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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8 2014-07-17 11:03: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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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상당수 존재하기에 부정적인 견해가 나올 여지는 충분합니다만 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부정을 가지고 식민사학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나 지나친 사고의 비약이 아닐수가 없지요.
2697 2014-07-17 11:01: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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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 씨는 이글루스의 블레이드 라는 닉네임으로 역사 벨리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으로 나름 일반인들에게 이름이 알려지신 분이나 아마추어 주제에 전문지식인과 토론을 하려 들지 마라 라는 식의 태도나 허수아비 치기, 훈제청어 던지기,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 교차 검증 회피 등등을 하시는 바람에 대체로 평가는 좋지 못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상대가 학부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비 전공분야에 있어 제대로 된 사료 대조 조차 건너 뛰고 권위에 의한 논증을 행하려다 정신승리로 맺음을 한 전례가 솔찮게 나오고 계시지요.

아무튼 이러한 것을 떠나 본문의 주제인 강단 사학 비판을 이야기 하자면 다른 발제문 중에 이런 문구가 있는데,

(출처 . http://rozanov.egloos.com/860506 )

'이렇게까지 식민사학적 성향과 그 성향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비호를 받는 이면에는 역사학계의 기득권 수호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근대화에 관련된 사안 대부분이 일제시대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현실이 역사학계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여기에 권위에 맹종적인 사회분위기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현재 대한민국 대학의 많은 전공 분야에서 스승이나 선배의 연구성과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연구자로서의 장래가 걸려 있는 많은 과정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교수들의 평가에 일방적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

출처의 작성자 분 말마따나 학계에서 어느 정도 폐쇄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학계내 대립 자체가 있을수 있겠습니다만 새로운 발굴성과와 방법론이 등장하면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는 것인데, 좀 지나친 이야기라 할수 있겠습니다, 당장 자기 스승을 비판하고도 잘 지내시는 학자분은 뭐라고 설명할수 있겠습니까,

사실 상기의 출처에서 역시나 언급된바 있으나 당대의 '정론'을 떨치기 힘든 상황에서 일본 역사학자들의 방법론을 많이 물려받았기에 조선의 역사에 대해 완전히 독창적이고 객관적인 이론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병도 선생과 최초 세대의 한국 역사학자들을 '식민사학'이라고 부르는거지, 이들이 식민 사관을 설파 하면서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했다는 소리는 아니지요.
2696 2014-07-16 23:01:57 0
맥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때 [새창]
2014/07/16 22:11:04
비단 그러한 점을 떠나서 주체가 된 이 들의 대다수가 노동 계층이었다는 점에서 전자일 가능성은 한 없이 적어지지요, 미구엘 이달고 이 코스티야나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가 메스티소인것은 부차적으로 말입니다.
2695 2014-07-16 22:40:10 0
맥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때 [새창]
2014/07/16 22:11:04
3750원님.. '코르도바 협상' 그러니까 부르봉 왕가의 핏줄을 군주로 삼는 입헌 군주국으로서의 독립을 거부하고 독립군 내에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아구스틴 1세에서 볼수 있듯 후자입니다.
2694 2014-07-16 21:42:38 5
연개소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새창]
2014/07/16 21:13:02
궁극 적인 측면에서 고구려의 화를 불러들였지요, 영류왕이 다분하게 현실적인 측면에서 정책을 펼쳐 백제, 신라등과 큰 갈등을 빚지 않고 적절하게 당나라의 비위를 맞춰주며 국가를 보전하고자 한것에 반하여 연개소문의 정책은 당시 삼국간의 전쟁에 외세의 개입을 불러일으킨 궁극적인 원인이 되었고, 당나라와의 직접적인 마찰을 촉발시켰습니다.

국내의 정치 역시 정치세력을 붕괴시키고 자신의 독재정권을 창출하였는데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는 모습을 쿠데타 이후부터 당나라와의 전쟁 까지 내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후계자 정리를 명확하게 하지 못하여 후환을 남겨두었지요, 고구려 국내에서 당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진 시점에서 이미 고구려의 생존은 물건너 간것이 당시의 현실이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고구려의 멸망을 불러일으킨 궁극적인 원인이라 할수 있겠지요.
2693 2014-07-15 22:52:1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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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올라온 글이라 동일한 내용의 17076번 글에서 다른 분이 작성하신 답글을 가져와 보자면

'학자들이 당황하는 이유는 당시에 이런 유적이 있을수 있다 없다로 당황하는게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농경문화 -> 거석문화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이 정주문명에서 하는 거석문화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깨졌기 때문에 당황하는것 뿐입니다.

