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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3 2016-01-08 09:42:03 5
요사(遼史)지리 에 나온 평양..고구려 평양의 진짜 위치 찾기 연구 활기 [새창]
2016/01/08 09:10:51
자기들이랑 아는 게 다르다고 무조건 유사 역사 추종자 그러니까 시쳇말로 환빠라고 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유사 역사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요사 지리지 말이 나와서 동일한 글의 답글을 옮겨적자면 네 이 이야기 정말 수도 없이 나온 이야기에요; 아무튼

東京遼陽府,本朝鮮之地。周武王釋箕子囚,去之朝鮮,因以封之。作八條之教,尚禮義,富農桑,外戶不閉,人不爲盜。傳四十餘世。燕屬真番、朝鮮,始置吏、築障。秦屬遼東外徼。漢初,燕人滿王故空地。武帝元封三年,定朝鮮爲真番、臨屯、樂浪、玄菟四郡。後漢出入青、幽二州,遼東、玄菟二郡,沿革不常。漢末爲公孫度所據,傳子康;孫淵,自稱燕王,建元紹漢,魏滅之。晉陷高麗,後歸慕容垂;子寶,以勾麗王安爲平州牧居之。元魏太武遣使至其所居平壤城,遼東京本此。唐高宗平高麗,於此置安東都護府;後爲渤海大氏所有。大氏始保挹婁之東牟山。武后萬歲通天中,爲契丹盡忠所逼,有乞乞仲象者,度遼水自固,武后封爲震國公。傳子祚榮,建都邑,自稱震王,併吞海北,地方五千里,兵數十萬。中宗賜所都曰忽汗州,封渤海郡王。十有二世至彝震,僭號改元,擬建宮闕,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爲遼東盛國。忽汗州即故平壤城也,號中京顯德府。<一>太祖建國,攻渤海,撥忽汗城,俘其王大諲譔,以爲東丹王國,立太子圖欲爲人皇王以主之。神冊四年,葺遼陽故城,以渤海、漢戶建東平郡,爲防禦州。<二>天顯三年,遷東丹國民居之,升爲南京。

이 대목인데 사실 요사 지리지가 원나라 시대 집필된 서적으로 굉장히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진서라고 무조건 잘 맞겠거니 그 내용이 정확하겠거니 맹신해서는 안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수 있습니다만 가령 그렇습니다, 상기 대목에서 볼수 있듯이 동경 요양부와 중경 현덕부 그리고 평양성을 같은 지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5622 2016-01-08 01:45:32 2
이문영 논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새창]
2016/01/07 18:26:12


5621 2016-01-07 12:04: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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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신승리 축하드립니다 아Q님 정중하게 말한다 어쩐다 하셨지만 그 패턴과 본질이 어디가나요
5620 2016-01-07 11:51:5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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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네 소모적이네요, 반론을 하니까 재반론으로 한다는게 일본에 충성을 다하는 이병도의 숨겨둔 본질을 너는 모르지만 나는 안다 수준이니 말입니다, 더이상 일을 미루고 답글을 달 이유를 모르겠네요, 뭐 정신 승리를 하시든 말든 상관은 않하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래요, 더 다실것 같으면 이후에 확인하는데로 답글을 작성하지요.
5619 2016-01-07 11:47: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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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하세요, 뭐 지난번에도 그렇고 별 기대는 안됩니다만 애시당초 누가 무조건적 부정을 하였습니까? 자기 입맛에 따라 해석하고 취사 선택하는 분께서 보실때는 반론하는게 잘못 같아 보이겠습니다만 지난 번에도 그렇고 취미로 역사 조금 보는 사람이 듣기에도 참 허술하기 이를때 없어요.
5618 2016-01-07 11:40:5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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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뭐가 있는데요? 아니 뭐 분국설을 주장하시려면 논증이나 되야지,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병도 는 수많은 학자들 중 하나에요, 그 사람이 진리도 무엇도 아닐뿐더러 이병도 하나만 논파한다고 학계에서 더이상 이견이 없어질것 같아요? 지금도 이병도의 연도 비정이나 연호 사용이 틀렸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요? 이 상황이 뭔지 궁금하세요? 만주원류고 하나로 취사선택 해서 엉뚱한 훈제 청어 늘어놓으며 분국설 주장하시는 분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열도 분국설에 반하는 주장들은 중국 정사를 비릇하여 다종 다양한 사료와 유적 발굴 등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공부하세요.

