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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2016-01-19 15:02:23 0
일제시대 경제성장에 대한 통계의 문제점. 사족 첨부. [새창]
2016/01/18 23:56:14
개별숫자가 틀릴수도 있고 장난칠수 있다는걸 자체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1~2년이나 10년정도가 아니라 35년간 장기프레임을 두고 성장률을 본겁니다.

35년간 성장률 평균이 거짓이라고 주장하시는건가요?
그런 음모론은 분명한 근거를 제시해야 납득이 가능합니다.
253 2016-01-19 01:27:22 0
일제시대 경제성장에 대한 통계의 문제점. 사족 첨부. [새창]
2016/01/18 23:56:14
45년 제외가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을 반영하여 추가한 자료입니다.
보시다시피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의 경우 대동아공영권에 속했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45년에 갑작스런 GDP하락을 겪는것을 감안할때, 해당 기간 통계가 불비한 관계로 비교가 어렵습니다.

45년 수치까지 있는 국가들을 비교하면
인도 : -0.2% / 일본 : 0.8% / 조선 : 0.4% / 대만 : -2.3%입니다.
비교가능한 선에서 말씀드리면 인도와 대만보다 분명히 나은 성적입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자료가 신뢰가 가능하냐는 물음에는 따로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상의 이유로 조선총독부가 조선식민지의 경제통계를 조작할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명확히 입증해야하고
(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면 그만큼 더 많은 세수를 기대하게 됩니다. 당연히 조작한 통계에 맞추어 없는 세금을 만들어내야 되구요. 인구 천만이 넘는 지역에서 그런 조작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무리를 해야하는지는 굳이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
더불어 조작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이건 일제가 낙랑군 치소를 조작하여 해당지역에 수만건 이상의 유물과 유적을 이식했다는 주장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251 2016-01-18 23:50:29 3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인당 GDP가 모든걸 말해줄수 없는 지표라는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니계수같은 그런걸 말해주는 지표가 있고, 실제 국가구성원의 생활수준을 측정하기 위해서 인당 GDP/지니계수/계층별 재산분포 같은 복합적인 방법을 사용하구요.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그냥 알아서 잘 살아지나요?
원래 다른예기입니다.
250 2016-01-18 23:41:23 3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그리고 한국 GDP 통계 신뢰도가 154개국 중 31위라는 소스를 적어주세요.
31위라서 얼마나 틀리다는 말인가요? 그리고 "한국" GDP통계가 안맞으면 허교수님 인용하신 해방후 한국 GDP의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거죠.

오히려 해방전 GDP는 한국정부가 작성한적이 없습니다. 그건 기본적으로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자료에요.
249 2016-01-18 23:38:37 4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크게보이려고"가 아니라 연평균 2%와 연평균 10%를 이어붙이는것 자체가 잘못된 일입니다.
그 두 시간 프레임을 붙이면 연평균2%의 디테일이 모두 뭉개지죠.

일제시기 식민지조선에 경제성장이 있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동시대 다른 식민지국가나 다른 국가랑 비교를 하는게 맞죠.
248 2016-01-18 22:53:22 1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https://www.i815.or.kr/media_data/chong_new/e0017/e0017_19.htm
만주시장을 타겟으로 한 방직업투자가 있기는 했지만 비중상으로 20% 이하라서 그렇게 큰 역할을 했다고 하기는 어려울듯 합니다.
35~40년사이에 보이는 경제성장은 시기로 봐도 당시 비중을 봐도 군수경제(화학공업을 중심으로한) 중심이 제일 큰것으로 보입니다.
247 2016-01-18 22:38:53 0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30년대 식민지 조선 경기는 중일전쟁(37년발발)을 대비하여 일제가 한반도북부에 공장과 광산설비에 집중투자한것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봅니다.
246 2016-01-18 20:57:48 5
(최종) 일제시대 근대적 경제성장 논의 결과 [새창]
2016/01/18 20:22:20
근대화수준이 다르니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이 나오면 "매우 선방"한거라고 할수 있겠죠.
애초에 1910-45년간의 경제성장을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해방후의 한국이 아니라 동시기의 식민지국가들입니다.
245 2016-01-18 20:37:43 5
(최종) 일제시대 근대적 경제성장 논의 결과 [새창]
2016/01/18 20:22:20
대다수 조선인들이 부의 분배에서 소외된점은 이미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런 논리면 6~70년대 대한민국은 아무런 경제성장을 못한게 분명합니다.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농민들의 그 과실에서 소외되었으니까요.
244 2016-01-18 20:34:55 13
(최종) 일제시대 근대적 경제성장 논의 결과 [새창]
2016/01/18 20:22:20
반론 붙입니다.

