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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3 23: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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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충이란 단어가 있기 전에는 우리는 엄마들을 여러가지로 볼수 있었어요
서툰엄마도 있고 엄격한 엄마도 있고 덜렁대는 엄마도 있고 싸가지없는 엄마도 있고 이기적인 엄마도 있고 몸이 약한 엄마도 있었죠
근데 맘충이라는 단어가 생긴 뒤로부터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맘충' 아니면 '맘충아닌(=개념있는ㅋㅋㅋ) 엄마' 둘로 나뉘는게 문제입니다
김치녀랑 다르다구요? 한남충과 다르다구요?
김치녀의 반댓말은 개념녀이고, 이거는 정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유치할정도로 뻔한 클리쉐인 성녀vs.악녀 프레임입니다
모든 여자는 성녀 아니면 악녀, 엄마 아니면 창녀라는 생각인거에요
김치녀라는 단어가 있기 전에는 좀 바보같은 여자도 있었고 얌체같은 여자도 있었고 돈많은 여자, 돈없는 여자, 성질급한 여자, 마음약한 여자 등등 많은 여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볼수 있었어요
김치녀라는 단어가 생긴 뒤로는 많은 남,녀들이 여자를
볼때 '개념녀(성녀)인가 아닌가,' 즉 일베의 남자들이 정한 기준으로만 여자를 보게됐고요. 세상에는 밥먹을때 돈을 내는 여자와 안내는 여자, 명품을 쓰는 여자와 안쓰는 여자,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만 있을 뿐이죠. 여자를 볼때 '저여자 밥먹고 돈 내나 안내나 보자,' '저여자 가방 얼마짜리 들었나 보자' 이런식으로 본다는거죠. 김치녀라는 말에 쫄지 말고 걍 생긴대로 살았음 좋겠어요. 그 개념녀라는게 대체 누구 좋자고 개념녀인지ㅋㅋㅋ 밥값을 내더라도 개념녀가 되기 위해서라는 그런 같잖고 소심하고 쫄스러운 이유에서가 아니라 내남자 입으로 밥들어가는게 좋아서, 걍 오늘 한탁 쓰고싶어서 내는 그런 여자들이 많아졌음 좋겠고요.
엄마들도 마찬가지에요 엄마도 사람인데, 세상에 당연히 이기적이고 이상한 여자들 중에도 엄마가 되는 여자들이 있는게 당연하고요. 근데 맘충이란 단어는 우리가 엄마들을 볼때 '저여자 애 우는데 달래는지 어디 한번 보자,' '저여자 애 우는데 식당에서 데리고 나가는지 보자' 라는 식으로 지극히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그사람들을 보게한다는데 문제가 있어요. 수많은 '맘충 아닌' 엄마들이, 본인이 맘충이 아님에도 맘충이란 말을 불편해하고, 수많은 '김치녀 아닌' 여자들이 김치녀란 말에 반발한것은, 본능적으로 그 말이 엄마들, 여자들을 특정한 행위의 감옥에 가두려고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혐오단어 문제는 밥값을 내는게 맞냐 아니냐, 애가 울때 타이르고 데리고 나가는게 옳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상식을 스스로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실천할 "자유"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하고, 선하고 의로운 행동도 내 선택에 의해 하고싶어하지, 누가 시켜서 하고싶어하지 않아요. 맘충. 김치녀 이런 단어는 '너 내가 원하고 나에게 편리한 특정 행동 양식을 보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마녀라고 매장 당할거니까 알아서 처신해' 라는 협박이구요.
이런 주제에 대해 싸우는거 싫은데 딱 한번만 긴 댓글
남깁니다. 혐오 단어 안 쓰는게 젤 좋지만요,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 감옥에 안 갇혀주면 돼요.
김치녀니 맘충이니 하는 언어의 감옥을 만들어두면 여자들, 엄마들은 착한여자, 이쁜여자 소리 듣고 싶어서 열심히 그 기준에 맞추려고 하거든요. 남자에게 밥 사는거 좋고, 애기 교육 엄격히 시키는거 좋은데 다만 김치녀 소리 듣기 싫어서, 맘충 소리 듣기 싫어서 그러는것만 아니라면 돼요. 걍 'ㅋㅋㅋㅋㅋ그래 나 김치녀야. 점심 김치찌개 머글래?' 이러고 말아버리는 분들이 많아졌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