그리고 애시당초 본질이 뭔가요? 네? 열도 분국설? 아니면 취사선택? 참 본질...이라고 하는게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얼토 당토 않다는건 알겠네요.;
5617 2016-01-07 11:34:3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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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애시당초 학문에 진리 같은건 없다고들 합니다만 여하튼 그렇습니다, 위에 답글로 작성한 내용을 다시 가져와 보자면 지금 주장하시고 계시는 분국론은 일본의 문물 전파에 따른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 등 각국의 공동체가 지방 정권으로서 일본 내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주장이나 한 일 양국에 의하여 논파되었고 아니 논거도 없어서 그냥 신기함만 안겨준채 이북에서도 더이상 그 주장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후왕은 분명 칠지도를 받는 왜왕인것은 사실이나 백제가 천자와 같은 입장에서 왜를 제후와 같이 표현했다고 보는 입장과 금문에 쓰이는 상투적인 길상구로서 상하관계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유가 간단한게 제후라 표명하기에는 왜라고 하는 나라에 있어 앞서 분국론의 침몰 사유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타국의 지방 정권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할수가 없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장 5세기 중엽을 기준으로 백제와 일본은 한 품계 차이만 있지, 중국으로부터 각각 왕들이 안동장군과 진동장군으로 책봉된바 있습니다, 즉 외교적으로 양 국이 절대적인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후왕이라는 작위가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를 가지고 만주 원류고의 기록 하나만을 가지고 일본에 백제의 지방 정권이 존재하였으며 칠지도는 그러한 지방정권에 대한 하사품이라 하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자면 순수한 상상의 나래일따름입니다.
5616 2016-01-07 11:32:4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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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파될때 마다 이리저리 해석을 바꾸기는 누가 바꾸나요? 그냥 계속 같은 이야기 해도 안들려 안보여 이신데 뭘 더 이야기 하겠습니까?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아요? 지금 칠지도에 어떤 이론들이 있고 다양한 연구 이론이 있는지는 아세요? 거기에서 왜 분국설이 무시당할까요? 언급조차 안될까요? 간단해요 님께서 주장하시는 건 진리도 무엇도 아니에요, 가장 간단한 논증 조차 안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사료 한줄 가지고 다른 다종 다양한 검증을 걸친 주장을 논파할수는 없는 법입니다.
5615 2016-01-07 11:30:5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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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정만류원류고 같은 다분히 동북공정에 한 없이 가까운 사료보다는 그나마 교차 검증을 통하여 사실 관계 확인이라도 되는 일본 서기가 좀 더 낫습니다, 님의 문제점은 그거에요, 취사선택 저도 님께서 주장하시는 일본 열도 분국설에 관하여 최소한의 정말 교차 검증 하나라도 되면 부정을 안하겠습니다만 지금 뭐가 있습니까?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사기로 치부하며 사기니 뭐니 막말까지 하고 계시지요, 칠지도의 명문 해석에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있고 이병도의 주장에 어떠한 반론이 되었고 이야기가 나온건지 관심이나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병도의 주장에서 문제 삼을건 일본서기가 아닙니다 애시당초 이병도는 일본에 대한 헌상설을 뒤집고 나온 인물이라 일본에 대한 감정적 반감으로 부정할 계제도 아니지만 그 주장인 연도 비정, 연호 계승의 문제 등에 있어 사기를 유지시킬 이유도 무엇도 없는게 사실이지요,
5614 2016-01-07 11:21:21 0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한국 고대사를 어떻게 보았는가? [새창]
2016/01/07 11:15:07
이렇게 끝날 이야기 같으면 정말 몇 년전에 끝났겠지요; 참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식민 사관에 따른 학문적 성과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식민 사학자를 부르짖으실건지 말입니다.;
5613 2016-01-07 11:18:3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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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글을 옮겨보자면

