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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3 2016-04-03 00:51:5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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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고 나발이고 필요 없어요, 결국 눈가리고 귀막고 빼애액 거리며 자기가 뭔 말하는지도 모르고 뭘 가져온지도 모르고 그냥 네가 싫으니 틀린거다의 반복인데 뭘 더 말합니까, 그냥 정신승리의 반복이고 이기겠다고 부들거리다가 시다가 이제와 쿨한척 자기 합리화나 반복하며 상대에게 네가 주장하는건 뉴라이트니 뭐니하는 헛소리나하며 사과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내뱉으면 아 그러세요? 라고 누가 받아들일거나 같나요?

참 이 뭐....지난 번에 제게 하신 병신가튼 소리라는 말을 그대로 돌려드려야 겠네요.
6402 2016-04-02 11:43:07 1
혹시 한국 전쟁사에서 공중전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새창]
2016/04/02 01:29:31
Mig-23는 70년대에 나온 기종입니다, 한국 영공에서의 전투는 아무리 IF 를 붙인다 할지라도 있을수가 없지요.
6401 2016-04-02 11:40:40 0
6·25전쟁은 스탈린이 모택동 잡으려고 일으킨 것 [새창]
2016/04/02 11:30:09
본문에 동의 할수 밖에 없는게 중국은 자주적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으나 오랜 내전으로 인한 인적, 물적 자원의 고갈 등의 문제에 따른 경제 침체,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던 동북 방면의 산업 플랜트의 붕괴,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외부의 지원 그 것도 장개석을 밀어준 미국이 아닌 소련의 지원이 정말 간절하게 필요했지요,

물론 소련의 입장에서 본문 그대로 중국은 믿을수 없는 불안한 파트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하기에 코민포름의 가입 거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우려한 양자강 분단론과 같은 이간질을 감행했고, 거듭된 대만 정벌에 대한 지원 요청을 한국 전쟁 이후로 미루기까지 했지요., 그러한 상황이기에 소련의 신뢰를 회복하고 의심을 일소하며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지원 등을 얻기 위하여 한국 전쟁에 참여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6400 2016-04-02 11:30:32 1
혹시 한국 전쟁사에서 공중전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새창]
2016/04/02 01:29:31
신식 전투기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언급드린 대화도 공중전 당시에 F-86으로 구성된 3개 비행대대와 TU-2 폭격기의 호위 임무를 맡은 Mig-15 편대 간에 교전이 있었습니다, 미그 엘리 일대에서는 비단 F-86 뿐만 아니라 F-80을 비릇한 글로스터 미티어 같은 전투기들과 Mig 기 간의 교전이 미그 엘리라는 이름 그대로 시시때때로 빈번했고 말이지요, 아 물론 제트기만 공중전의 주역이었던 건 아닙니다, 아직까지 프롭기도 쓸만은 했지요.
6399 2016-04-02 11:08:35 1
혹시 한국 전쟁사에서 공중전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새창]
2016/04/02 01:29:31
한국 전쟁 당시에 비단 미군뿐만 아니라 호주를 비릇한 각국의 파일럿들이 대화도 일대를 비릇하여 미그 엘리라던가 곳곳에서 공중전을 벌였습니다, 애시당초 바우트 원 프로젝트가 무엇을 목적으로 실시되었고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만 보더라도 명확한 사실이지요.
6398 2016-03-31 17:45:23 0
주일미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한국에 대한 책임은 없나요? [새창]
2016/03/31 14:57:17
문제는 TF 스미스를 파병하려고 보니 이미 서울 방어선은 괴멸당한 상황이라 오산 북방 죽미령에 정석대로 방어전을 펼쳤는데 문제는 이 양반들이 지연전 및 철수 작전에 대한 훈련이 부족했으며 T-34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정확한 전력 파악이 불가능했고 정석대로 방어전을 펼쳤으나 포위되어 괴멸당했다는 겁니다.;
6397 2016-03-31 17:40:53 0
주일미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한국에 대한 책임은 없나요? [새창]
2016/03/31 14:57:17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보기에는 당시 24사단 파병이 결정된 시기를 봐야지요, 당시에는 한강 방어선이 위태롭게나마 유지되던 상황이었고 그러한 상황속에 지상군 파병이 결정되자 우선적으로 가장 빠르게 전개될수 있는 전력인 8군단 예하의 24사단을 보내기로 하였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그보다 먼저 항공 수송을 통해 전력을 전개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하였으며 이에 24사단 예하 21연대 소속 1대대를 중심으로 TF 스미스를 우선적으로 보낸겁니다, 그 것만 보내려고 한게 아니라 말입니다.
6396 2016-03-31 16:59:48 0
주일미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한국에 대한 책임은 없나요? [새창]
2016/03/31 14:57:17
TF스미스를 보낸 것은 미군이 한번 얼굴만 보이면 오줌지리고 튈 거라고 믿은게 아니라 말 그대로 본대가 오기전에 가장 빠르게 투입될수 있는 예컨데 즉응 부대의 성격이 큽니다, 무엇보다 상대 전력에 대한 오판도 무시할수 없고 말이지요, 이는 뒤이어 투입된 미 24사단과 항공 전력의 편재만 보더라도 분명한데 이를 두고 오만함이라 부를만한 성격으로 점철된 임무인가 아닌가를 물으신다면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 물론 상대 전력에 대한 이해와 제대로 된 판단 없이 기존의 전략과 정보를 고수한 탓에 몇 시간 만에 허무하게 무너진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이지요.
6395 2016-03-31 15:05:54 0
주일미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한국에 대한 책임은 없나요? [새창]
2016/03/31 14:57:17
주일 미군이 북한군을 압도하던 상황이 아닙니다, 제대로 정비는 커녕 완편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경전차들이 주력 전차로 운영되는 한편 대전차 전력 역시 매우 열악한게 현실입니다, 세심하고 책임감이 있더라도 수년에 걸쳐 전략을 증강해온 북한군에 비하자면 군축에 박차를 가하던 현실에서 제일선의 소방수 역할은 무리한 일이지요.
6394 2016-03-31 08:54:03 3
한국전쟁의 최대패착은 [새창]
2016/03/30 23:32:35
근데 당시 상황은 정말 어떻게 할수 가 없습니다, 당시에 참담한 전력 상황을 보고도 벼랑끝 외교나 다를바 없는 행동을 반복하며 국지전을 이어나간 높으신 분들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넬슨이나 나폴레옹, 이순신 같은 기라성 같은 명장들이 오더라도 국공내전 당시 중국 군벌들 처럼 육탄 돌격 외에는 정말 답이 안나오는 것을 떠나 그냥 이건 뭐 어떻게 전력차를 극복할 방법이 정말 없습니다.