그러나 몽고의 예에서 보듯이, 유목민족이 어느 한 곳을 성지로서 받드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며, 유목민족의 생활이나 주기적인 이동으로 인해서 "기착점"의 역할을 하는 곳이 저곳처럼 생길수도 있긴 합니다. 다만, 그것이 워낙 대규모라 학계에서도 신기하게 주목하고 있는 것이지요.'
2692 2014-07-15 21:16:3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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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분 말고도 대륙에 근세 조선 이전의 우리의 역사가 있다 주장하시던 분도 역사 갤러리, 쿠투넷에서 활동하셨지요.
2691 2014-07-15 19:28:11 1
(펌) 러시아 역사 이야기 1. 루스 카간국과 류리크 [새창]
2014/07/15 18:55:59
킴메르, 스키타이, 사마르티아, 동고트, 훈, 아바르와 하자르 심지어는 헬라인들까지 원주민들을 지배한 이 들의 변천사에서 볼수 있듯이 저 동네가 굉장히 노른자위 땅이었지요, 그런 만큼 원초 연대기는 정당성을 위한 창작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저 친구들이 역대의 이 땅을 지배한 이 들 처럼 온화하게 내려올 가능성은 매우 낮으니 말입니다.
2689 2014-07-15 18:27:39 0
역게에서 이놈의 식근론, 친일, 환빠 논쟁 때문에 암걸릴 지경이네요. [새창]
2014/07/14 16:09:39
제 생각으로는 필요한건 게시판의 분립이 아니라 이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할 공지라고 봅니다, 애시당초 해당 소재의 게시물을 올릴 게시판이 충분히 존재하는 상황인것을 떠나 이건 대체 의학, 무한 동력, 창조 과학 등의 게시판을 만들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2688 2014-07-15 17:11:40 0
킁킁.. 냄새나는 당첨자 두분 [새창]
2014/07/15 14:40:10
축하드립니다. :)
2687 2014-07-15 14:03:21 5/6
역게에서 이놈의 식근론, 친일, 환빠 논쟁 때문에 암걸릴 지경이네요. [새창]
2014/07/14 16:09:39
일제 강점기 시절 분서된 서적들은 역사서가 아니라 교과서와 위인전 등입니다, 해당 서적들은 분서로 인하여 소멸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며, 소멸되었다 추정된 서적들도 현재 곧잘 발견되고 있습니다,

일제에 의하여 역사가 망실되고 뭐 그런건 사실상 없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거의 이건 쇠말뚝 이래로 내려오는 음모론이나 다를바 없지요.
2686 2014-07-15 13:46:00 0
스팀 라이브러리 정리 프로그램도 있었네요. [새창]
2014/07/14 17:40:26
많은 양을 구매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겠군요; 사실 스팀을 시작하면 하나 둘 사는게 아니지만 말입니다.
2685 2014-07-15 13:45:05 0
[새창]
냄새나니 신청!! 이라고 하면 될까요? 깨끗한 오징어가 되고 싶습니다.
2684 2014-07-15 13:43:29 4/4
터키 ‘괴베클리 테페’의 비밀 [새창]
2014/07/14 14:47:38
동일한 내용의 17076번 글에서 다른 분이 작성하신 답글을 가져와 보자면

'학자들이 당황하는 이유는 당시에 이런 유적이 있을수 있다 없다로 당황하는게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농경문화 -> 거석문화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이 정주문명에서 하는 거석문화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깨졌기 때문에 당황하는것 뿐입니다.

그러나 몽고의 예에서 보듯이, 유목민족이 어느 한 곳을 성지로서 받드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며, 유목민족의 생활이나 주기적인 이동으로 인해서 "기착점"의 역할을 하는 곳이 저곳처럼 생길수도 있긴 합니다. 다만, 그것이 워낙 대규모라 학계에서도 신기하게 주목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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