奇生聖音에 대한 해석은 “故爲倭王旨造” 문구의 해석과도 관련이 된다. 奇生(聖音)을 인명으로 파악하는 입장에서는 ‘倭王替(旨)’로 읽어 倭의 五王의 최초에 위치한 讚일 것이라고 보고 이를 應神天皇에 비정한 것이 대표적이다(西田). 또 ‘倭王旨’를 ‘왜왕의 뜻’으로 해석하여 왜왕의 명령 내지 희망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봄으로써 백제헌상설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旨’는 형용사에서 부사로 전화한 것으로 ‘旨造’는 精製(정교하게 만들다)·巧造(교묘하게 만들다)의 뜻으로 해석하는 설이 제기되어 주목된다. 이는 당시 백제와 왜의 관계는 평등한 것으로 칠지도는 하사품도 헌상품도 아닌, 백제에서 왜국에 보내준 贈品이라는 입장이 근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칠지도가 儀禮的인 呪具라는 점을 감안할 때 명문의 내용상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은 일단 주목된다.

‘造’ 앞의 글자를 부사로 보는 것은 藪田의 견해도 마찬가지이다. 칠지도 명문 자체를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 무렵의 僞作으로 보는 그는 ‘旨’가 아니라 ‘敬’으로 판독하여 “왜왕의 은혜 때문에 敬造해서”라고 해석하기는 했지만, ‘旨’자를 반드시 명사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제시한 점에서 상당히 시사적이다.
5612 2016-01-07 11:15: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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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누가 칩니까? 지금 칠지도에서 왜왕지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기록된걸 뭐 어쩌나요? 어디에 사기가 있지요? 훈제 청어는 좀 제대로 된걸 던지세요,
5611 2016-01-07 11:12:3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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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에 적혀있는걸 없다고 하시면 제가 뭐라고 말할까요? 그리고 왜왕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게 열도 분국설의 논증이라고 생각하세요? 진심으로?
5610 2016-01-07 11:10: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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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주원류고에 대한 사료 비판을 한다고 100% 허위기록이라는게 아니라 뭐가 검증이 되야 믿지요, 지금 님이 하는 그 잔대가리는 유사 역사학자 소위 말하는 환빠들이나 할법한 행동입니다, 아니 유사 역사학자들의 주장이에요,

그런 잔술수는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안먹힐뿐더러 현실에서도 지금처럼 개발려요, 분국설을 북한이 왜 안떠드는지 아세요? 어디가서 씨알도 안먹힌다는걸 알아서 그래요, 당장 분국을 입증할 주장이 뭐가 있는지 논증 좀 다시 해보시지요? 이제는 도망 가시지 말고 말입니다.

당장 위에서 도 말했지요? 구려 덕흥리 고분 묵서명에 고구려 왕의 신하였던 진도 후왕이라 적혀있습니다, 그럼 고구려에도 백제의 지방 정권이 있었습니까? 백제 분국설은 원류고 말고 뭘로 입증이 됩니까? 외교 관계에 있어 반론하는 다른 여타의 사료들은 왜 무시하는거죠?

끝으로 이병도 하나만 있는게 아니에요, 칠지도 관련 학설은 지금도 수없는 새로운 이론과 해석이 범람하고 이의가 제기되며 끊임없이 수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5609 2016-01-07 11:06: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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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무슨 사기인가요? 뻔히 倭王旨라고 적혀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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