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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23:39:23
6
으응~ 입맛대로 취사선택하는거 아니에요, 유사역사학과는 다르다면서 유사역사학 나부랭이들이 떠드는거 옮겨오는거 아니에요,
1.
樂浪郡治朝鮮縣 則其邑居 雖在遼東而平壤以西 皆共屬縣也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성호 이익의 추측일 뿐, 문헌 어디에도 그 견해를 입증할수 없어요,
2.
으응~ 열하일기 아니에요, 어디서 원문도 모르는 헛소리를 물고오는데 '고조선과 고구려의 옛 강역을 찾으려면 먼저 여진을 국경 안에 합친 다음 패수를 요동에서 찾아야 한다”' 는건 연원직지 출강록 봉황성기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그것도 그냥 자기 추측이지 입증된 견해 아니에요,
3.
으응 앞구절 봐야 해요,
'`<당서>를 보면 안시성은 평양에서 500 리요, 봉황성은 `왕검성`이라고도 한다고 썼고, <지지地志>에는 봉황성을 `평양`이라고도 한다 하였으나, 이러고 보면 무엇을 표준 삼아 이름을 붙였는지 모를 일이다. 또 <지지>에는, 옛날 안시성은 개평현의 동북 70 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고, 개평현으로부터 동으로 수암하秀岩河까지 300 리요, 수암하로부터 동으로 200 리를 가면 봉황성이라고 했으니, 이것으로써 옛 평양이라 한다면 <당서>에서 말한 평양과 안시성의 거리가 약 500 리쯤 된다는 것이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역시 입증된 견해 아니에요, 그냥 글자 가지고 계산질 한게 끝이에요,
타자 칠려면 손가락이 아플지경이라 이하는 생략해요, 그냥 학자랑 독립운동가들이 그렇게 생각했더라 해서 신빙성 생기는거 아니에요,
그런 논지면 족보에 휘갈긴 선조 미화도 죄다 사실이어야 해요,
어디서 포스트댓인가 뭔가 하는 양반이랑 똑같은 논지로 복붙 하는데 그러는거 아니에요, 좀 생각이라는걸 하고 옮겨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