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나왔던 또 다른 버젼이 있었어요. 개미는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농산물 수입개방(우르과이 라운드)으로 가격이 폭락해서 망했고, 배짱이는 기획사 길거리 캐스팅 받아서 음반 내고 가수로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요즘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죠. 개미는 농산물 산지가격 폭락으로 밭 갈아엎고, 배짱이는 노래 경연대회 출전하고 대스타 되었다는~~
지난 총선유권자 수는 전체 4,400만이었습죠. 그리고 탄핵청원 100만이 넘었으니 44분1을 넘겼븝니다. 작은 숫자라고 치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닌 것이죠. 탄핵청원에 동의한 사람들을 적극 투표층 중에서 적극층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동의자들, 즉 익명의 동의자들은 그보다 몇배 몇십배 더 많습니다. 모두가 광장에 모인다고 상상해보세요. 무서울 것입니다. 이게 굥가는 이게 두려울 것입니다.
형사소추는 위법성을 따지는게 당연한데, 탄핵소추는 위법성이 아니라 직무적합성이란 말이지. 박근혜 탄핵 인용도 헌법수호의지가 없어서 직무를 유지하는 이익보다 파면하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인용결정이 난 것이죠. 위법성이 아니라 직무적합성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인데, 왜 위법성을 들고 나오냐? 바로 지지충들 결직시키고 탄핵 반대 여론을 이끌어 내려는 정치적 술수일 뿐이라는 거~~
제가 보기에는 구분을 못해서라기 보다는 선동을 위해서 사실을 왜곡해서 발표하는 것이죠. 괴벨스처럼요. 왜냐?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듣고싶고 믿고싶은 말이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한동훈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 시작하면 진흙탕 정치싸움으로 변질되고, 그의 지지층은 더욱 결집할 것입니다.
폐업을 조력자살에 비유하신 것은 과한 것 같습니다. 폐업을 해서 신용불량자가 되더라도 회생절차라는 것을 통해서 또다른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도 있을 것이구요. 그러나 삶을 마치면 다시 되살릴 수가 없는데, 어찌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모든 기회와 희망은 살아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구요. 그래서 비유는 조력자살이 아니라, 다른 방식에 비유하시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