국군은 50년 기준으로 10만 여명의 병력중 2만 여명이 총기를 지급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총기를 지급받은 병력들 역시 완벽한 보급을 받았음을 감안할때 적게는 100여발 많게는 300여발의 총탄만이 배비되었고 대전차 화기라고 있는 것은 57mm 대전차 포와 2.36인치 대전차 로켓인데 다 모아봐야 2천여문 남짓일뿐이고 그나마 탄환도 부족한데다 당대를 기준으로 제대로 된 저항이 힘들정도로 구식인 전력입니다, 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보급이 인력 충원을 따라가지 못해 낙동강 전선에 가면 스탈린그라드 전투마냥 몇명당 총 한정에 나머지는 수류탄 몇알, 그도 아니면 개인당 총알 3발을 쥐어주고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넣어가며 전선을 유지하는 상황으로 나갑니다.

물론 당시의 미국이 이상적으로 그린 상황에는 적절한 수준인게 사실입니다, 세계대전의 반등으로 미국 자신을 포함하여 세계 각지에서 군축이 시작된 상황이고 한국에서 현재의 소규모 국지전 이상의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거라 판단할 근거가 없었으니 말이지요, 그러하기에 한국이 요청하는 소화기 수천정을 판매하는 것에도 소극적이었지요.

문제는 북한은 이미 수년전부터 세계 굴지의 기갑전력와 유수의 항공전력을 구축하고 각지에 보급 창고와 생산 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국적, 행적을 가리지 않고 인력을 끌어모으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북한의 전차병들의 훈련도나 전술 이해도 등이 소련이 원했던 수준이었다면 국군이 인력을 갈아넣어가며 필사적으로 전선을 유지 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망명 정부가 세워졌을 상황이었지요.
6392 2016-03-30 23:07:49 3
임진왜란때 일본에 잡혀간 기술자들의 현실 [새창]
2016/03/30 20:45:41
사실 이걸 뭐라고 하기 힘든게 귀국을 해봐야 신분 증명이 안되니까요, 호패도 없고 납치당할 정도면 이미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깡그리 뒤집힌 터라 호구 조사 결과도 안나올 상황이고 말 그대로 노비 이상 이하도 아니지요, 물론 배타적 사회성도 무시할수 없지만 철저한 신분제 사회라는게 그렇지요.
6391 2016-03-30 16:28:24 4
6.25 개전 초기 전개와 한국군에 대한 변호 [새창]
2016/03/30 12:07:47
특히나 소련군 출신자를 철저히 숙청하고 박해한 그 빈자리는 만군과 일본군 출신자들이 차지했으며 비단 공군 뿐 아니라 솔직하게 말해 요직마다 없는 곳이 없었지요.
6390 2016-03-30 16:26:20 5
6.25 개전 초기 전개와 한국군에 대한 변호 [새창]
2016/03/30 12:07:47
그리고 북한군에도 일본군 출신자는 상당수 존재합니다, 아예 김일성 전집에도 북한 공군의 창설에 일본군 파일럿과 정비 기술자 엔지니어등이 깊숙히 관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걸오.
6389 2016-03-30 16:18:52 2
6.25 개전 초기 전개와 한국군에 대한 변호 [새창]
2016/03/30 12:07:47
사실 부대 규모로 보자면 수개 사단을 편성할 정도고 부사관이나 장교들 역시 무시 못할 전공을 세우는 등 이 들 '조선 의용군'은 적잖은 비중을 차지 했습니다만 하필 지도자가 김일성이라 권력 다툼 끝에 철저히 물갈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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