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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3 2017-06-08 17:14:58 0
중화인민공화국 입장으로 보는 읍루(邑婁)의 위치.. [새창]
2017/06/08 15:32:47
기대하지 마세요, 쿠투넷에서 활동하다 오신 분들이 다 그렇겠습니다만 어차피 불리한 답글에는 반응도 아니 하실뿐더러 녹음기나 트실뿐입니다, 이 분이 대륙 삼국설을 주장하실때부터 몇 번을 논쟁을 하고 또 했는지 원 정말 이런 말은 뭐한데 답이 없어요.
8652 2017-06-08 16:53:58 0/5
[기사] 도종환 의원 역사관 반박자료 냈네요. [새창]
2017/06/08 14:41:23
두서없는 답글을 잇자면 임나 일본부 설에 관한 발언만 봐도 문제가 좀 큰게 아닙니다, 가령 임나 = 임나일본부는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그 것에 관하여 일본의 지원을 받아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널리 퍼졌다는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감조차 안오는데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의 용례만 보더라도 단일 세력부터 여러 나라 전체를 가리키는 대상으로 쓰이는 등 다양한 용례로 쓰이고 있어 단언하기 어려운것은 물론이거니와 비단 일본서기뿐만 아니라 중국의 송서,양서, 남사 등의 사료들부터 국내의 광개토대왕비, 삼국사기,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 등에서 그 쓰임이 확인되었고 그러하기에 학계 전반에 있어 다양한 용례의 임나를 쓰는 현실은 왜 무시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8651 2017-06-08 16:50:52 4/8
[기사] 도종환 의원 역사관 반박자료 냈네요. [새창]
2017/06/08 14:41:23
쇠말뚝 박은적 없습니다, 사실 일본측에서도 미신 타파에 앞장 서던 시절인 것이나 양택 풍수는 물론이고 음택 풍수를 통틀어도 어떠한 의미도 없는 것과 별개로 그거 그냥 소설로 판가름 난지 오래됬어요,

두번째로 이병도...참...지리한 이야기인데 까놓고 말씀드려서 이병도의 식민 사관적 학문 성과가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이병도 식민 사관이니 뭐니 하시는 분들중에 그거 답변 해주시는 분을 본 적이 없어 참 궁금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또한 그 이병도가 식민 사관 타파에 적극적으로 나선건 아시는지요? 그리고 그런 이병도가 지금 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당장 이병도의 제자들과 그 직계 라인들부터 이병도를 까뒤집고 있는 마당에 이병도를 따라 역사학을 가리키기는 누가 가리킵니까?

끝으로 증거를 조작해놓고 이걸 따라 역사학을 가르친다는데 구체적인 논증을 말씀해주시지요? 가령 일제는 한반도의 구석기를 부정했습니다만 네 그 결과가 어떻든가요? 우리가 듣고 보고 배우는 그 구석기 문화는 누가 연구하고 발굴한걸까요?
8650 2017-06-08 16:43:05 4/6
[기사] 도종환 의원 역사관 반박자료 냈네요. [새창]
2017/06/08 14:41:23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1

여기에 대한 해명은 빠져있군요,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의 총체적 부실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영해서 만들어진게 원인이고 동북아시아 및 독도의 바른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는게 유사역사학의 논지를 따라가는 것이고 참..이런 말씀을 하신 도종환 의원은 도종환 의원 4라도 된다는 건지 말이지요.

(중략)

이어 더불어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축사를 통해서 우리역사가 당면한 과제를 정확하게 진단했고, 국회의원으로서는 드물게 역사전문학자와 같은 수준의 역사지식으로 식민사관을 비판했다.

