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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8 11: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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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
전길남 박사. 1943년생. 일본 오사카 출생. 현 카이스트 명예교수.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한민국의 인터넷을 개발한 사람"
인터넷 명예의 전당 Global Connectors 부문 헌액자이자 전세계 인터넷 초기 개발자 30인에 속함.
재일한국인으로 오사카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우크라(UCLA)에서 컴퓨터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땀. 당시 세계 최초의 인터넷인 알파넷 개발책임자인 레너드 클라인락 교수 밑에서 수학했음.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서 해외활동중인 한국 학자들을 한국으로 초빙하는 정책을 진행중이었는데 이때 한국으로 넘어오심.
한국으로 들어온 전길남 박사에게는 '컴퓨터 개발'을 위한 전자기술연구소 컴퓨터시스템개발부장직이 주어졌지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수출을 해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고 함.) 전길남 박사는 컴퓨터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선진국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쉽게 접하고 교유하려면 네트워크가 꼭 필요하며, 미래에는 정보의 공유가 모든 학문 발전의 바탕이 될 것이다라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컴퓨터 개발과 함께 네트워크 연구를 병행함.
이후 전길남 교수는 1979년부터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네트워크 기술을 연구, 1982년 5월 15일 구미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사이에 국내 최초의 원거리 컴퓨터 네트워크 교신(SDN)에 성공함. 이로써 한국은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인터넷을 구축한 나라가 되었음.
당시에 미국은 인터넷을 군사기술로 간주(스카이넷을 이때부터 예견했던걸까?) 인터넷을 NATO의 일부 국가들과만 연결하고 해외에는 오픈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미국 인터넷에 연결하려고 하니 라우터 한대만 팔아달라' 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한국이 북한, 소련, 중국 등 공산국가들과 인접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인터넷 기술이 공산권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거부함. 그러자 전길남 박사는 라우터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대체한 방식으로 미국과 연결하는데 성공하고, 결국 전길남 박사의 이 연결 성공이 1986년 미국 과학재단의 '인터넷 망 전세계 공개' 결정의 시발점이 됨.
이후 한국의 네트워크 기술에 관심을 가진 일본, 중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길남 박사에게서 네트워크 기술을 배운 후 자국에 인터넷을 보급하기 시작했음. 또한 전길남 박사가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양성한 제자들이 한국 IT산업의 1세대가 됨. 대표적인 제자로는 송재경(바람의 나라, 리니지 개발), 김정주(현 넥슨 회장), 이해진(네이버 창업자), 허진호(국내 최초 인터넷 서비스 아이네트 사장, 전 인터넷기업협회 회장) , 박현제(하나망 구축, 솔빛미디어 대표), 나성균(네오위즈 대표, 원클릭 제작자), 정철(삼보컴퓨터 부사장) 등이 있음.
참고로 몇년 전에 모 언론사(뉴X스)에서 '길남 콘' 으로 적는 대형 실수를 저지른 적 있음. (근데 아직도 안고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