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9
2017-05-30 02:19:05
1
타이핑을 하면서 계속 수정하고 있어요. 과연 검 왕에게 이 글 중 몇 글자가 전달될 것인가.
제 어머니는 화를 학습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요. 화난 일이 있으면 그걸 계속 반복해서 중얼거려요.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일이 몇 년 전 일인데도 어제 겪은 것처럼 화를 낼 수 있어요. 이 무슨 황당한 일인지;
뭐 예시가 웃기긴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아는 것처럼 감정도 학습해야만 느낄 수 있어요.
돈 쓰는 걸 죄악이라 생각해온 저는 좋아하는 걸 사면서도 불안해하지만, 친구는 기쁘게 쓰죠. 불안은 나중에.
저는 아마 그 기쁨을 비슷하게라도 느끼려면 몇 년을 더 훈련해야 할 거예요. 지금도 좀 벌렁거리긴 해요;
질문자님은 뭔가, 지금 생각패턴을 뒤집기 위한 훈련이 필요해요.
저는 자살충동이 들 때마다 '아니다 나는 존나 열심히 살고 싶다' 라고 바꿔서 생각을 해왔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나오게 되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앗 그러고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 안 했다! ←라고 파악한 그 때입니당 'ㅂ')
물론 '없던 사람처럼 사라지고 싶다' 7년, '죽고 싶고 내가 존나 싫다' 4년은 안 쳤습니다.
습관 바꾸는 데 존나 오래걸렸습니다. 그만큼 거지 같은 습관이었단 거겠죠.
'대체 이 생각을 왜 하고 자빠졌는가', '나는 대체 왜 우울한가' 같은 관점의 변화가 필요해요.
관점의 변화가 없으면 제 어머니처럼 앵무새가 될 겁니다.
참고로 저는 '죽고 싶다' → 왜? → '내가 싫으니까' → (친구난입) 내가 보기엔 넌 너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 → (난 나를 좋아하는구나!)
→ '그치만 아직도 죽고 싶다' → 왜? → '내가 변변찮으니까' → 변변찮은 건 니가 노력을 안 해서잖아
→ '노력을 안하는 내가 싫어서 죽고 싶다' → 왜 노력을 안 하는데? → '노력해봤자 늘어나는 게 없으니까'
→ 그렇지만 이만큼이나 늘어난 게 있어 → '그래도 난 저 친구처럼 긍정적일 수가 없어서 죽고 싶다'
→ 한 번에 되는 건 없어 → '속는 셈 치고 해볼까'
뭐 대충 이렇게 생각을 바꿨습니다. 죽고 싶은 나 A와 반박하는 나 B를 세워서 가상 토론 같은 개념으로 생각했더니
뭔가 좀 반론이 잘 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게 이중인격의 지름길인가 그런 생각도 했지만요;;;
완전히 타인의 상담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죽고 싶다는 생각에 질 수가 없어요. 목숨은 다 소중하대잖아요.
정리하자면, 자기 자신의 논리를 꺾어야 합니다.
검 코트는 생각이 너무 많아 행동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좀 멍청하게, 생각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있어요.
모든 행동에 부정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자면, 인터넷에서 타로점 보는 이것마저도 의미가 없겠죠.
그리고 그 무의미에 장문으로 동참하는 저도 의미없는 짓 하고 있게 되는 거예요. 이처럼 생각은 하기 나름입니다.
지금의 질문자님에게는 멘토가 필요해요. 혹은 모범을 삼을만한 그럴 싸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님이 인정한, 질문자님보다 똑똑하고 권위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질문자님의 생각이 무참하게 깨져야 해요. 기형적으로 있는 생각을 깨뜨려서 조각부터 다시 맞춰야 합니다.
혹은 스스로 깨뜨려도 상관없지만요. 근데 왕의 굳은 사고가 그걸 가능케 해줄 지는 흠.
아무튼 지금 느끼는 우울은 학습이에요.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아 길게는 썼는데 두서가 없네요. 비슷한 주제면 장황해지고 마는 제 버릇을 용서하세요.
그 우울을 '습관'이라는 가벼운 단어로 치부하는 것에 화를 느끼고 계실 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제 우울을 무시하는 사람은 화가 나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그 우울의 권위를 낮추려고 한다는 것에만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울을 무시하고자 함은 아니에요. 그 부정적인 감정이 얼마나 사람 쥐어뜯는지는 제 식으로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감정이 권위를 높이면 진짜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미로를 맴도는 것과 같아요.
우울의 권위는 최대한으로 낮춰야 합니다. 적당한 멜랑콜리는 삶의 조미료가 되겠지만 이건 조미료가 너무 쎄요.
생각을 뜯어보세요. 검 왕의 사고는 논리적이면 개소리도 통과입니다.
우울의 끝까지 도달하세요. '내가 행복해지면 안 되는 이유가 뭐야' 같은 식으로 주제를 하나 잡고 몇 년 간 생각하세요.
질문자님이 스스로가 쌓아올린 우울의 논리에게서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