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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15: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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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과 전문의 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또한 피차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굳이 딴지 걸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좀 잘못된 정보가 유통될까 싶어서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한약이 간에 안좋다, 그렇지 않다는 문제는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귀납적으로 증멸할 수 없습니다. 수십명, 많으면 수백명의 환자 케이스를 가지고 혹은 더 많은 케이스를 가지고 말씀하셔도 증명은 안됩니다. 그런 증명은 예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논박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본 환자, 인턴, 레지때 소화기병동에 한약먹고 급성간염이 왔던 환자만으로도 너무 쉽게 그 반대가 증명이 된다는 것이죠.
세상에 한약 말고도 간독성이 없는 약은 보기 힘듭니다. 거의 모든 약이 간독성을 가지고 있죠. 모든 약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약 혹은 음식에 들어있는 알칼로이드, 아미노산 등은 간에서 대사되어 신장이나 담즙으로 배출이 됩니다. 그러한 연역적 작용이 자명한데 어떻게 한약이 간에 안전하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위에 상기하신 것처럼 심지어 녹즙도 간에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녹즙보다 더 농축시킨 한약이 더 안전하다고 할만한 근거가 있을까요?
사실 하고 싶은 말씀은 이것일 것입니다. '의사들이나 약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약을 먹고 간이 망가져 버리는 경우는 많지 않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볼 수 있으며, 상당부분이 오해다'
이 말은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약을 처방할 때 이 정도 약에 환자분 간기능이면 위험하다 혹은 안전하다는 예측을 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약도 그렇게 예측이 쉽게 가능할까요? 현대의학에서 쉽게 마주치는 일이 저만 약을 처방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의원, 병원에서 처방받아서 약을 드시면서 저한테도 추가로 약을 타는 경우도 있죠. 그런 경우 다른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보고 간독성, 신독성에 대한 예측을 합니다. 한약도 다른 한의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보고 그런 예측이 가능할까요?
사실 간독성에 대한 오해보다는 한의학 전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게 더 답답하신 것은 아닐까요? 안타깝지만 한의학이 의학의 주류에서 빗겨나 보조적인 차원에서 소모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의학이 필수적이라면 한약에 간독성이 있든 말든 상관없겠죠. 간독성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한약을 먹을 테니까요. 가족이 암에 걸리거나, 뼈가 부러지거나, 당뇨가 생기거나, 폐렴에 걸리거나, 류마티스 질환이 생기거나, 우울증이 생기거나, 치매에 걸리거나, 조현병이 생긴다면 한의학에 의존하실까요? 현대의학에 의존하실까요?
가혹할지 모르지만 한의학이 존재의 의미를 찾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둘 중 한가지의 방법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냥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의학의 보조적인 자리에서 의미를 찾고 운신의 폭을 넓히든가, 지금이라도 의학의 주춧돌로 일어서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연구에 연구를 더해서 학문을 발전시키든가 하는 것이죠. 실제로 현대 철학은 과거 정량적이고 객관주의에 빠진 과학에 어느정도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 같습니다. 한의학이 이 부분에서 자신의 역할을 더 크게 키울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