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
2014-07-18 17:30:04
7
목도리
박성우
뜨개질 목도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왠지 애인이 등 뒤에서 내 목을 감아 올 것만 같다 생각이 깊어지면, 애인은 어느새 내 등을 안고 있다 가늘고 긴 팔을 뻗어 내 목을 감고는 얼굴을 비벼온다 사랑해, 가늘고 낮은 목소리로 귓불에 입김을 불어 넣어온다 그러면 나는 그녀가 졸린 눈을 비비며 뜨개질했을 밤들을 생각한다 일터에서 몰래 뜨다가 걸려 혼쭐이 났다는 말을 떠올리며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 그냥 하나 사면 될 걸가지구 라고 나는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가는 내 목에 감겨 있는 목도리는 헤어진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선물한 것이라는 것에서 생각을 멈춘다 애인도 손을 풀고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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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도 짙은 방
이혜미
재채기하기 직전 너의 부푼 가슴에서 버려진 바람을 본다
몇 웅큼의 공기와 뼈를 스친 액체들과 안으로 뻗은 촉수로
제 속을 잘게 잡아뜯는 조개의 오랜 습관을 안다
열쇠 없는 몸을 가져 온 몸으로 한 방이 된
손을 넣어, 불안한 가장자리를 만지며,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오랜 면벽(面壁) 뒤에 남는 아름다운 껍질들이 있다
숨을 크게 내쉬면 하늘을 뒤덮는 나 아닌 것들
모든 스킨십은 뼈를 향한다 예의를 모르는 손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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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가 난잡하기만 하다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현대시를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난해하고 어렵고 자가당착적이고 폐쇄성만 띈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