“지난 국회에서 동북역사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당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든) 동북역사지도집을 보니까, 이게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영해서 만들어져 있어 깜짝 놀랐다. 그래서 중단시켰다. 우리가 중국 측의 역사왜곡에 너무나 허술하게 대응하고 있다. (고대에 일본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식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하여 )일본에서는 (경남에 있었다고 보이는)가야와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인)임나가 같은 곳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을 따르는 국내 학자들의 논문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독도와 관련된 자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모르고 방치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제 국회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동북역사대책특별위원회가 20대 국회에서도 다시 활동해야 한다. 아직 20대 국회에서는 몇 가지 미세한 의견차이 때문에 꾸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세연 의원이 역사회복 노력은 꾸준히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관심을 갖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오늘 이러한 자리도 마련했다. 그래서 고맙고 반가워서 이렇게 왔다. 20대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특위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되겠다. 인하대학교 고조선 연구소에서 전문적 근거를 가지고 고려국경선에 대하여 학술발표를 하는데 국회에 차원에서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8649 2017-06-08 16:41:13 8/8
도종환 후보자가 유사역사학 의혹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새창]
2017/06/08 14:27:51
아참 그러고보니 식민 사관의 본질을 그대로 담습하는 임나 일본부 설을 일본의 지원을 받아 만든 학자들이 누구인지는 왜 안 밝히시는지 궁금하네요, 그 것도 그냥 오해의 연장일까요?
8648 2017-06-08 16:40:20 6/9
도종환 후보자가 유사역사학 의혹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새창]
2017/06/08 14:27:51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1

여기에 대한 해명은 빠져있군요,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의 총체적 부실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영해서 만들어진게 원인이고 동북아시아 및 독도의 바른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는게 유사역사학의 논지를 따라가는 것이고 참..이런 말씀을 하신 도종환 의원은 도종환 의원 4라도 된다는 건지 말이지요.

(중략)

이어 더불어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축사를 통해서 우리역사가 당면한 과제를 정확하게 진단했고, 국회의원으로서는 드물게 역사전문학자와 같은 수준의 역사지식으로 식민사관을 비판했다.

“지난 국회에서 동북역사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당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든) 동북역사지도집을 보니까, 이게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영해서 만들어져 있어 깜짝 놀랐다. 그래서 중단시켰다. 우리가 중국 측의 역사왜곡에 너무나 허술하게 대응하고 있다. (고대에 일본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식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하여 )일본에서는 (경남에 있었다고 보이는)가야와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인)임나가 같은 곳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을 따르는 국내 학자들의 논문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독도와 관련된 자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모르고 방치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제 국회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동북역사대책특별위원회가 20대 국회에서도 다시 활동해야 한다. 아직 20대 국회에서는 몇 가지 미세한 의견차이 때문에 꾸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세연 의원이 역사회복 노력은 꾸준히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관심을 갖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오늘 이러한 자리도 마련했다. 그래서 고맙고 반가워서 이렇게 왔다. 20대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특위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되겠다. 인하대학교 고조선 연구소에서 전문적 근거를 가지고 고려국경선에 대하여 학술발표를 하는데 국회에 차원에서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8647 2017-06-08 08:58:20 1
3ㆍ1절 특집 SBS스페셜 역사전쟁 - 금지된 장난. 일제 낙랑군 유물조 [새창]
2017/06/08 05:03:35
낙랑군 요령설은 그냥 특정 사료에 나오는 기사 몇줄을 근거로 하는 주장이나 그 음모론과 사료 몇 줄로 요서나 요동지역에서 출토된 낙랑군 혹은 후기 고조선과 관련한 유물들이 없는 걸 커버칠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 나아가 사료 몇 줄로 벌이는 낙랑군 요령설은 태강지리지, 위서 등에서 한반도에서 축출된 낙랑, 대방이 요서 지방으로 이동했다는 사료 몇 줄로 재 반론이 되는 상황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음모론 이상 이하도 아닌게 현실이고 오히려 이보다는 요령/평양 2 고조선 체제가 더 신빙성 있습니다,
8646 2017-06-08 08:35:58 1
3ㆍ1절 특집 SBS스페셜 역사전쟁 - 금지된 장난. 일제 낙랑군 유물조 [새창]
2017/06/08 05:03:35
심지어 사진 몇 장으로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걸 보면 정말 답이 없음을 느낍니다, 하다못해 TV 골동품 감정 프로그램인 진품 명품도 그렇게는 안해요.
8645 2017-06-08 08:34:04 1
3ㆍ1절 특집 SBS스페셜 역사전쟁 - 금지된 장난. 일제 낙랑군 유물조 [새창]
2017/06/08 05:03:35
참 운영자님이 방관한 씨앗이 풍년이기는 하네요, 아무튼 참 이런 떡밥은 안 무는게 답이기는 한데 몇번을 봐도 참 신기합니다만 관광 중국어 교수가 서체 전문가이고 이덕일이 메인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이 신빙성 있기는 한가요?
8644 2017-06-08 00:39:37 16/12
[BGM] 유독 중국이 마약에 민감한 이유 [새창]
2017/06/07 17:45:48
두서 없는 답글이나 답변을 드려본다면 마약 공급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아편 전쟁의 배경에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원인을 둘수 없는 사실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근본 원인을 서구로 볼수 없다는 것도 그러하기에 말씀드리는 것인데

