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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5 13: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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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낀 바와는 많이 다르네요.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또한 명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는 케빈을 낳고 나서 에바의 행동이 조금 과하기는 했지만 그 절망과 힘듦에 공감이 갔어요. 이 땅의 많은 엄마들이 겪는 산후 우울증의 증상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에바는 케빈을 사랑하지 않았죠.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증오하지도 않았어요.
묵묵히 괴롭고 힘들지만, 사랑이 피어나지 않지만 그녀의 말대로 '익숙'해졌죠. 그리고 자신의 책임을 다 했어요.
그런데 케빈이 보통의 아이가 아니었죠. 만약 이것이 에바의 양육태도의 문제였다면 실리아가 그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랄 수 없었을 거에요.
케빈은 일부러 엄마를 괴롭히고 고립시켜요. 똥을 싸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를 아래로 내려다보죠. 1부터 50까지의 수를 다 세고 엄마의
말도 모두 알아듣는 아이면서 일부러 엄마를 힘들게 해요. 엄마의 솔직함(내동댕이 쳐서 팔을 부러뜨린 사건)을 마주한 뒤에도 케빈의 태도는
소름끼칠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합니다. 울음도 보이지 않아요. 두 눈에 가득 증오만 품고 있죠. '작은 악동' 이라고 귀엽게 표현 할 수는 없는
모습이에요. 아빠에게는 일부로 표정을 꾸며내어 환하게 웃고 같이 놀이도 해요. 엄마에겐 공조차 되돌려 주지 않으면서요.
감독은 이런 장면들을 아주 신경써서 보여주고 있고, 전 이 장면들을 통해 케빈의 마음에 공감하기 보다는 케빈은 왜 이렇게까지 악해진걸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케빈과 에바는 붉은 색으로 연결되어 있죠. 붉은색은 케빈의 죄이고 그런 케빈을 낳은 어머니의 원죄라고 느꼈어요.
케빈의 죄 때문에 에바는 얻어맞아 입술이 터지고, 카트를 버리고 빨간 토마토스프 캔 뒤에 숨고 빨간 페인트로 집을 공격당하죠.
에바는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요. 그저 감내하죠. 전 이 장면들을 담담하게 담아낸 감독이 놀라웠어요.
단순히 에바의 잘못이다. 아니다 케빈이 악마같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단정짓지 않으려는 것 같았거든요.
마치 <엘르>를 보는 것 같은 강렬한 충격을 받았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교과서 속 고전작품처럼 확고하지 않아서
다양한 생각과 혼란을 야기했거든요.
여러모로 너무나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영화였고 결말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게 내리게 되는 좋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