언급하신 그래프는 허수열교수가 본인의 논문인 1945년 해방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서 언급하신 것입니다.
https://www.google.com/url?sa=t&rct=j&q=&esrc=s&source=web&cd=2&cad=rja&uact=8&ved=0CCUQFjAB&url=https%3A%2F%2Fwww.i815.or.kr%2F_prog%2F_board%2Fcommon%2Fdownload.php%3Fcode%3Dresearch_thesis%26ntt_no%3D90415%26atch_no%3D12&ei=tJhcVfXkBObHmwWYzoDwBA&usg=AFQjCNGdXv7qO6utKxm8fgDdhXyvDHxppg&sig2=G31q0ewiHGMfqcMPyxGKUw

1910-45년 사이에 연평균 성장률이 2%대이고 7~80년대 연평균 성장률이 10%가 넘습니다.
둘을 붙여 놓으면 저렇게 보이는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왜 다른 시간 프레임을 비교하나요?

1910-45년기간사이에 미국/일본/영국/프랑스등의 여타 선진국가의 경제성장률과 비교할때(1~2%사이)
조선이 더 많이 성장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성장을 했다고 했지 "고도성장기"처럼 성장했다고는 아무도 안했습니다.
그리고 수탈을 위해 한반도에 투자한 일본에 "고마워해야할" 아무런 이유도 없구요.
243 2016-01-18 20:27:57 8
식근론에 대한 개인적인 정리 [새창]
2016/01/18 16:43:56
뭘 포기하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론을 해주시면 되는 문제 아닌가요?
242 2016-01-18 20:26:47 6
식근론에 대한 개인적인 정리 [새창]
2016/01/18 16:43:56
허수열교수님이 근대화나 자본주의화 이런 용어를 안쓰신것 맞는것 같습니다.
아래처럼 풀어서 쓰셨죠.
http://www.peoplepower21.org/Research/603946
참여연대가 발간하는 잡지인 시민과 세계에 허수열교수님이 기고하신 내용입니다.

식민지시대에 조선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은 각종 통계를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자본·노동·토지 등의 생산요소의 투입량이 늘어났고, 일본으로부터 많은 선진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철도·도로·항만·통신 등의 사회기반시설도 크게 확충되었다. 나아가 근대교육이 확대되고 기술자나 숙련노동자의 수도 증가하였다. 시장경제와 금융업 및 유통업도 근대화되고 발전되었으며, 각종 사법제도나 행정제도에서도 상당한 진보가 있었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결과는 산업생산의 상당히 큰 증가로 나타났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1022003
허수열 교수님 저자인 조선초기의 농업에 대한 소개의 일부입니다.

허 교수는 일제가 총칼을 앞세워 농민들을 탈취했다는 ‘원시적 수탈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어난 ‘구조적 수탈’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게 토지와 자본이 몰리자 생산 수단을 잃고 경제적으로 불리해진 조선인들은 수확물을 염가로 내놔 가난해졌고, 그 여파로 다시 토지를 팔고 염가로 쌀을 파는 악순환 구조가 확대 재생산됐다는 얘기다.
241 2016-01-18 20:25:01 3
식근론에 대한 개인적인 정리 [새창]
2016/01/18 16:43:56
경제학교과서로 많이 쓰이는 테일러나 맨큐에는 분명히 식근론이 안나오죠.
한국텍스트를 교과서로 쓰는 경제학과가 한국에 있나요?
240 2016-01-18 19:57:14 3
문익점이 목화를 밀수해서 들여오잖아요 [새창]
2016/01/18 19:46:0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3383508
이미 삼국시대에 면직물 생산/조공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실록에 기록된 문익점의 졸기를 봐도 밀수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냥 길가 목면나무에서 따왔다는...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706013_001
계품사(計稟使)인 좌시중(左侍中) 이공수(李公遂)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元)나라 조정에 갔다가, 장차 돌아오려고 할 때에 길가의 목면(木緜)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갑진년에 진주(晉州)에 도착하여 그 씨 반으로써 본고을 사람 전객 영(典客令)으로 치사(致仕)한 정천익(鄭天益)에게 이를 심어 기르게 하였더니, 다만 한 개만이 살게 되었다. 천익(天益)이 가을이 되어 씨를 따니 백여 개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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