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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23: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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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이 특유의 문체를 가지고 있고 그 분류가 만연체에 속할 뿐이지, 지금까지 (덤벼든 작가 중에) 유아인만큼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보지 못했습니다.
문학의 긴 역사에서 짧은 문장이 득세한지 얼마 안됐습니다. 오히려 작고한 작가들 중에는 긴 문장을 쓴 사람이 더 많았죠. 철학적인 주제, 구체적이고 깊은 표현, 한자어가 주는 무게감, 이런 것들을 녹여내기엔 긴 문장이 제격이었습니다. 다만 젊은 신진작가들이 순우리말과 짧은 문장으로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문장은 단문으로 써야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 현대 문단의 터줏대감이나 교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긴 글은 글을 못쓰는 애들이나 쓰는 거다"라고 주장하면서요. 하지만 글을 써본 사람은 압니다. 오히려 긴 글을 쓰면서 비문이 발생하지 않게 다듬는게 더 어렵습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더욱더 짧은 문장으로 말하고 쓰고, 심지어 개인방송이나 웹툰 등의 영향으로 이미지가 아니면 아예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마저 생겨났습니다. 그 타성에 젖어 일반사람들은커녕 작가조차도 긴 문장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비참한 수준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유아인의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본인이 쓰는 글 수준이 트위터 단문에 지나지 않는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센슈얼'하다고 맹신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요.
유아인에겐 본인만의 철학과 문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덤벼드는 작가들 중에 자신만의 '문체'를 가진 작가가 있습니까? 자신이 쓴 글에 다른 사람 이름을 붙여놔도 아무도 모르지는 않던가요. '작가'를 업으로 삼는단 사람이 자신만의 깊이와 철학과 '문체' 없이, 도처에 흔해빠진 단문 수준의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할 것입니다. 긴 글은 글을 못 쓰는 사람들이 쓰는 글이 아닙니다. 긴 글을 읽을 줄 아는 자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덩달아 긴 글이 사라진 것 뿐입니다. 이제 작가들 그대들이 파놓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짧게 쓴다'는 구덩이에 스스로 빠져 아무도 글을 읽지 못하게 된 것에 침통하고 슬퍼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대들이 쓰는 글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고서는 더이상 세상의 빛을 보기 어렵게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