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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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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경험을 공유합니다.
87년 6월항쟁 이후, 비로소 체육관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접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나 진정한 봄은 아직 멀리 있었습니다. 국민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노태우가 되었으니까요.
88년 5월 한겨레가 창간되었지요. 그때의 눈시울 뜨거웠던 감동을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진정한 의미의 봄을 원했는지... 70년대 박정희 정권과 80년대 전두환 신군부시절 해직기자들과 국민모금으로 시작된 한겨레를 돕는 방법은 구독뿐이었습니다. 적폐세력과 사주의 이득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혹세무민하는 조중동(실제 파워는 조동중)에 대항할 만한게 경향, 한국? 정도였으니까요.
90년대 중반 IT의 발전과 김대중 대통령의 벤처기업특별법에 의해 한국의 IT가 급성장합니다. 2000년 2월 오연호와 시민기자 바탕으로 오마이뉴스가 창간되죠. 조중동 거대신문의 사설은 늙은이들 선동하기 딱 좋은 도구인데 막을 방법이 없었죠. 인터넷신문의 의미는 직접 참여한다와 피드백이 있고 바로 확인할 수 있다죠. hani, khan, ohmynews, mediatoday까지... 하루에 한번은 꼭 봐야하는 글들이 있었죠.
2003년 수많은 압력과 흑색선전, 정몽준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참여정부가 탄생했습니다. 한동안 기뻐했고, 이제 진짜 시민 민주주의라는 생각과 조중동 아웃, 한경오 오케이라는 타성에 젖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 기간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죠. 몇년간 진행되던 것인데 한겨레의 논조가 바뀌었음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2008년 한겨레-삼성 싸움이 있을때까지만 해도 한겨레를 응원했습니다. 당연히 삼성이 나쁜 놈들이었고 아직 국민신문이라는 타성이 있었죠.
2009년 4월 한겨레는 사설에서 노무현의 속죄를 요구했습니다. 저는 이날 20년 가까이 함께했던 한겨레를 절독했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느끼고 있었으나, 80년대와 90년대를 생각하면 결별하기가 힘들었던 것이죠. 벌써 결별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그리고 한달 후, 2009년 5월23일 노통이 서거합니다. 저는 이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노통 서거 전후, MB든 어떤 조작원이든 학습에 의해 인터넷의 힘을 확인하고 여러 형태의 파워게임을 진행합니다. 댓글부대는 말할 것도 없고 방송장악에 들어가서 성공했죠. 디시에서 일베가 분화되는 과정도 그렇고 네이버의 댓글과 추천 흐름을 보면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항상 여러가지 부족해도 정의로운 진보가 부패한 보수 보다 앞섰는데, 정동영은 정의롭지도 똑똑하지도 못했습니다.
2012년 우리의 반격이 시작되었음에도 말도 안되는 독재자의 딸이 당선됩니다. 처음으로 개표부정 의심했습니다. 한겨레는 2009년 노통서거 전에 걸러졌습니다. 순실정권 때 경향, 오마이, 미디어오늘까지 거르게 됩니다. 현재 한국에 진보언론 다 죽었지만, 진보 커뮤니티는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한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진보죠. 요즘은 팩트라고 주장하는 기사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관련 내용을 연관검색하고 댓글과 피드백까지 함께 보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