언급하신 IMF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치와 부패로 발생했다는 말씀과 이 사태는 좀 다른게 중국측에서는 고랫적부터 본디 아편에 대한 수요가 늘 존재하였고 공급 역시 꾸준하게 있었습니다만 나라에서는 이러한 아편의 수요 증가나 마약으로서의 해악에 대하여 알고는 있었으나 별 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 것이 문제가 된게 은본위제가 붕괴될 위기까지 내몰린 뒤의 일인데 그러한 사태의 원인인 급격한 아편의 유입에는 일방적이고 불공평한 중국의 무역 정책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여러 나라의 막대한 적자가 자리잡고 있었지요, 더 나아가 동인도 회사와 같은 곳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건전한 재정 상태를 요구했는데 중국에서 수입하는 주 상품인 차를 비릇하여 설탕, 비단, 자개, 종이, 계피, 동, 백반, 금, 은 등과 다르게 중국측에서 요구하는 상품은 아편을 비릇하여 다이아몬드, 후추, 면, 철, 납, 제비 둥지, 샥스핀 등이 전부였습니다, 서구 열강에서는 꾸준한 수요로 말미암아 막대한 재정을 소모하는 반면 중국측에서는 중계 무역이 허가된 십 수개의 경제 카르텔 행상을 통하여 철저하게 수입을 통제하고 있었고 그나마 대부분이 고가의 사치재 위주인터라 아편을 제외한다면 그러한 재정 상태의 유지를 지탱할 상품이 없었던게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마약으로서의 해악에 대하여 문제가 된건 옹정제가 아들 셋을 아편의 부작용으로 잃은 뒤의 일인데, 그러한 사태 뒤의 금지령을 보더라도 어디까지나 국내의 비 자격자가 유통하는 것을 문제 삼을 뿐이었지 마약 복용자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중국의 태도 역시 문제인게 임칙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제의 법률 아래에 동등한 처벌을 원했고 강요했습니다, 상대 국가를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접근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으며 이는 양측의 갈등 원인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사유 재산을 몰수하고 임의로 연행하는 한편 모든 맺어진 협정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섬에 몰아넣는 한편 공급되는 모든 식량을 끊고 섬 이외으 지역에서 보이는 대로 사살하라는 지시를 어떻게 받아들일수 있겠습니까, 이 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그러한 행동을 취했을때 벌어진 사태만 놓고 보더라도 이에 대하여 중국측의 책임을 무시할수는 없지요.

요약하자면 서구 열강에게만 책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시쳇말로 까놓고 말씀드린다면 만약 문호가 개방되어 수출입이 자유로웠다면 부의 상징이자 상류층이 즐기는 비싼 여가생활이었던 아편의 판매를 확대할 이유도 무엇도 없었겠지요, 그러나 중국의 서양의 문화,종교,그리고 사회적 관행이 미치는 영향을 극히 제한적인 교역으로 억누를수 있을것이라거나 아편 수입으로 붕괴되어 가는 은 본위제를 살리고 빈 국고를 채울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에서 단지 아편을 판매했다는 이유 하나로 근본 원인을 고스란히 안고 갈수는 없지요, 유발수요로 인해 비대칭성만 보더라도 말씀하신 대로 시장의 자정작용은 실패하는게 맞겠습니다만 이 경우는 중국측에서 시장의 자정작용을 억누르고 유입을 장려한 측면이 있으니 말입니다.
8643 2017-06-07 20:56:46 19
[BGM] 유독 중국이 마약에 민감한 이유 [새창]
2017/06/07 17:45:48
두서없는 답글이었습니다만 예컨데 영국측의 일방적 잘못을 이야기할것도 아니고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앞장 서서 아편 공급을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공식적으로는 아편 공급을 부정하는 한편 아편 공급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일선의 시장 경제를 놓고 볼때 저울을 맞출수 있는게 아편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그러한 양 측의 무역 이면에는 일방의 피해와 불합리 만을 강제하는 중국의 태도와 협정 그리고 중화 질서 아래에 시야가 좁아질데로 좁아진 중국의 현실이 문제였을뿐이죠,

