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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10: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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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서를 해야 해! 괜찮은 독서라 불리는 걸 해야 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 자체가 압박이 되고 부담이 되어 돌아오고 말아요.
판타지를 통해 흥미를 느끼는 것도 당연히 '독서'의 일부분이라 여기고, 성인독서급의 고급 도서를 읽지 않더라도 그게 님의 삶에 효용이 있다면 충분히 참다운 독서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 님의 뇌는 고등 사고를 하기보다는 푹 쉬고 싶어 하고 가벼운 유쾌함과 휴식을 원하는 거잖아요? 억지로 힘든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꼭 어려운 교양책을 읽어야 멋진 독서는 아니라고 봐요. 님은 그 순간 스스로가 겪고 있는 "문제 상황"을 그 독서로 해결한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만일 이 이상을 원하고, 님의 삶에서 어떠한 '문제'들, 아니면 알고 싶어하는 무언가들, 탐구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거기에 관련된 책이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질문해 보고 찾아 봐 주셔요. 아마 영역과 문제를 분명히 하신다면 그에 대한 추천을 찾기도 쉬워질 거예요.
감성을 촉촉하게 충족하고 싶다는 욕구도 좋을 것이고, 시니컬해지고 싶다는 말도 좋을 것이고, 요새 법상식이 부족해서 걱정된다는 욕구도 좋을 것이고, 음식 종류가 궁금하다는 궁금증도 좋을 거예요. 요즘 시사뉴스 넘쳐나는데 왜 여기까지 왔나 궁금할 수도 있을 거고, 사극에 관심 있어서 역사가 궁금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악 장르에 대한 탐구를 하고 싶을 수도 있어요. 학교에서 배운 소설가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할 수도 있고, 왜 책 읽기를 그렇게 가르쳤을지 궁금해할 수도 있겠죠.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정말 강렬하거나, 고전이 뭔지 궁금하니 접근해 볼까 한다면 그쪽으로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찾아볼 수도 있을 거고요.
더욱 근본적으로 님의 이 글처럼 독서가 뭐길래 날 이리 어렵게 하냐는 독서론 쪽도 궁금해질 수 있을 것이고, 왜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지 자체에 대한 탐구도, "독서 잘 하는 법" 자체에 대한 독서법의 궁금증, 독해력 향상법조차도 책으로 답을 찾고자 한다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책은 인터넷에서 찾기 힘든 수준의 깊이 있는 지식까지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담긴 지식의 보고니까요.(+ 마침 지금처럼 독서에 대한 의문이 많으실 때, 윗 댓글들에 있는 책들을 찾아 보거나, 그게 어렵다면 더 쉬운 책으로부터 접근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책이 아니라면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 천천히 접근해 가는 것도 좋아요. 요새는 참 다양한 미디어와 인쇄매체가 통합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입문용으로도 미디어 쪽이 좋을 때도 많으니까요. 책을 소개하거나 설명해주는 사람들도 많고, 재미있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사람들도 많고, 강연도 작가와의 만남도 커뮤니티도...찾고자 하면 세상엔 책 읽기 어려울 때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도움닫기들이 님의 손을 기다리고 있어요. 앉은 자리에서 읽는 것만이 독서가 아니에요. 읽기 힘들 때 마주치는 각종 머릿속의 문제들과 그걸 해결하려는 노력들까지 다 합쳐서도 독서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책' 자체와 독서가 아니라 님의 문제나 욕구를 해결하고,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보겠다는 그 생각 자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 독서와, 그 독서를 잘 하고 싶다는 욕구를 해결해 줄 여러 방안들이 놓여 있을 수 있겠죠.
그리고 이런 식으로 독서 과정 안에서 또 새로운 궁금증, 새로운 욕구, 문제가 발생하면 다음 책, 더 깊이 있는 책으로 자연히 옮겨 가겠죠. '책'이라고 뭉뚱그리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수많은 전문 분야들은, 각각의 기초 지식이나 연습 없이 처음부터 어렵게 가는 건 고단한 일이 될 뿐이에요. 근육을 연마할 때 기초 운동을 한 다음에 근육 운동이 가능하듯, 책을 읽는 뇌도 기초를 다지지 않으면 받아들여 주질 않아요. 그 책이 어렵고 내용이 눈에 안 들어 온다면 아직 그 책을 읽을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거니까, 님이 잘못한 게 아니에요. 다만 부닥친 이 "이 책을 읽기 힘든데? 기억에 안남는데?"라는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안을, 일단 왜 안 읽히는지 원인을 확인해 보고, 더 쉬운 책이나 기초 지식들, 아니면 더 나은 독서 전략에 대한 책이나 조언, 미디어들을 참고해볼 때가 찾아왔을 뿐이에요.
독서는 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님이 부딪치는 문제들의 훌륭한 해결법이 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님이 원하시는 그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고, 그 욕구 안에서 책을 찾아 쥐어 보세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반드시 독서가 될 필요가 없지만, 만일 '독서'라는 방법이 꽤 괜찮은 선택지로 느껴질 때에 부담 없이, 쫓긴다는 압박이나 강요 없이 자유의지로 님이 선택하고 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그 책처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위대한 책은 없을 거예요. 타인에게 필요했거나 타인이 궁금해 하는 것들, 유명한 것을 따르는 것보다는, 님 스스로의 마음에서 욕구에서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 책들은 어떤 책이든 간에, 어떤 난이도이든 간에, 어떤 분야든 간에... 분명히 님의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