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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2016-01-26 21:22:16 0
높은소리일수록 에너지가 세다는데 [새창]
2016/01/26 19:22:52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음압(sound pressure)이고 주파수(frequency)의 에너지는 진폭(amplitude)으로 측정합니다.
물리학공식으로 말하면 서로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소리의 주파수가 낮아도 스피커나 앰프로 음압을 높이면 강하게 느껴지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합니다 ( 높은 주파수의 소리라도 음압을 낮추면 약하게 느껴집니다 )
268 2016-01-24 21:22:18 0
열도의 아르바이트 시급.jpg [새창]
2016/01/24 19:46:39
2015년 동경 최저시급(888엔)에 야간할증수당(1.3배) 곱하면 1154엔 나옵니다. 최저시급보다 약간 더주네요 --;
267 2016-01-24 18:31:14 0
통증을 느끼는 감각을 일정 시간만 마비시키는 방법은 없나요? [새창]
2016/01/24 17:38:19
원래 역할이 각종 감각을 감지해서 뇌에 보내주는 것인데, 그 역할을 정지시키면 뭘 해도 후유증이 따릅니다.
본 기능을 못하게 하는 거니까요.
266 2016-01-23 15:43:55 1
인류는 농업정착 이전부터 전쟁을 했다 [새창]
2016/01/21 22:54:10
그리고 숫자를 정리해서 통계를 내는 정도는 경제사가 아니라 초등학교 산수에 속하는 영역입니다.
희귀분석이나 산포도 정도의 초급 통계조차도 시도한적이 없는데, 그 정도를 경제사로 인식하시면 역사게시판에서 토론에 임하시는데 필요한 기초개념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265 2016-01-23 15:41:32 1
인류는 농업정착 이전부터 전쟁을 했다 [새창]
2016/01/21 22:54:10
언급한 기사에는 계급같은 말은 한마디도 안나왔죠.
계급추정은 전쟁이라는 행위에 필요한 기능분화와 함께 해당시기가 중석기시대 말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해당유물과 유적은 기원전 10,000년 경으로 보이고, 해당 시기는 중석기시대(http://www.heritageinstitute.com/zoroastrianism/reference/ages.htm, 기원전 15,000년~기원전 10,000년) 말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중석기시대 말기에 계급분화가 이루어졌다는 추정이 있기때문이죠 ( https://books.google.co.kr/books?id=owcQi5nbv4wC&pg=PT43&lpg=PT43&dq=%EC%A4%91%EC%84%9D%EA%B8%B0%EC%8B%9C%EB%8C%80+%EA%B3%84%EA%B8%89&source=bl&ots=aw9Z1N3HOk&sig=0dtcJ6Gh7hJ6jlQRESTtwLR2XXk&hl=en&sa=X&redir_esc=y#v=onepage&q=%EC%A4%91%EC%84%9D%EA%B8%B0%EC%8B%9C%EB%8C%80%20%EA%B3%84%EA%B8%89&f=false, 중석기 시대에 속하는 일부 공동묘지의 묘들은 계급사회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

그리고 제가 경제사를 한다는 주장을 하셔서 제 글과 댓글을 살펴보았습니다.
댓글 264개 가운데 38개, 14%정도가 일제치하 경제성장과 관련된 글이고 그것보다 더 많은 숫자의 글을 통일과 관련된 글입니다.
글 17개 가운데 7개인 41%가 일제치하 경제성장 관련된 글임에 비해 35%정도의 글이 경제와 별관련없는 일반한국사 관련 글이구요.

글 비중을 봤을때 제가 경제사를 한다는 주장이 타당치 않아 보입니다.
보신글 기반으로 인상비평은 그만하시고 보다 명확한 증거를 찾아서 주장해주세요.

근거없이 인상비평으로 사람의 다양한 성향을 특정화하는건 인간이 자연현상을 패턴화해서 쉽게 인식하려는 오래된 석기시대 습관에서 나온것이니
현대에 맞게 사람이 대단히 복잡다단하다는 걸 고려하시고 그 오래된 악습에서 탈피하도록 노력하시는게 좋겠습니다.
264 2016-01-21 23:46:37 3
인류는 농업정착 이전부터 전쟁을 했다 [새창]
2016/01/21 22:54:10
노예로 부리는건 농업으로 인한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는 청동기이후로 보니, 노예를 부릴만한 여유가 없었겠죠.
데리고 와봐야 그들이 생산하는것보다 먹어치우는게 더 많을테니까요
263 2016-01-21 23:40:10 3
인류는 농업정착 이전부터 전쟁을 했다 [새창]
2016/01/21 22:54:10
그러네요. 몇십명단위 전투행위가 있었다는건 계급발생과도 연관이 되겠군요.
원시시대는 무계급으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TT
262 2016-01-21 18:37:45 1
개와 고양이의 귀여움을 합친 최강 생명체 등장 [새창]
2016/01/21 13:52:32
http://www.huffingtonpost.kr/2014/05/18/story_n_5346098.html
261 2016-01-21 17:51:53 1
[새창]
제대로된 수리경제관점의 뒷받침은 안되지만 그냥 참조삼아 보여드리면
1963-2000년까지의 근로가구 소득대비 지출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80년이전에 두 그래프가 겹친다고 해서 적자였던건 아닙니다. 그냥 80년이후와 비교해서 그 금액이 크지 않았던 것 뿐이구요.
이 그래프를 보시면 가처분소득이 확연히 가시적으로 드러난 시기가 1980년대입니다. 87년 노동대투쟁시기를 넘어가면서 그 차이(가처분소득)가 확연히 커지구요.

