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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8: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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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축구를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열심히 시청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히딩크 재기용론에 대해선 글쓴님과 마찬가지로 신태용 감독을 믿고 그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이런 글을 올리면 엄청난 반박 댓글이, 그것도 전문적 지식을 갖춘 분들의 글이 따라 올라오겠죠.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였습니다. 멕시코와의 첫 경기. 하석주의 그림같은 왼발 선제골로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이때만해도 멕시코 정도는 해볼만 한 상대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얼마 뒤 하석주의 백태클로 인한 퇴장. 그 바람에 한국은 수비에서 우왕좌왕하며 연달아 세 골을 먹고 말았습니다. 1:3 패배. 충격적이었죠, 가장 승리 가능성이 높은 팀에게 역전패를 당했으니... 며칠 뒤, 네덜란드와의 경기. 압도적인 경기력과 체력을 앞세운 히딩크의 네덜란드에게 우리는 5:0 이라는 집단 강간(?)을 당했습니다. 당시 수비수였던 홍명보도 뭐에 씌인 듯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고 했죠. 이에 격노한 축구협회와 팬들의 엄청난 비난. 결국 월드컵 경기 중에 국가대표 감독 차범근이 경질되는 사태까지 맞게 됩니다.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 솔직히 경기력이나 그동안의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이기기 힘든 팀이었습니다. 그들은 멕시코와도, 네덜란드와도 비긴 그런 강팀이었으니까요. 그날의 경기는 솔직히 지면 죽는다는 생각인 우리 팀과 한국만 이기면 16강이 보이는 벨기에팀의 경기였습니다. 사람끼리의 싸움에서도 그렇죠. 체력이나 체격이 월등히 앞서는 사람일지라도 죽기살기로, 아니 죽어도 좋다고 덤비는 놈을 어찌하지 못하는 싸움이 있지 않습니까. 그날 우리팀의 경기가 그랬습니다. 뚫리면 죽는다는, 상대의 발목이나 무릎 하나 정도는 날려버리겠다고 태클을 해대는 우리 선수들. 만약 이대로 경기에서 지고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팬들로부터 날아온 돌에 맞아 죽느니 여기서 죽자며 덤벼대는 우리 선수들. 보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미친 척 달려드는 우리 선수들을 피해 벨기에는 간신히 두 골을 넣었고, 우리도 수류탄 하나 들고 적 탱크에 뛰어드는 6.25 용사처럼 덤벼서 결국 두 골을 넣어 2:2로 비겼습니다.
신태용으로 가느냐 히딩크로 가느냐 하는 순간에 웬 옛날 얘기냐고 하시겠죠.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을 이끈 차범근 감독님은 체력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국가대표팀을 엄청나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09.28 도쿄대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냈었죠. 월드컵 예전선이 다 끝나기도 전에 최종진출팀으로 대표팀을 키워내셨습니다. 마지막 즈음 서울에서 열린 한일전에는 Let's Go Together 라는 플랭카드도 등장했었죠. 기필코 이겨야만 월드컵에 나가는 일본과 이미 진출이 결정된 우리나라의 경기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월드컵에선 예선 2게임 패배의 책임을 물어 차범근 감독님을 경질하고 말죠. 당시에 고종수나 이동국 같은 어린 선수를 왜 뽑았냐는 얘기가 있는 등 사실 선수선발과 대표팀 운영에 대해 차범근 감독님과 축구협회는 엄청난 갈등을 안고 있었죠. 하지만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상대팀보다 한 수 위의 경기력과 전술로 수월하게, 너무도 당연하게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냅니다. 그 이전으로도, 그 이후로도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낸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어쩌면 자신들이 잘 못해서 진 경기인데 월드컵 도중에 감독 경질이라뇨. 자기들 때문에 감독님이 잘리신 겁니다. 선수들 입장에선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러웠을까요. 수석코치가 임시감독 대해을 맡았지만 겨우 이틀만에 그들의 경기력이 달라질리는 없습니다. 선수들은 그동안 자신드를 가르쳐주고, 지도해주신 차범근 감독님을 위해 자신들의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2:2 라는 결과가 나왔겠죠.
신태용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지 겨우 보름이 지났습니다. 아직 자기의 전술을 펼치기 위한 최선의 선수구성도 짜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졸전은 어느 정도 예측된 것이었습니다. 진출이 확정되고 난 뒤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이 짱깨쉐끼들이 원톱 공격수인 황선홍의 무릎을 아작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명단이 제출된 뒤라 경기를 뛸 수 없는 황선홍을 프랑스에 데려갈 수 밖에 없었죠. 경기도 뛸 수 없는... 지금 신태용 감독은 선수파악은 어느 정도 이뤄졌을 겁니다. 그동안의 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봐두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구성으로 최선의 전술은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단 몇 경기만에 슈틸리케 감독과는 확연히 다른 전수를 보여줬습니다. 위 댓글중에 보니 어떤 분이 올려주셨더군요.
2002년 이후로 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했습니다. 그러면서 K 리그보다 더 압박이 강하고, 뛰어난 전략과 전술 속에서 경기를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감독은 해외파를 찾습니다. 축협이 그토록 미워했던 차범근은 그 후론 단 한번도 국대 감독으로는 언급되지도 않죠. 연대 출신이 장악한 축협이라 고대 출신인 차범근이 싫었나 봅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도 세계적 감독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아주 오래 전 김정남 감독님이라고 계셨죠. 축협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대 감독을 시키기 위해 유럽으로, 남미로 보내 감독 교육을 시킨... 그 김정남 감독으로 인해 우리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1954년 이후 30여 년만에 처음으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장한 국대 감독님이었죠. 이제 우리도 세계적 축구감독을 키워야 합니다. 앞으로 월드컵까지 충분한 기간이 있습니다. 신태용 감독이 세계적 팀들과 평가전을 해가며 완성형 국가대표팀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지요. 이제 70에 접어든 히딩크도 세계적이고, 뛰어나겠지만 현대 사회는 경험이 중요하던 농경사회가 아닙니다. 최신의 정보를 탐구하고, 적용하며 발전시키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요. 그런 면에서 신태용 감독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신태용 말고 히딩크로 하기로 했다면 모를까, 신태용 감독으로 정한 이상 믿고 그에게 맡겨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