물론 아편이 옳다거나 하는건 아닙니다만 그렇습니다, 중국이 마냥 피해자로 볼건 아니라는거죠,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법이고 일방의 피해만 강요하는 공정함이란 있을수 없지요.
8642 2017-06-07 20:53:38 21
[BGM] 유독 중국이 마약에 민감한 이유 [새창]
2017/06/07 17:45:48
이에 대하여 중국인들이 영국 공장과 상점 등을 습격하는 반격이 시작되는 등 걷잡을수 없이 갈등이 고조되어 갔습니다만 영국 정부는 어떠한 지침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보고서가 오고 가는데 걸리는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영국측 현지 책임자인 엘리어트가 들은 것은 오로지 영국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라는 말 뿐이었지요,

그리고 중국에서 강경파인 임칙서가 아편 근절에 대한 전권 대신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임칙서가 내세운 제 1원칙 아편 근절 뭐 다 좋습니다만 문제가 있지요, 그는 시장 질서와 사유 재산에 대하여 무지했다는 겁니다, 무차별적인 아편 소각은 천정부지로 아편 값을 올려 시장 질서를 더더욱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으며 아편은 물론이거니와 공장과 같은 부동산, 기타 사유 재산들을 압수하고 그 들을 임의로 연행하거나 격리하며 식량을 끊는 등 영국을 비릇한 외국인들을 궁지로 내몰았습니다,

그와중에 구룡 반도에서 외국인들에게 농부가 살인당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러한 불만이 폭발할데로 폭발한 영국측은 사유를 불문하고 자신들이 지목한 용의자를 법정에 세워 제대로 된 근대적인 재판도 없이 형벌에 처하겠다는 중국측의 요구를 거부하였고 중국측은 그 걸 가지고 황제의 뜻을 무시했다며 그 들에게 식량공급을 전면 중지할것과 더불어 육지에 상륙한 외국인들은 사유를 불문하고 사형에 처하라는 강경책을 내세우게 됩니다,

네 문화적 이해 관계가 불통인 감도 없지 않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영국측은 살기 위하여 중국측의 봉쇄를 풀기위해 군사 행동에 나섰고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편 전쟁으로 번져나가게 됩니다.
8641 2017-06-07 20:40:55 25
[BGM] 유독 중국이 마약에 민감한 이유 [새창]
2017/06/07 17:45:48
귀가를 했으니 마저 적어보자면 그럼 이러한 아편 수입이 오로지 영국에 의하여만 자행되었는가 하면 아닙니다, 원래 인도와 터키, 중국 자체 생산 등에 의하여 공급되던 라인은 물량에 밀렸을뿐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미국은 전체 공급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본국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공세를 시작하였으며 덴마크, 그리스, 네덜란드,스웨덴,프랑스,스페인 심지어는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와 식민지 들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중국 본토에 공장을 차려가며까지 적극적인 아편 공급에 나섰으며 덕분에 아편가는 매우 저렴해질수 밖에 없어 앞서 언급한 바 대로 전 계층에 골고루 퍼져나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이 인도를 직접적으로 다스리게 되면서 조금 일이 달라지게 됩니다, 중국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교역 독점권이 폐지되면서 중국 본토의
영국인 아편상들이 낙동강 오리알 처럼 붕 뜨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 들은 영국 본토에 교역 감독관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 때 영국이 보낸 이가 군인 출신의 윌리엄 네이피어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 양반이 중국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몰랐다는 거죠, 그러니까 신임장이나 뭐가 됬든 이제 상인을 거쳐 태수에게 적절한 기름칠과 함께 절차를 지켜가며 접근을 해야하는데 가운데 상인들을 씹어버리고 바로 태수에게 신임장만 던져준겁니다,