민간의 입장에서 "근대화"라고 받아들일수 있을만한 시기가 이시기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제도차원의 근대화는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시기부터 시작되었지만 (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당시 군부는 남한내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근대화된 제도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었습니다 ) 민간의 근대화 (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에 대한 공식적-제도적 인정같은 )은 80년대부터 시작된게 아닌가 합니다.

근로자가구에 가처분소득이 가시적으로 발생한다는건 먹고사는거 말고 정치나 사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것과 같은 말이니까요.
그 여유가 바로 제도적 근대화를 촉진시킵니다 ( 라는게 제 주장입니다 )

물론 근대화는 단순히 경제적여유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법과 제도, 사회/문화 모든 분야에 있어서 개인의 존재와 권리에 대한 인정, 법/제도 집행의 공식화 같은 여러가지 질적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저 단순한 지표로 보면 "근로자가구의 가처분소득의 가시적증가"로도 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260 2016-01-19 18:36:12 0
1910년대 경제성장 통계오류에 대한 분석(15년 11월 워킹페이퍼기반) [새창]
2016/01/19 17:10:01
논문 희귀분석의 논리가 궁금하시면 논문을 읽어보시고 저자에게 연락이라도 해보시지요.
전 그정도 경제학 전문가가 아닙니다.
259 2016-01-19 18:23:19 1
1910년대 경제성장 통계오류에 대한 분석(15년 11월 워킹페이퍼기반) [새창]
2016/01/19 17:10:01
http://www.naksung.re.kr/xe/200989#0 1910년대에 쌀 생산은 정체했나? 차명수(영남대),황준석(영남대)
경제사학 2005년 12월 59호 81페이지

258 2016-01-19 18:13:26 0
1910년대 경제성장 통계오류에 대한 분석(15년 11월 워킹페이퍼기반) [새창]
2016/01/19 17:10:01
http://kosis.kr/statisticsList/statisticsList_01List.jsp?vwcd=MT_ZTITLE&parentId=C#SubCont

257 2016-01-19 17:54:48 0
1910년대 경제성장 통계오류에 대한 분석(15년 11월 워킹페이퍼기반) [새창]
2016/01/19 17:10:01
당시 쌀 생산량을 정확히 추게할수 있는 통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겁니다.
수요탄력성역시 허교수님은 당시 조선에서 쌀의 가격탄력성이 매우 낮기때문에 가격이 올라간다해도 공급은 늘지않는다(생산증가가 없다)라고 하신것인데, 분석결과 가격탄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입니다. 당시 곡가가 올랐다는 사실은 통계로 증명되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갔으니 공급역시 증가했다는 결론이지요
256 2016-01-19 17:52:30 0
1910년대 경제성장 통계오류에 대한 분석(15년 11월 워킹페이퍼기반) [새창]
2016/01/19 17:10:01
허교수님 주장을 풀어서 설명드리자면
재래종에 비해 생산성이 높은 일본개량종이 수리시설이 미비한 1910년도에 보급되었다한들 단보당 수확고(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지 않았다라는 주장입니다. ( 그러므로 생산량 증가는 없었다 ) 그래서 일본개량종의 단보당 수확고가 재래종보다 높다는 통계그래프가 나온것입니다
255 2016-01-19 16:17:20 0
일제시대 경제성장에 대한 통계의 문제점. 사족 첨부. [새창]
2016/01/18 23:56:14
허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인용해드리겠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1202121085&code=960201
그는 연구소 측이 1910년대 초기의 GDP를 과소평가한 탓에 1910~1917년 사이의 GDP가 급속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고 여긴다. 연구소 측은 이 시기 우량품종의 보급으로 GDP의 핵심인 농업생산량이 급증했다고 보지만, 허 교수는 단보당 생산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오는 1910~1913년 사이의 우량품종 보급은 미미했다고 말한다.

허교수님의 지적내용은 1910년 전기의 GDP증가가 통계보다 낮다는 걸 말씀하신겁니다.
20~30년대를 언급하신게 아니구요.

허교수님이 일제통치 전반에 걸친 경제성장에 대한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여연대가 발간하는 잡지인 시민과 세계에 허수열교수님이 기고하신 내용입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Research/603946

식민지시대에 조선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은 각종 통계를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자본·노동·토지 등의 생산요소의 투입량이 늘어났고, 일본으로부터 많은 선진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철도·도로·항만·통신 등의 사회기반시설도 크게 확충되었다. 나아가 근대교육이 확대되고 기술자나 숙련노동자의 수도 증가하였다. 시장경제와 금융업 및 유통업도 근대화되고 발전되었으며, 각종 사법제도나 행정제도에서도 상당한 진보가 있었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결과는 산업생산의 상당히 큰 증가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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