안한 집행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이러한 것을 배려하여 위력이 좋은 월도가 쓰였고 사형 전에 조리돌림외에 따로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4439 2015-06-11 17:02:50 0
종결) 상소문의 '이병도를 식민사학자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새창]
2015/06/10 18:51:06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해당 글쓴이의 주장이 유사 역사의 정의에 위반되는지 말이지요, 논리가 결여된건 비공감의견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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