당연히 오랑캐의 미개함에 분개한 태수는 신임장을 거부하였으며 아편 무역의 재개를 꿈꾸던 영국 상인들은 경쟁 상인들과 중국측 도매업자들에게 물리적으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에 윌리엄은 인근 해상에서 대기중이던 두 척의 군함을 불러 진압을 하려 합니다만 해안 요새를 돌파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었지요,

또한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영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아편 무역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라는 겁니다, 예컨데 아래에서 뭔 짓을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거 시킨적 없다는거죠, 뭐 틀린말은 아닙니다만 중국측이 보기에는 가장 많이 사들일수 밖에 없는게 아편인데다 자기들이 보기에
동인도 회사나 영국 회사나 거기서 거기라 순수한 무역업자들을 보호하려는 모든 행동들을 아편 유통 업자들을 지키려는 술책으로 생각했죠,

물론 중국측의 오해만 그런게 아니라 근 1백여년간 강제로 십여개의 무역 카르텔을 통해서만 불리한 조건에서 거래를 할수 밖에 없었고 필요 이상으로 태수와 총독에게 뇌물을 상납해야 했던 영국 상인들은 조차지를 벗어나 직접 무역을 하려 하거나 불합리한 조건을 무력으로라도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이러한 외국인들의 행동과 자국내 불온한 기류, 황제폐하께 자신들의 태만이 직접 흘러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태수와 총독을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그 들은 일련의 아편 무역상을 추방하는 한편 조차지에서 아편 밀매상을 십자가에 묶어 화형시키려고 했지요, 전자는 뭐 밀입국 노동자들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소극적 조치였고 후자는 술취한 선원들에게 화형식을 주최하던 관리가 린치를 당하는 결과로 끝났지만요,
8640 2017-06-07 18:47:20 3
[BGM] 유독 중국이 마약에 민감한 이유 [새창]
2017/06/07 17:45:48
아편전쟁의 경과에 대한 첨언은 귀가하고 올리겠습니다
8639 2017-06-07 18:44:07 28
[BGM] 유독 중국이 마약에 민감한 이유 [새창]
2017/06/07 17:45:48
간략하게 첨언을 하자면 아편은 중국에서 해악으로 취급받았던 건 아닙니다,

아편이 중국에 전래된 것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대체로 7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 아편에 관한 문헌이 중국에 실재한다는 점에서 아편은 이미 중국에 알려져 있는 상태라고 봐야 하겠으며 오랜 옛날부터 인도와 중국 자체의 생산량으로도 수요를 충족시킬수 있었습니다, 다만 고가인 탓에 그 비용을 충족시킬수 있는 귀족 계층에서만 향유할수 있던 매우 고상한 취미 생활이었지요,

그러한 아편이 중산층을 넘어 전 계층에 고루 퍼진 계기는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무역회사의 자바 교역소 선원들이 말라리아를 예방한다는 믿음과 더불어 마약의 쾌감을 위해 담배에 소량의 아편과 비소를 혼합해 피우면서 이른바 담배를 기초로 한 흡연칵테일이 유행하면서 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네덜란드, 포르투칼과의 무역이 확대되면서 중국 연안에 흡연 칵테일이 방대하게 번져나갔고, 황제의 칙령으로 이를 금지하면서 대체제로 아편이 유행하게 되었지요,

그러한 해악에 대하여 옹정제가 은의 걷잡을수 없는 유출로 말미암은 경제의 붕괴가 지척에 다다른 현실을 깨달은 이후 약품 면허를 가진 이들을 제외한 이들의 소지를 금지하기는 했습니다만 여전히 아편을 피우는 이들이나 수입품과 수입업자들에 대하여 일체의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고 도리어 높은 관세로 말미암아 합법적 수입이 장려되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건륭제의 칙령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중국 내의 아편 사용과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였으나 수입이나 사용자에 대하여는 일체의 터치가 없었습니다, 그 뒤에 이제 뒤늦게 수입이 금지되었으나 이미 폭증한 수요를 막을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다만 그러한 수출입의 이면에는 수요를 넘어 동인도 회사의 심각한 경영 상황도 한 몫을 했습니다, 어떠한 오랑캐의 물건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고 오로지 차 수출로 말미암은 은괴에만 관심을 보인 중국 탓에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벌어들인 현금으로 중국의 차를 사들여야 하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되었던 터라 운영을 재평가받거나 면허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아편 수출을 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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